김만배 구속영장 기각..녹취록 신빙성 입증 부족했나
[대장동 개발사업 논란]
대장동 특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이 사건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이 김씨의 범죄 혐의를 제대로 소명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 이어 김씨 신병을 확보해 정관계 로비 의혹 등을 집중 수사하려던 검찰의 계획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검찰은 핵심 물증인 녹취록의 신빙성을 뒷받침할 추가 증거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
문성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4일 밤 11시20분께 김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문 판사는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큰 반면에,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필요성이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심문을 받고 서울구치소에서 대기 중이던 김씨는 곧바로 풀려났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은 지난 12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의 배임 및 횡령, 형법의 뇌물공여 및 뇌물공여약속 혐의로 김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날 구속영장 기각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검찰은 이날 김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에 적시한 ‘김씨가 유 전 본부장에게 뇌물 5억원을 건넸다’는 혐의를 두고, 기존 주장과 달리 ‘현금 5억원’을 전달했다고 입장을 바꿨다고 한다. 앞서 검찰은 김씨가 유 전 본부장에게 ‘수표 4억원과 현금 1억원’을 건넸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김씨 쪽 변호인단은 물론 재판장도 다소 의아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김씨가 전달했다고 의심한 수표 4억원에 대한 계좌 추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나왔다.
검찰은 또한 지난달 27일 정영학 회계사(천화동인 5호)에게서 제출받은 녹취록의 신빙성을 입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녹취록에는 김씨가 ‘유동규 전 본부장에게 700억원을 주기로 약정했다’, ‘성남시의장에게 30억원, 성남시의원에게 20억원이 전달됐다. 실탄은 350억원이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녹취록을 토대로 김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김씨 쪽은 줄곧 ‘녹취록은 신빙성이 없다. 정 회계사의 일방적·자의적 주장’이라고 반박해왔다. 김씨 쪽 전략이 통한 셈이다.
검찰은 이날 심문에서 정 회계사가 제출한 녹음 파일을 틀려고 했으나, 김씨 쪽이 ‘증거 능력이 확인되지 않은 파일’이라며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재판장이 녹음 파일을 재생하는 대신 녹취록 요지를 법정에서 설명하는 쪽으로 조정했다고 한다. 김씨 쪽이 녹취록 신빙성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에 재판장이 피의자 방어권 차원에서 녹음 파일 재생을 제지한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또 화천대유가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아들에게 퇴직금 명목으로 지급한 50억원을 뇌물이라고 판단했는데, 이에 대한 대가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뇌물수수 당사자로 지목된 곽 의원을 조사하지 않고 김씨에게 뇌물 혐의를 적용한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김씨 쪽은 검찰을 상대로 ‘구체적으로 김씨가 어떤 편의를 받았다는 건지 명확하지 않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속영장이 발부될 것으로 기대했던 검찰은 예상치 못한 결과로 체면을 구기게 됐다. 정 회계사의 녹취록에 과도하게 의존해 수사를 벌여왔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워졌다.
검찰은 김씨의 혐의를 입증할 추가 물증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핵심 물증인 녹취록이 신빙성 공격을 받고 있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검찰은 이날 영장심사 결과와 상관없이 개발 과정에서 벌어진 특혜 의혹과 윗선 개입 여부, 지역 정계 로비 의혹 등에 대한 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특히 이 사건의 또 다른 핵심 인물인 남욱 변호사가 조만간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겠다고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밝힌 만큼, 검찰은 남 변호사를 소환해 성남시의회 로비 의혹 등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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