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불빛에 취한 시민들..도시의 여백이 사라져간다 [이광석의 디지털 이후 (35)]

이광석 교수 2021. 10. 14.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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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도시 경관과 생태주의적 균형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내가 사는 동네 얘기를 해볼까 한다. 서울 강북의 끝자락 태릉 인근에 이제는 폐역이 된 경춘선 ‘화랑대역’ 건물이 상징처럼 자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개통 당시에 역사 이름은 원래 ‘태릉역’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육군사관학교가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역 명칭이 바뀌었다. 바뀐 이름에서 풍기는 것처럼 한때 화랑대역은 군 병력 이동의 중간 기착지로 중요했다. 폐역 직전까지도 무궁화호가 하루에도 수차례 운행될 정도였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곳은 폐역이 됐고, 역 건물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다행히 철거되지 않고 남겨져 있는 상태다.

화랑대역을 지나치던 경춘선 기찻길이 폐선이 되면서 이 일대는 선로와 역 건물만 휑하니 방치됐다. 그러다가 2017년에 노원구 ‘경춘선숲길 조성 사업’이 이뤄지면서 이 폐역에 ‘철도공원’ 사업이 추진된다. 지방자치단체의 숲길 조성 사업에 맞춰 선로 길을 따라 꽃과 수목을 심고 단장하면서 지역 주민이 편하게 걷고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을 마련했다.

폐역 시설은 문화재 등록에 이어 작은 철도박물관으로 바뀌었다. 폐역 주변으로 아담한 철도공원이 조성됐다. 폐선로 위에는 오래된 협궤 증기기관차가 영구 전시됐다. 폐역 주변에는 시민들이 쉴 수 있는 너른 쉼터가 만들어졌고, 그를 잇는 철길은 자연 조경을 해서 시민의 귀중한 산책로가 됐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화랑대 폐역 주변에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다. 지역 주민들은 타인과 덜 마주치며 산책과 운동을 할 수 있는 한적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화랑대 폐역 경춘선숲길이 방역으로 지친 주민의 답답함을 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점점 더 많은 주민이 이곳을 찾았다. 그래서일까. 이곳에 관심이 쏠리자 또다시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됐다. ‘철도공원’ 역할로 부족했던지, 이른바 ‘노원불빛정원’ 조성 사업이 재차 이뤄졌다.

폐역 일대에 조명을 단 인공물이 하나씩 늘기 시작했다. 각종 야간 LED 점멸등과 레이저 아트쇼, 인터랙티브 게임 설치물, 동식물 모형, 인공 장식 등이 들어섰다. 폐역 박물관 옆 너른 쉼터에는 버섯구름 모양의 거대 인공 조형물과 함께 3층짜리 초대형 카페도 세워졌다. 온갖 인공 조경 시설과 설치물을 가져다 놓으면서 공원 풍경이 확 바뀌었다. 철도공원 시절과 달리, 인공이 ‘자연’스러움을 삼켜버렸다. 이제 이곳은 주말이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밤의 ‘인스타 명소’가 됐다.

■스펙터클의 도시 경관

동네 쉼터였던 ‘화랑대 폐역’
지역 명소 되니 인공 조명 덧칠
조형물·초대형 카페까지 생겨
본래 철도공원 모습은 사라져

필자는 10년 넘게 이곳 풍광의 변화를 지켜봤다. 무엇보다 화랑대 폐역 주변 경관에 기술이 들러붙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온갖 발광하는 인공물과 거대한 야외 카페가 폐역 박물관 주위에 배치되면서 폐역과 주변의 역사적 상징성은 급격히 초라해졌다. ‘불빛정원’의 조형물, 동물 인형, 설치물 등 인공 사물들과 LED 조명이 너무 강렬해 주변 자연 경관이나 여백이 사라지는 효과까지 생겼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발생했다. 방문객들은 야간 ‘불빛정원’을 기억할 뿐, 낮 시간대 폐역의 흔적이나 쉼터로서 공원 역할에 그리 관심을 갖지 않게 됐다.

나 같은 지역 주민의 경우에 주말이나 퇴근 후 시간에 이곳에서 여유 있게 즐겼던 산책이 더 이상 어려워졌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폐역 앞 쉼터에는 뛰어놀고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담소 나누는 노인들의 모습이 일상이었다. 요새는 인터랙티브 설치 게임을 즐기고 인공 동식물 모형과 인공 설치물 주변에서 사진 찍는 이들의 모습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시민에게 이로운 도시의 경관 설계란 과연 무엇일까? 한때 중앙정부나 지자체는 공공성의 목표를 시민 계몽에 두고 이에 집착한 적이 있다. 무언가 경관 조성을 통해 시민을 가르치려 들었다. 반면에 요즘은 어떻게 하면 ‘대민 편의 서비스’를 최대치로 제공할 것인지를 궁리하는 듯하다. 시민에게 어떤 논리를 크게 강요하지는 않으나 가시적으로 충분한 재밋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서비스 강박이 있는 듯하다.

