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800억 정부광고 어디로..베일 벗은 ABC 대체지표
"지역언론 불리""기준 모호하고 복잡" 언론계 갑론을박
정부광고 집행기준과 심사 투명화 계기 돼야
1조893억원. 지난해 중앙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정부기관과 공공법인이 집행한 정부광고비다. 국내 광고시장 규모의 9.1%로, 상위 10대 기업 광고액과 맞먹는 액수다. 어느 정부든 정책 홍보와 소통은 필수적인 것이지만, 기준과 집행과정 투명성이 부족한 탓에 늘 ‘기사 바꿔먹기’ 의혹이나 ‘언론계 길들이기’ ‘유사언론 난립의 온상’ 같은 따가운 시선이 따라붙었다. 이번엔 달라질까?
한국ABC협회의 유가부수 부풀리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뒤 대체지표 마련을 공언했던 문화체육관광부가 안을 마련해 13일부터 언론현업단체, 유관기관단체 등과 잇단 간담회를 열며 최종 의견수렴에 나섰다. 그동안 ABC협회 자료는 정부광고 중 23%(지난해 2452억원)를 차지하는 신문·잡지 광고집행의 기준이 돼 왔다.
일단 전국 5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열독률 조사와 함께 사회적 책임을 ‘핵심지표’로 넣은 것이 눈에 띈다. △언론중재위원회의 직권조정·시정권고 건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등 자율심의 참여여부와 심의결과 △편집위원회나 독자위원회 설치·운영 여부 등을 구간별로 차등점수를 매긴다. 지역매체의 경우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사 여부인지도 핵심지표에 포함했다. ‘참고지표’로는 직원들의 4대 보험 가입 및 완납 여부, 정상 운영, 세금 체납 여부, 포털 제휴 여부 등을 제시했다.
사회적 책임에 애초 언급했던 언론중재위나 자율심의 건수 외에 독자위 설치 등을 넣은 것은 언론의 책임과 신뢰도를 반영해야 한다는 언론계 안팎의 목소리에 따른 것이라 평가할 만하다. 참고지표의 경우, 등록매체가 1만개에 육박해 ‘유사언론’이 난립하는 상황 또한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조사기간을 감안해 우선 내년엔 신문·잡지 광고에 적용하고, 더 비중이 높은 방송·온라인 등 광고에는 2023년부터 이 지표를 쓰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세부로 들어가면 여전히 모호하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 언론중재위나 자율심의는 보도 건수가 많은 큰 언론사에 불리하다는 불만, 열독률 조사가 대형 보수지에 유리하거나 지역 언론은 아예 유의미한 수치가 나오지 못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편집위나 독자위 또한 실제 운영보다 형식적 설치에 그칠 수 있다. 지표가 너무 복잡할 경우, 규모가 작은 언론사들은 지표 관리 자체가 버거울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현실로 들어갔을 때 이런 지표가 얼마나 ‘작동’할까이다. 대체지표는 광고주에게 제시될 뿐 강제될 순 없다. 언론 신뢰도를 감안해 도입한 ‘사회적 책임’도 반영 비율은 광고주 마음이다. 특히 전체 광고 중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지자체 광고는 정부 부처 광고보다 더한 ‘사각지대’라는 게 언론계 안팎의 지적이다.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별도로 열린 전국언론노조 주최 토론회 ‘공정투명한 정부광고 길은 있나?’에선 실제 사례들이 쏟아졌다. “한 지자체에 가니 발행부수 5만부인 신문과 5천부인 신문의 광고액이 똑같더라. 5천부 신문사 대표가 지자체장과 동창이기 때문이었다.”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물으면 ‘보도자료를 (기사로) 써주면 (광고를) 준다’고 한다. (광고를) 똑같이 안 주면 비판 기사를 쓰니, 한번 주고 1년 버티자 같은 식이 된다.”
이영아 바른지역언론연대 회장은 “정부광고가 위로는 소수 전국지 중심이고 아래로는 아무나 줘서 매체를 난립시키며 가짜뉴스 온상이 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정부광고법을 제대로 고쳐 옥석을 가리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사가 아니라 정부광고 리베이트를 찾아다니는 기자들도 자성해야 한다”(민진영 경기민언련 사무처장)는 지적도 이어졌다. 하지만 정부는 기준을 정해 아예 광고 대상이 되지 못하도록 ‘배제 조항’을 만드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조심하는 분위기다. 당장은 시행령만 고칠 뿐 정부광고법 개정 등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대체지표 마련이 시급하지만, 집행 기준과 과정을 투명하게 하는 장치에 대한 고민 또한 중요하다는 의견은 정부가 귀기울일 만하다. 이준형 언론노조 정책협력실 전문위원과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지자체들이 정부광고집행조례와 지역언론지원조례를 제정해 심사위원회 같은 기구를 실제 운영하도록 정부광고법에 강제하거나 최소한 권고하자”고 제안했다. 이달 초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공개했듯 공공기관으로부터 광고를 받아놓고 기사처럼 보이게 하는 전국지의 ‘기사형 광고’ 문제나 아예 정부광고에 잡히지 않는 보조금 사업 같은 문제들도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광고의 효과를 높이면서도 언론계 생태계 ‘황폐화’를 줄일 수 있는 대안 찾기는 가능할까.
글 김영희 선임기자 dora@hani.co.kr,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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