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미리 즐기는 놀이공원'..시각장애인 '상상의 나래' 펴다

류인하 기자 2021. 10. 1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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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어린이대공원 촉각지도’
놀이기구 사용설명서 제작
QR코드로 음성안내도 지원
“빨리 가 보고 싶어” 조르기도

시각장애인 은수양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맹학교 인근 가게에서 서울어린이대공원 촉각지도를 살펴보고 있다. 류인하 기자

“여기에 무대가 있는 거죠? 공연할 때 빙글빙글 돌아가는 무대가 있는 거예요?”

서울어린이대공원 ‘촉각지도’를 한 손으로 짚어가던 은수(12·가명)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김영미씨는 “응. 노래도 하고, 춤도 추는 공연을 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은수의 손은 정문을 지나 놀이동산 구역에 다다랐다. “나 여기서 놀이기구 타본 적 있어요?” 은수의 질문에 김씨는 “롯데월드에 갔던 것 기억나? 서울어린이대공원도 가볼까”라고 물었다. 은수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 전맹시각장애인이다.

서울시가 제작한 ‘서울어린이대공원 촉각지도’는 은수와 같은 시각장애인과 그 형제자매를 위한 ‘어린이대공원 사용설명서’다. 시각장애인들이 손끝으로 놀이공원 곳곳을 미리 익혀 가고 싶은 곳을 파악해 놀이공원을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디자인거버넌스 프로젝트다.

시각장애인의 형제들도 함께 지도를 볼 수 있도록 엠보싱 처리된 점자 아래에는 비장애인용 활자지도도 그려넣었다.

점자지도는 저시력 장애인 정예림씨가 처음 제안했다. 서울시는 각 분야 전문가들과 공동작업을 추진해 2015년 첫 결과물인 과천 서울랜드 촉각지도를 내놨다. 2018년에는 기존 작업을 토대로 서울어린이대공원 촉각지도 제작에 들어갔다.

서울랜드 점자지도는 성인 시각장애인을 중심으로 제작했지만, 서울어린이대공원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촉각지도에 경험카드를 추가했다. 나만의 코스를 만들고, 전체 지도에서 동선을 미리 정해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점자 읽기가 미숙한 어린아이들을 위해 지도와 경험카드에 QR코드를 통한 음성안내 지원 기능도 추가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 서울어린이대공원 촉각지도 제작을 완료하고, 시각장애아동이 많이 이용하는 시각장애인복지관·점자도서관·맹학교·시각장애인학습지원센터 등에 배포했다. 어린이대공원 입구 또는 안내센터에서도 받을 수 있다.

은수는 어린이대공원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상상나라 ‘공이 둥둥 바람관’을 꼽았다. 김씨는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아이가 촉각지도를 읽으며 설명을 듣더니 계속 ‘가보고 싶다’고 했다”면서 “점자지도가 놀이공원뿐 아니라 다양한 공공시설로 확대된다면 시각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지금보다 더 많아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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