시민을 공적 행위의 참여 주체라기보단 공적 자원의 수동적 소비자로 보는 경향이 크다. 여기서 시민 ‘참여’가 있다고 한다면, 이미 일방적으로 축조된 도시 경관을 그저 보고 향유하고 즐길 권리 정도다. 동네 명소가 된 ‘불빛정원’에서 시민의 모습은 그렇게 ‘닥치고 즐기는’ 향락 주체로만 대상화되어 있다.

액세서리처럼 기술과 예술로 치장된 인공물의 테마공원 한복판으로 우리를 강제로 밀어넣는 일은 도시 경관의 공공성 추구와 한참 거리가 멀다. 어찌보면 ‘불빛정원’ 사례는 도시 지역재생 프로그램이나 공공미술의 근래 흔하게 관찰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대도시에는 각종 미디어 축조물이 들어차 숨 쉴 틈이 없다. 경관 조명장치, 미디어 파사드, 사이니지, 안내 키오스크, 레이저빔 프로젝터, 옥외 광고판 등 우리의 말초 감각을 자극하는 조형물과 인공물이 시각적으로 화려하다는 이유로 도시 곳곳에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거기에다 뉴미디어 광학 기술을 창작에 활용하는 지역재생 사업이나 동네 미술 프로젝트도 이 흐름에 가세하고 있다.

■기술 과잉의 도시 디자인

기술·예술로 꾸며지는 도시 경관
공공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 필요
기본 덕목으로 ‘생태감각’ 갖추고
기술 장치의 유해효과도 따져야

시지각 효과를 강조하면서 기술과 예술을 합쳐 도시 경관의 기본 틀로 삼는 일이 흔해졌다. 우리 사회의 신기술 숭배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도시 경관에 첨단의 기술 인공물 설치가 더욱 급증하고 있다. 문제는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공공재원을 통해 특정 축조물을 도시 경관 디자인으로 구현하면서도, 오늘 시민에게 당장 필요한 미적 감수성이 무엇일까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생략한다는 점이다.

‘불빛정원’ 사업은 동식물 인공물과 레이저빔을 설치하면서 동시에 사운드를 함께 입혔다. 주거 지역에 새어나갈 소음을 막기 위해 또다시 방음벽을 대규모로 설치했다. 한밤 불빛의 스펙터클 효과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이어진 LED 전구의 그물이 흉물스럽게 잔디나 나무의 생명은 아랑곳없이 그 위를 뒤덮었다. 도시 재개발 공사처럼 여러 설치물의 자리를 위해 공원의 멀쩡한 나무와 여백이 사라졌다. 공원 한복판을 차지한 거대한 옥외 카페는 방문 인파를 모으면서 코로나19 방역 현실과 역행하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야간 인공 테마공원의 스펙터클 효과를 위해 이곳 지역 역사의 흔적은 물론이고 그곳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렇게 지워냈다.

왜 이런 기술 잠식 현상이 흔하게 일어나는 것일까? 코로나19 충격 이래 우리 사회에서 급격히 커진 기술 숭배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경관을 조성하는 쪽에서도 발광하는 불빛과 광학 기술 인공물이 함께 자아내는 스펙터클 효과를 별 의심 없이 긍정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몰려드는 인파에 뿌듯해할는지도 모르겠다. 이를 향유하는 시민 또한 인공 기술로 축조된 경관에 대해 거부감이 크지 않다. 야간에 발광하는 LED 불빛이나 프로젝터의 이미지는 비록 인공 조명이긴 하나 그 누구도 거부하기 어려운 화려한 색감의 유혹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야간 스펙터클 효과를 위해 희생되는 공원 대부분의 낮 시간대 풍경과 그곳의 일상 경관에 미치는 더 큰 환경 영향에 대해서는 그리 물음이 없다.

