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퇴한 밤] "아이는 비행기 떠도 못 듣습니다" 언어 치료사가 된 엄마 이야기

한겨레 2021. 10. 1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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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퇴한 밤]'육아 동지' 유튜브 채널 <육퇴한 밤>
두 남매 엄마 장재진 언어 치료사
우송대 언어치료재활학과 교수
10개월 된 첫 아이 청력 문제로 수술
언어 치료 재활..전문가도 어려워해
일과 육아 병행..언어치료 공부 결심
유튜브 채널 <육퇴한 밤> 화면 갈무리.

“옆에서 비행기가 떠도 못 듣습니다.”

의사의 차가운 말투가 귀에 꽂혔다. 이어진 말은 들리지 않았다. 아이를 안고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18년 전(2003년) 10월, 서울 올림픽대로 위로 펼쳐진 가을 하늘은 파랗고 찬란했다. 아직도 “10월이 되면 마음이 저릿하다”는 장재진 언어 치료사 이야기다. 그는 최근 유튜브 채널 <육퇴한 밤>에 출연해 아이들의 언어 발달을 위한 언어 자극 방법을 소개해 구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사연 없는 삶이 있을까? 14일 <육퇴한 밤>이 공개한 인터뷰에선 장씨가 첫 아이 재활을 위해 언어 치료사의 길을 걷게 된 이야기를 담았다.

장재진 언어치료사·우송대 언어치료재활학과 교수. 14일 공개한 <육퇴한 밤> 인터뷰 영상 섬네일.

장 치료사는 첫째를 낳고 3개월 만에 일터로 돌아갔다. 육아 휴직이 당연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친정 부모님이 사는 부산에 아이를 맡기고, 주말마다 서울과 부산을 오갔다. 어느 주말, 친정 어머니가 설거지하다 바닥에 프라이팬을 떨어뜨렸다. 아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좀 이상한데? 시끄러운데 왜 이렇게 잘 자?” 엄마의 직감은 남달랐다.

10개월 된 아이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이비인후과에서 청력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차트 한 번 보고, 제 얼굴 한 번 보고 다시 아이 얼굴 한번 보더니 냉정한 말투로 이야기하더라고요. ‘어머니, 아이는 옆에 비행기 떠도 못 들어요’라고요.”

아이가 청각 장애라면, 평생 목소리를 듣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좌절감에 빠졌다. 다행히 방법을 찾았다. 아이가 생후 15개월쯤 됐을 때 수술대에 올랐다. 전신 마취 후, 인공와우 수술(청각신경에 전기적 자극을 줘 손상되거나 상실된 유모세포의 기능을 대행하는 전기적 장치)을 받았다.

의료진은 수술해도 들을 수 있는 확률은 50%, 말할 수 있는 확률은 ‘물음표(?)’라고 답했다. 수술 뒤 꾸준히 재활 치료를 받았지만, 기적은 엄마의 바람처럼 쉬이 찾아오지 않았다. 의사도 치료사도 모두 어려운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녔다. 결과적으로 언어치료라는 복잡한 학문은 아이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엄마의 눈을 길러줬다. 그런데 직장, 육아, 학업을 동시에 감당한 것이 무리는 아니었을까? “누군가 또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과연 또 할 수 있을까요? 그때 내가 제정신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네요. 그런데 엄마라서 가능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웃음)

그는 아이의 언어 발달을 고민하는 부모들을 위해 소명처럼 글을 썼다. <아이의 언어능력>(2017), <초등아이 언어능력>(2018), <엄마의 언어자극>(2020·카시오페아) 등을 집필하며 강단에서 강연장에서 학생과 부모들을 만나고 있다.

왼쪽부터 임지선 기자, 장재진 언어 치료사·우송대 언어치료재활학과 교수, 박수진 기자. 14일 공개한 <육퇴한 밤> 인터뷰 영상 화면 갈무리.

그토록 바라던 기적은 일어났을까. 그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도 1년 미루고, 아이의 속도에 맞췄다. 6살부터 엄마표 ‘언어치료’를 시작해 3년간 꾸준하게 아이에게 말을 걸고, 기다려줬다. 말 느렸던 아이는 9살이 됐을 때, 자신의 연령만큼 말하고 표현했다. 생후 10개월에 시작한 장거리 달리기 같은 여정이었다. 장 치료사는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발음이 또렷하지 않을 때가 있고, 가끔 잘 듣지 못해 통화 중 침묵이 흐르면 ‘엄마 문자 해주세요’라는 메시지가 날아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잘 지내고 있는 그 자체로 감사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엄마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추억을 많이 만들라고 당부했다.

“저도 사춘기 아이와 매일 싸웁니다. 지지고 볶고 싸우고 (웃음) 아이가 어린 엄마들은 얼마나 좋으세요. 엄마라고 생각하면 떠오를 수 있는 뭔가를 만들 수 있잖아요. 아이가 어릴 때 좀 더 아이와 재미있게 놀아주시고, 좋은 추억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더 풍성한 이야기는 <육퇴한 밤> 인터뷰 영상에 담았다. 오는 21일엔 배우 신애라씨가 ‘육퇴한 손님’으로 찾아온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배우 신애라씨가 오는 21일 ‘육퇴한 손님’으로 찾아온다. <육퇴한 밤>에 출연한 신애라씨의 모습. 영상 화면 갈무리.
Q. 육퇴한 밤은?
작지만 확실한 ‘육아 동지’가 되고 싶은 <육퇴한 밤>은 매주 목요일 영상과 오디오 콘텐츠로 찾아갑니다.
영상 콘텐츠는 유튜브 채널과 네이버TV, 오디오 콘텐츠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을 통해 공개됩니다. 일과 살림, 고된 육아로 바쁜 일상을 보내는 분들을 위해 중요한 내용을 짧게 요약한 클립 영상도 비정기적으로 소개합니다. ‘구독·좋아요’로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려요. 육퇴한 밤에 나눌 유쾌한 의견 환영합니다. lalasweet.nigh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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