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 유홍준 [임혜자의 내 인생의 책 ⑤]
[경향신문]
추사만큼 만고풍상을 다 겪은 이가 또 있을까. 나는 그런 추사를 흠모한다. 순전히 세한도 때문이다. 세한도는 추사가 인생에서 가장 춥고 처절했을 때 그린 그림이다. 제주도 유배지에 갇혀있던 추사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 제자 이상적만은 달랐다. 위험을 무릅쓰고 연경에 가서 방대한 분량의 책을 구해 추사에게 보내줬다. 고독한 추사에게 책은 버팀목이었으며 영혼의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우주였으리라.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권세보다 의리를 지켜준 이상적의 변함없는 마음에 대한 고마움을 붓끝에 담아 그려낸 그림. 그림 속 발문은 더 좋다. “세상은 흐르는 물살처럼 오로지 권세와 이익에만 수없이 찾아가서 부탁하는 것이 상례인데, 그대는 많은 고생을 하여 겨우 손에 넣은 그 책들을 권세가에게 기증하지 않고 바다 바깥에 있는 초췌하고 초라한 나에게 보내주었도다. 날이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연하지만 의리가 절절히 배어있다.
웃음이 절로 나오는 대목도 있다. 문사철(文史哲), 시서화(詩書畵) 등 열 가지, 백 가지 방면에서 모두 뛰어난 대가라 추앙받는 추사라지만 아내에게 쓴 편지를 보면 인간적인 생얼굴이 보인다.
‘장맛이 소금꽃이 피어 쓰고 짜다’, ‘민어를 연하고 무름한 것으로 사보내라’. 추사는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에게 온갖 반찬 투정과 어리광을 부렸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남편들에게 아내는 거의 권익위원쯤 돼 보이는 듯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살이가 ‘세한의 시간’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회에 세한도를 보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세에는 하수, 서예에는 고수, 시대의 격랑 속에 던져졌던 조선 후기 문인 추사가 이 시대에 가르쳐준 화두는 무엇일까. 가을 하늘이 유달리 높고 푸르른 아침이다.
임혜자 국민권익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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