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맛있는 화학과 확증편향

2021. 10. 14.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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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욱 한국화학연구원 과학확산실장(책임연구원)
양경욱 한국화학연구원 과학확산실장(책임연구원)

오랜만에 집에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였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콩나물국은 시원해 보였으나, 한술 뜨니 뭔가 간이 섭섭한 느낌의 맛이었다. "여보, MSG를 안 넣었나 보네? 감칠맛이 없어!" 저녁식사에서의 음식과 관련된 사소한 대화가 화학 대중화란 어쩌면 거창하게 들리는 얘기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필자는 소속 기관에서 창출하는 우수한 화학기술 연구성과에 대한 미디어 홍보뿐만 아니라 화학 및 화학기술이 인류 역사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에 대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화학대중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3년여 동안 화학 대중화 활동을 널리 알리기 위한 소통 창구인 온라인 플랫폼 '케미러브'를 운영해 왔으며, 화학 대중화 캐치프레이즈 및 캠페인 영상 제작을 통해 일반 대중들의 인식 변화를 기대하였다. 또한,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춘 웹툰, '아이러브케미'라는 웹드라마, 다양한 과학 유튜버들과의 케미스트리 실험실 협업 영상 등을 제작했다. 진짜 궁금했던 생활화학 30 등의 도서 편찬 및 배포 등 대중들이 화학을 보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특히, 5년 전에 제작된 맛있는 화학이라는 도서를 접근성이 더욱 쉽도록 하기 위해 유명 먹방 유튜버인 쯔양과 협업하여 책에 나오는 내용을 총 5편의 영상으로 제작하여 유튜브를 통해 공개하였으며, 직전년도 대비 구독자 수가 3배가 증가하는 등 화학이 생활 속에서 더욱 친근한 존재로 인식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본다.

캠핑장에서 즐길 수 있는 삼겹살 요리를 컨셉으로 고기를 구울 때 소금을 뿌리면 표면만 빨리 응고해 단단해져 내부의 수분과 맛을 유지하는 원리, 식용하는 기름의 역사 및 요리 시 기름의 특성과 온도의 상관관계, 프로테아제라는 소화효소들이 콩 속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잘게 분해하는 과정을 통해 본 된장찌개 맛의 비법, 조미료의 역할은 물론 탁월한 피로회복 효과와 살균기능을 가지고 있는 식초의 비밀 등 요리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한 화학과 화학반응들에 대해 전문가의 입을 빌어 설명했다.

"감칠맛도 좋지만 MSG는 우리 몸에 안좋은 거니 우리 가족 건강을 생각해서 그냥 드세요."라고 아내는 말한다. 그 말을 들으니 문득 확증편향(確證偏向)이란 말이 떠올랐다. 확증편향은 그것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자신의 견해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외면하는 사람들의 성향이다. 사실 된장찌개의 구수하고 감칠맛이 나는 이유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글루탐산 덕분이다. 글루탐산은 오늘날 널리 쓰이는 조미료인 글루탐산나트룸(MSG)의 주성분이고 다시마, 육류 등에 다량 함유된 물질이다. 메주를 발효시킨 된장에도 들어있는 글루탐산이 왜 MSG란 단어로는 우리들에게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MSG가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은 1960년대 말 미국인 의사가 중국음식을 먹은 뒤 복통과 어지러움 증상을 느꼈다고 주장하면서 건강에 관심이 많은 일반 대중은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심각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 이후 미국 FDA에서 조사한 결과 일반적으로 안전한 물질로 분류되어 사용량 및 허용량에 대한 규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 이후 EU, 일본 후생성 등에서도 유해하지 않거나 규제하지 않는다는 발표하고,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평생 먹어도 안전한 식품첨가물이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뒤늦게 들어와 마치 괴담처럼 MSG는 화학조미료라는 이름으로 먹으면 안되는 혹은 건강을 해치는 화학물질이라는 부정적인 인식과 불안감을 느끼는 감정이 확증편향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여부에 대해 이미 다 밝혀졌지만 이미 가진 믿음대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과학을 통해 일반 대중들이 잘못 알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기에 생기는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시켜야 할 의무와 역할도 과학자와 그들의 성과를 널리 알리는 사람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코로나19 초기 확산 시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된 잘못된 정보가 전염병처럼 퍼지는 인포데믹(거짓정보유행병)을 우리는 경험한 바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천연은 좋고 화학은 나쁘다' 는 화학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화학의 가치를 일반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시작된 화학대중화 사업은 짧은 기간안에 그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을 것이라 본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우리 삶 속에서 화학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 쉽고 재미있게 정보를 전달한다면 화학이 과학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까. 언젠가는 아내의 입에서 "여보, MSG를 넣으니 소금을 적게 사용하고 감칠맛도 나고 좋아요." 이런 말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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