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난민' 숨통 트였다..고승범 "전세, 잔금 대출 중단 없다"

안효성 2021. 10. 1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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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규제 발 대출 경색'에 움츠러들었던 '대출 난민'의 숨통이 트였다. 전세대출과 집단대출 중단 사태를 막기 위해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일부 완화하면서다. 전세대출 증가로 인해 가계대출 증가율이 목표치(6.99%)를 초과하더라도 이를 용인한다는 게 핵심이다.

실수요자의 자금난은 풀리게 됐지만, 집값 급등을 잡으려는 정부의 오락가락 대출규제로 시장의 혼란만 키웠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출 한파는 이어질 전망이다. 실수요자 대출은 완화했지만. 금융당국은 이달 중순 이후 가계부채 관리대책을 발표하며 대출 죄기 기조는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1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시중 은행 앞에 전세자금대출 상품 현수막이 걸려 있다. 금융위원회의 가계대출 추가대책에 전세 대출이 포함되는지 우려가 커진 가운데 이날 고승범 금융위 위원장은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14일 금융투자협회 세미나에 참석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실수요자가 이용하는 전세대출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4분기 중 전세대출의 한도와 총량을 관리하는데 유연하게 대응할 생각”이라며 “전세대출 증가로 인해 (총량이) 6%대 이상으로 증가해도 용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단대출의 경우 연말까지 공급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며 “연말까지 전세대출과 집단대출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관리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서민 실수요자 대상 전세 대출과 잔금 대출이 일선 은행 지점 등에서 차질 없이 공급되도록 금융당국은 세심하게 관리하라”고 말했다.

고승범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투자자 교육 플랫폼 '알투플러스' 오픈 기념회에 참석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도 높은 규제를 펼치던 금융당국의 갑작스러운 입장 선회는 대출 중단으로 인한 실수요자들의 불만이 폭주하면서다. 그동안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율을 전년 대비 6%를 넘지 못 하게 하면서 개별 금융사의 신규 대출 중단과 대출 한도 축소 등이 이어졌다.

지난 8월 24일 NH농협은행이 전세대출과 주택담보대출 등을 전면 중단한 데 이어 카카오뱅크(고신용자 신용대출)와 토스뱅크(신규 가계대출) 등 인터넷은행도 일부 대출을 중단했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지점별로 대출 한도를 배정해, 이를 초과할 경우 사실상 대출이 불가능했다. 은행 문이 닫히며 시장은 '대출 발작'을 앓았다.

지난 12일 직장인들이 많이 모이는 앱인 블라인드에는 ‘집단대출 현재 상황’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다음달 중순 경기도 신축 아파트 입주 예정이라는 글쓴이는 “아파트 대출 수요가 3000억원인데 1금융권 한 곳에서 200억원을 들고와서 30번대 선착순으로 마감됐다”며 “불시에 (대출) 공지를 할 수 있어 일도 못 하고 휴대전화만 붙잡고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식 전 의원도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얼마 전 전세대출에 대해 수십 년 거래한 은행에 문의했더니 금융당국이 은행에 요구한 한도가 이미 차서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매물 잠김, 영끌, 공급절벽, 전월세시장의 대혼란, 실수요대출 차단 등 결과는 땜질정책의 폭망이다”라고 적었다.

금융당국의 대출 완화책으로 시중은행도 대출 여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지난 13일 기준 KB국민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5.37%였는데, 전세대출을 제외하면 증가율이 2.9%로 내려간다. 당국의 대출 증가 목표치를 초과해 전세자금 대출을 중단한 NH농협은행도 전세자금 대출을 재개하기로 했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면서 연말까지 5대 시중은행의 대출 여력은 13조5000억원에서 약 20조원 가량으로 늘어나게 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시중은행에 7조~8조가량의 추가 대출 여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대출 총량 관리 목표도 자연스럽게 후퇴하게 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전세대출을 포함할 경우 (총량이) 7% 정도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 가계대출 증감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


정부가 처음부터 무리한 총량규제를 밀어붙이다 시장의 혼란만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2016년(9.2%), 2017년(5.4%), 2018년(7.9%), 2019년(7%), 2020년(9.7%) 등을 유지해왔다. 게다가 최근의 대출 증가세는 문재인 정부 들어 전셋값과 집값이 부쩍 오른 영향인 만큼 이에 대한 고려도 필요했다는 것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총량규제를 하다 보면 투기수요도 잡히지만, 실수요자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며 “집값과 전셋값이 올라 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6%라는 숫자에 매몰될 게 아니라 유연하게 관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전세대출을 무리하게 총량규제에 포함했다 부작용이 생기니 다시 풀어줬다”며 ”정책이 오락가락하다 보니 정책의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잇따른 대출 규제 관련 발언이 소기의 성과를 냈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통령과 여당 정치인은 굿캅 역할을 하고,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악역을 전담했다”며 “정부 입장에서는 가계부채 관리 신호를 준데다, 집값과 전셋값 상승 분위기도 전환해 어쨌든 효과를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한 경제학 교수는 “금융당국이 무리한 총량규제의 부작용을 몰랐을 리 없다”며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대신 떠안아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실수요자의 숨통은 터줬지만, 대출 한파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추가 가계부채 관리대책을 금융위 종합국감(21일) 이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관리 실효성 강화와 제2금융권 대출 관리 등의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청와대 등과 정책의 세부사항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효성ㆍ윤상언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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