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내가 있는 이곳이 예술.. 대구서 세계로 '오페라 꽃'을 피우다

2021. 10. 1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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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에 개최되는 대구국제오페라 축제서 연출 맡아
코로나에 지쳐가는 시민들 위로하려 '치유' 주제 다뤄
소규모 단체위한 단계별 오페라 학습 프로그램도 개최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대구서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 정갑균

월간객석과 함께하는 문화마당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 정갑균

오페라는 처음에 작곡가의 산물이었다. 베르디·푸치니와 같은 유명 작곡가가 오페라의 발전을 이끌었다. 칼라스·카루소·파바로티 등 인기 성악가들이 오페라 붐을 일으키던 20세기를 지나 오페라는 이제 연출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독일 레지테아터 극장을 시작으로 화제의 중심에 연출가가 서고, 같은 작품이라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듯 대구오페라하우스(대표 박인건)는 신임 예술감독으로 오페라 연출가 정갑균을 선임했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제작극장으로서의 역량을 강화하고자 2013년부터 예술감독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정 예술감독은 국내에 오페라 연출의 토대가 마련되기도 전인 1995년부터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140여 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대구와도 깊은 인연을 자랑한다. 그간 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통해 도니체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2008),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2010), 김성재 '청라언덕'(2012), 진영민 '가락국기'(2015), 베르디 '운명의 힘'(2019)까지 굵직굵직한 작품을 선보였다.

올해로 18회째를 맞은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지난해 코로나로 연기된 이후 2년 만에 개최된다. 신임 예술감독 취임 이래 처음 선보이는 축제라 더욱 기대를 모은다. 정갑균 예술감독에게 이번 축제의 방향과 예술감독으로서의 포부를 들어보았다.

△지난 4월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으로 취임했다. 먼저 소감을 듣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오페라하우스'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극장이 몇 군데 존재하지만, 운영시스템을 살펴보면 여느 문화예술회관과 성격을 달리 보기 힘들다. 그러나 대구오페라하우스는 1년 내내 오페라만 공연할 수 있는 구조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는 감사하게도 선배 예술인들의 노고가 있었고, 뛰어난 예술적 감성을 지닌 대구 시민들의 지지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말은 제주도로, 오페라는 대구로"라는 표현이 떠오를 만큼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 같다. 20년에 달하는 긴 역사 속에서 오페라 전문 제작극장으로 발전해온 방향성을 앞으로도 잘 유지하겠다.

△연출가가 아닌 예술감독으로 제18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이끌게 됐다. 올해 축제에서 선보이는 여러 작품들을 '연출'이라는 코드로 묶어본다면, 어떤 방향성을 안고 있나?

-장기화된 코로나의 영향으로 지쳐가는 시민들과 예술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치유'를 주제로 삼았다. 축제에 있어 주제란 축제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기 때문에, 주제 선택부터 선정된 작품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다만, 올해는 작품별로 공통된 주제의식을 담기보다, 위로와 치유라는 예술의 역할에 주목했다.

△수십 년간 세계 각국의 축제와 공연 현장에서 쌓은 경험은 큰 자산일 테다. 롤모델로 삼는 축제가 있는지.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지역적 요소가 잘 녹아들어 있다. 국가와 도시의 위대한 음악적 자산인 모차르트의 작품은 물론이고, 현대오페라를 발굴하고 기존 작곡가의 작품을 제작하는 데도 변화의 물결을 잘 반영한다. 이런 점에서 대구국제오페라축제도 대구라는 지역에 잘 어울리도록 발전시킬 생각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나아가 아시아에서 유일한 오페라 축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전 세계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는 아직 노력해야 할 단계다.

△'지역화'와 '세계화'는 언뜻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두 가지 목표를 어떻게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까?

