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유려한 울림·명료한 음색.. 축제 문 활짝 연 '토스카'

2021. 10. 1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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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라도시를 맡은 테너 신상근
스카르피아를 맡은 바리톤 정승기

올해로 18회를 맞이하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지난 9월 10일 시작되었다.

이날부터 11월 7일까지 6개의 그랜드오페라를 중심으로 오페라 콘체르탄테, 갈라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9월 10일 개막식 행사를 지켜보며 설렘을 느낀 사람이 필자 한 명은 아니었을 것이다. 초가을 오페라하우스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 앞에서 성악가들과 대구시립합창단, 앙상블이 연주한 오페라 아리아와 '개선행진곡' 등 우렁차고 화려한 사전 공연이 있었다. 그리고 참석 내빈 소개와 인사말, 테이프 커팅식, 개막 선언으로 이어지는 익숙하고도 의례적인 그 행사는 새삼 반갑게 여겨졌다.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고 입장을 위해 체온측정과 QR코드를 확인하느라 분주한 과정이 추가됐지만, 이제는 예년과 같은 풍경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깨지는 벅찬 순간이었다.

이날 공연된 오페라 '토스카'는 이런 관객들의 기대를 한껏 충족시켜준 공연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줄리안 코바체프가 이끄는 대구시향은 압도적인 연주력을 바탕으로 성악가들을 뒷받침하며 오페라를 이끌어나갔다. 현악의 유려한 울림과 관악 파트의 명료한 음색에 이르기까지, 푸치니 오페라 특유의 선율과 화성이 갖는 매력을 넉넉하게 보여줬다. 대구오페라하우스 객석 리모델링의 결과 덕분인지 첫 소절부터 더욱 선명하고 풍성하게 들려오는 소리의 변화가 확연히 느껴져 현장에서 감상하는 즐거움이 배가됐다.

연출을 맡은 정선영은 주관이 뚜렷한 연출가로 알려져 있다. 이 오페라에서도 기존에 많이 볼 수 있던 제피렐리 스타일의 '토스카'에서 벗어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무대로 승부를 걸었다. 1막 '테데움' 장면이나 2막과 3막에서 쉴 틈 없이 전개되는 긴박한 순간에 보여준 인물의 움직임과 동선은 신선했다. 동시에 인물의 내밀한 심리까지 세심하게 표현하여 공감을 끌어냈다.

그는 무대디자인까지 맡아 간결하면서도 역동적인 무대로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한 의도를 일관되고 명확하게 표현했다. 최근 우리 오페라에서는 1막에서 카바라도시가 그리는 막달라 마리아의 존재감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크게 부각시킨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화가들의 명화 두 점을 재구성한 무대 위 성당 벽화는 은은한 색감 속에 격조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오롯이 음악과 극의 흐름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토스카 역할의 소프라노 이명주는 금속성이 느껴지는 예민한 음색과 안정된 발성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풍부한 성량까지 더해지며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절창으로 선보여 큰 갈채를 받았다. 바리톤 정승기는 악역에 걸맞은 부피감이 느껴지는 소리와 연기력으로 강렬하게 스카르피아 역을 소화해냈다. 또한 대구시립합창단과 함께 웅장하고도 숨 막히는 분위기의 '테데움'을 연주해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카바라도시를 맡은 테너 신상근 역시 흔들림 없는 미성과 빼어난 연기로 주요한 아리아를 매끄럽게 소화해 객석에서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만, 주역 3인 오페라라고 할 수도 있는 이 작품에서 섬세한 음색의 소유자인 그와 강한 재질의 가창을 보여준 이명주·정승기의 조합이 완벽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토스카'는 높은 완성도로 좋은 공연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날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진 열광적인 반응의 원인이 이 한 가지만은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팬데믹으로 인해 수많은 비대면 공연의 시도가 이뤄졌다. 공연예술도 패러다임 자체가 뒤흔들리는 변동을 겪고 있다. 1년 반 가까이 반강제적 실험을 하고 나니, 공연예술의 변하지 않는 본질적 특성이 오히려 분명해지는 느낌이다. 되살릴 수 없는 현장의 아우라를 함께 만들어 낸다는 것, 이날 밤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다시금 깨달은 것이기도 하다.

글=손수연(오페라 평론가)·사진=대구오페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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