도시 경관의 공공성이란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에 대한 고민이 소홀하면 공적 자원의 투입은 ‘시민 참여형’이란 이름과 달리 시민 계몽으로 전락하거나 볼거리 흥행을 위한 국고 예산 낭비로 비칠 수 있다. 적어도 코로나 충격이 우리에게 갖는 시대 화두를 도시 경관의 미적 구성에 어떻게 가져올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도시 경관의 새로운 생태 변수

우리 자신의 지속 가능한 삶 위해
기술과 생태 사이 경계 모색을

이제부터라도 도시 경관의 공공성에 대한 사유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령, 경관 조성 사업에 쓰이는 각종 기술 장치가 지역과 환경에 미치는 유해 효과를 본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지역 문화와 정서에 대한 고려는 물론이고 수목 상태 등 자연환경과 공공예술에 동원되는 기술 장치가 상호 친화적일 수 있을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주변 환경을 고려한 인공물의 설치 범위도 중요하다. 그것이 사람 심신에 미칠 영향뿐만 아니라 주위 생명에 독성을 지니고 있는지도 꼼꼼하게 검수가 이뤄져야 한다. 값비싸게 마련한 디지털 설치물이 불과 한두 해 만에 진부해져 외면당하거나 도시 환경을 해치는 ‘쓰레기’의 주된 원인이 되는 경우도 흔하다.

탈탄소 에너지 전환이 사회적으로 급박한 현실이다. 단순히 시각 효과를 위해 필요 이상의 전력을 소모하는 인공 디자인에 대한 규제 또한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응용되는 첨단 기술이 갈수록 인간과 뭇 생명을 다치게 하고 반생태 효과를 내는 현실을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 신기술이 도시 설계에 미치는 장점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기술 인공물이 놓일 지역 생태와 상호 공존할 수 있는 좀 더 세심한 신기술 적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특히 시지각 중심의 첨단 기술을 동원해 도시의 미관 효과를 높이려는 대규모 문화예술 지원 정책 사업들, 이를테면 문화도시, 도시재생, 축제, 테마공원, 공공미술 사업이 지역 생태와 환경에 미칠 수 있는 기술 ‘공해’와 ‘독성’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코로나19 충격 이래 도시 경관 사업이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그리고 새롭게 더 민감하게 고려해야 할 것을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기후위기 등 생태 문제를 우리가 추구할 도시 공공성의 화두로 삼는 일은 그래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갈수록 도시 경관 구성에 강요되는 신기술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적 제고가 필요하다. 오히려 코로나19 충격을 교훈 삼아 도시 경관 조성에 ‘생태감각’을 기본 덕목으로 삼는 일이 시급하다.

‘생태감각’은 기후위기 시대를 사는 우리가 기본으로 지녀야 할 생태 감수성 지수라 볼 수 있다. 도시 설계에서 보면 생태와 기술은 상호 연결돼 있으나, 주로 기술 논리가 생태를 압도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화랑대 폐역의 경관 디자인도 주로 기술 논리로 인해 지역 생태를 소외시키면서 생긴 효과다.

따져보면 거대 메트로폴리탄의 빠른 동적인 흐름과 속도에 어울리는 기념비적 장식물로는 첨단 기술로 한껏 뽐낸 인공적인 것이 쉬운 선택일 수 있다. 기술 축조물 그 자체가 이미 스펙터클이 되고 성장과 발전의 상징처럼 여겨진 까닭이다. 시민의 문화 향유 방식에도 기술 숭배의 사회 논리가 자연스레 이식되고 있다.

비대면 현실에서 가속화된 기술 과잉은 더욱더 지구 환경재난에 대한 반성 없이 첨단 기술에 기댄 도시 경관 설계 방식을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 도시 기술 디자인의 생태주의적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도시 설계의 공공적 역할이 아직 남아 있다면, 무엇보다 시민 스스로 기술과 생태 사이 균형점을 찾아 읽게끔 하는 일이리라.

생태주의는 우리에게 성장과 발전 대신 공생과 회복의 대안을, 인공과 작위 대신 생명과 무위를, 가속과 스펙터클 대신 느림과 사유를 일깨웠다. 물론 인간이 만들어내는 기술의 모든 가능성을 폐절할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기술을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재디자인할 수 있다고 본다. 기술과 생태 사이의 적절한 문지방 경계나 앙상블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 지난한 일일 수 있으나, 이는 우리가 소홀히 했던 도시 경관의 생태 감수성을 확보하고 우리 자신의 지속 가능한 삶을 돌보는 일이다.

▶이광석 교수

테크놀로지, 사회, 문화가 서로 교차하는 접점에 비판적 관심을 갖고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 전공 교수로 일한다.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공동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테크노문화, 인류세, 포스트휴먼, 플랫폼과 커먼즈, 비판적 제작문화에 걸쳐 있다. 대표 저서로 <디지털의 배신> <데이터 사회 비판> <데이터 사회 미학> <뉴아트행동주의> <사이방가르드> <디지털 야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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