-극장이 어디에 있든, 내가 머무르는 곳에서 최고의 작품들을 만들면 되지 않나. 나의 대표작으로 꼽고 싶은 작품이 두 편 있다. 하나는 1998년 동양인 연출가 최초로 푸치니 오페라 페스티벌 무대에 나를 세워준 '나비부인'이고, 또 하나는 창극 '나운규, 아리랑'(2016)이다. 후자는 떠나온 세계무대를 그리워하던 나의 가치관에 큰 변화를 주었다. 세계인들이 흠모하는 작품들과 겨뤄보자, 내가 이 작품만큼은 거장 연출가인 로버트 윌슨(1941~)을 이겨보겠다, 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작품이었다. 절치부심했던 공연이 끝난 후 어느 관객으로부터 '로버트 윌슨의 작품 이후로 나를 이렇게 놀라게 한 작품은 처음이다'라는 찬사를 듣고 그야말로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번에 공연되는 6편의 '메인 오페라' 시리즈에서 대구오페라하우스 제작 작품은 푸치니 '토스카'(9.10·11)와 베르디 '아이다'(10.22·23)로 모두 이탈리아 오페라다. 내년엔 창작오페라 제작을 기대해도 될까?

-먼저, 이제는 '창작오페라'라는 말을 버려야 할 시대가 온 것 같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발원된 오페라가 유럽과 전 세계로 퍼져나간 이후부터 지금까지 '독일오페라' '체코오페라' 등 언어와 국가로 오페라를 분류하는 경우는 있지만 '창작오페라'로 분류하는 곳은 거의 전무하다. 언젠가 한국어로 쓰인 오페라가 전 세계 극장에 올라가게 될 날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한국오페라'를 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구오페라하우스는 르네상스 시대 오페라의 탄생을 알렸던 연구회 '카메라타'처럼 '대구오페라 카메라타'를 창설하였다. 이곳에서 이루어질 도전과 노력의 결과물이 대구오페라, 나아가 한국오페라의 모습으로 등용되리라 생각한다.

△다양한 축제 부대행사도 마련되어 있다. 그중 30인 이상의 중소규모 단체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찾아가는 오페라 산책', 공연 당일 작품에 관한 기초정보를 알려주는 '프레토크', 오페라 전문 평론가를 초청해 심도 있는 강의를 진행하는 '특별강의 오페라 오디세이' 등 단계별로 준비한 강연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오페라에서 얼마나 통용되는가?

-좋은 것은 너무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오페라가 바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오페라는 종합예술의 최고봉에 있다. 굉장히 격조가 높고 풍미, 예술성에 있어서 탁월한 반면 대중에게는 그런 점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취미로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장비를 구입하고 연습하는 것처럼, 오페라를 배우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오페라 관련 사전지식은 물론, 작품과 교감하려는 연습을 거쳐야 할 것이지만, 그 후에 얻을 수 있는 감동은 실로 거대할 것이라고 자부한다.

△코로나의 여파로 국제 교류가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뮤직홀, 크라스노야르스크 국립오페라발레극장과 합작하여 선보일 예정이었던 보로딘의 '프린스 이고르'(11.6·7)가 러시아 현지 사정으로 취소되는 난항을 겪었다. 지금의 상황이 개선되면 초청하고 싶은 해외 창작진이 있나.

-현대 연극의 거대한 축을 맡고 있는 연출가 로버트 윌슨! 윤이상(1917~1995)의 '심청', 진은숙(1961~)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작품을 필두로 가능한 생존하는 작곡가의 현대오페라를 아방가르드하며 미래지향적인 연출가에게 맡겨 형상화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앞으로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으로서 오페라 발전에 어떻게 기여하고 싶은가.

-대구는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로 선정된 세계 100여 개 도시 중 하나이다. '창의(創意)'란 말 그대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옛것을 기반으로 현재를 풍요롭게 하고, 발전적인 미래를 여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창의의 개념처럼 해방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대구의 음악적 인프라를 바탕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하고자 한다. 특히 내년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전 세계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와의 교류를 통해 오페라 부문에서 음악창의도시의 가장 선두에 설 수 있는 축제로 틀을 제시하고 나아갈 예정이니 기대 바란다.

글=월간객석 박서정기자·사진=대구오페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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