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알아서 살자는 자유지상주의.. 그런 사회는 동물의 왕국"

김민호 2021. 10. 1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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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이 무슨 소용인가. 정치권이 비방전에 매몰된 상황에서 정치철학은 한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 또는 “저 사람이 만든다는 나라는 틀렸다”라고 선언할 때 주장의 뿌리는 정치철학에 닿아 있다. 철학자들은 플라톤이 살아 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면 누가, 왜, 어떻게 지배해야 하는가’를 연구해왔고 그들이 정립한 사상은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미쳐왔다. 무엇보다 ‘어떤 사회가 정의롭고 공정한가?’라는 근원적 질문은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해진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논제로 떠올랐다.

독일의 철학자 오트프리트 회페는 이달 국내에 출판된 ‘정치철학사’에서 기원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치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정리한다. 인간이 본성적으로 정치적 동물(국가를 이루어 사는 동물)이라는 명제를 이끌어낸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도덕과 윤리로부터 정치를 해방시키면서 사회 전체의 선(공동선)을 그 목표로 제시한 마키아벨리까지 위대한 사상가 20명의 발자취를 추적한다. 그러면서 임마누엘 칸트와 존 롤스의 정치철학에 무게를 둔다. 자유방임적 국가의 한계를 지적하는 작업은 사회복지국가 또는 사회적 국가로의 이행을 정당화하는 결론에 이른다.

정대성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HK교수. 정대성 교수 제공

정치철학사를 한국어로 공동 번역한 정대성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교수는 바로 그 점을 알리려 했다고 이야기한다. 자유주의를 겉으로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유지상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주장이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한국사회에 다른 생각을 고민할 계기를 마련하려는 노력이다. 정 교수는 13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정부는 간섭을 최소화하고 개인이 알아서 능력대로 살자’는 주장은 자연의 법칙처럼 들리지만 그것은 곧 정치의 소멸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자연스러움'에 몸을 맡기는 사회는 동물의 왕국이나 다름없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정 교수는 자유지상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자연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똑같다는 것인데 과연 그러한가?”라면서 “정치체(국가)가 없다면 당연히 강자가 지배하는데 (인류는) 왜 정치체를 만들었을까? 애초에 정치체를 만든 이유는 강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상황을 제어하기 때문이었고 정치체는 원래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국가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고 각자 알아서 살자는 식의 주장은 공공영역을 축소하고, 그것은 결국 현재 체제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소수의 사람들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사회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된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철학사. 오트프리트 회페 지음ㆍ정대성 노경호 옮김ㆍ길 발행ㆍ622쪽ㆍ3만8,000원

평등적 자유주의를 제시했던 존 롤스도 경쟁에 따른 불평등의 발생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쟁은 공정해야 하며 공정하려면 출발선부터 맞춰야 한다. 롤스를 지지하는 학자들에게 부모의 지위나 재산이 자녀의 교육으로 이어지고 그들이 좋은 일자리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는 구조가 고착화된 사회는 공정한 사회일 수 없다. 경제적 양극화가 새로운 세습제도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정 교수는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가 경쟁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라면서 “롤스는 우리가 어떤 경쟁이 공정하다고 말하려면 그 사회의 체계가 약자들에게 가장 많은 수혜가 되도록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독일에서는 교육비가 다 무료”라면서 그들은 교육을 시장의 연속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경쟁 이전의 영역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한국사회에 정치의 귀환이 필요한 때”라고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사적인 삶을 위해서 공적인 것들은 거의 할 것이 없다는 것이 자유주의자를 가장한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일반적 주장이다. 그러한 주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정치는 설 자리를 잃고 기득권층은 약자들의 분노를 외부의 적에게 돌린다. 정 교수는 “아도르노는 자유지상주의의 끝이 히틀러라고 한다”라면서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의 끝은 트럼피즘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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