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일러 이수정] 공감 상실, 사이코패스의 시작

한겨레 2021. 10. 1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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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 이수정]

이수정|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필자가 태어났던 곳은 버스 종점에서도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만 다다를 수 있는 도시 속 산꼭대기 오지였다. 비만 오면 오르막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물난리로 아랫동네는 언제나 수해를 입었지만, 꼬맹이였던 나에게는 폭포수 같은 빗물 속을 헤치고 집으로 걸어 올라가는 일이 꽤 큰 재미였다. 엄마 손을 잡고 쏟아지는 물 속을 맨발로 걸었던 기억은, 엄마의 뜨거운 손바닥과 함께 발가락 사이를 세차게 가로질렀던 물살의 촉감으로 그대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넉넉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지금도 감사하는 것은 온 식구들이 아이들에게만큼은 매우 지지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릴 때의 기억 속에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고모들 앞에서 노래 솜씨를 맘껏 뽐내고는 박수를 받았던 장면이다. 그들은 나를 사랑해주었던 최초의 팬들이었다.

사이코패스들을 만날 때마다 한결같이 느끼는 궁금증은 어찌하여 이들은 자신에게 발생한 눈곱만한 불편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게 느끼면서도,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그리도 통찰이 없는가 하는 의문이다. 게임을 통해 만난 여성을 스토킹하다가 그 여성의 모친과 여동생까지 모두 몰살시킨 김태현이란 자에게 최근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 자신이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잔혹한 고통을 주었는지 채 깨닫기도 전에 사형을 면해주는 처분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에 따져 묻고 싶다. 피해자가 사랑하는 엄마와 여동생의 처참한 주검을 마주하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도, 미처 스토커를 피하지 못해 가족마저 살해당하게 만든 자신을 얼마나 자책하며 스러져갔을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이 여성들을 끈질긴 스토커로부터 지켜주지도 못했던 형사사법기관이 이제 와서는 사형까지 면하게 해줌으로써 피고인에게 가석방이라는 희망까지 안겨주었다. 정말 난센스다.

김태현과 같은 스토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상대를 미행하고 협박하는 일을 자신의 편의대로 애정 표현이라고 간주한다는 점이다. 애정이 과연 무엇인가? 사랑이란 것은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런 감정은 아주 어릴 때부터 사랑받은 경험에서 유래하는 것인데, 불행히도 이런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타인의 입장을 역지사지하지 못하는 괴이한 인격 결함을 지니게 된다. 가족 속에서 사랑받아 본 경험이 결핍될 경우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동증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김태현 사건에 연이어 발생했던 사이코패스에 의한 살인 사건은 강윤성 사건이었다. 전자발찌를 착용한 전과 14범이 발찌를 훼손한 뒤 두 여성을 잇따라 살해했는데, 현재 이 피의자 역시 재판을 앞두고 있다. 부디 이번에는 이 끔찍한 살인범이 세상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이 사건도 결국은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 여부가 문제인 것인데, 강윤성은 여성들을 살해할 때 그들을 돈을 뜯어내기 위한 도구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공포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잔인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행동이 상대에게 슬픔이나 아픔 또는 공포를 유발할 수 있는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들이 느낄 감정을 대리로 경험하는 것. 이런 능력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나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 가족과의 친밀한 상호작용, 애착의 형성, 존중받고 이해받았던 경험 등등에 의하여 후천적으로 발달하는 것이다. 공감능력은 식욕이나 성욕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고등한 정신 작용, 상당한 인지능력이 요구되는 고도의 능력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기본 요건, 짐승과는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능력인 것이다.

부디 인간으로서 이런 기본적인 능력조차 못 갖춘 자들이 다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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