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장진호'가 던진 불편한 질문들/ 박민희

박민희 2021. 10. 1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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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11일 중국 베이징의 영화관 앞에서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장진호> 포스터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중국 극장가에선 지금 한국전쟁이 한창이다. 한국전쟁 당시 개마고원 근처에서 벌어진 장진호 전투를 다룬 <장진호>는 ‘역대 최고 흥행 영화’ 기록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패왕별희>를 만들었던 천카이거와 <천녀유혼>을 만들었던 쉬커 등이 공동으로 감독했고, 이양첸시와 우징 등 스타 배우들이 출연한 이 영화는 13억위안(약 2414억원)의 사상 최대 제작비를 들였지만, 개봉 11일 만에 이미 40억위안(약 7427억원)이 넘는 흥행 수익을 올렸다.

중국은 왜 지금 이 영화를 만들었나? 중국이 ‘미국에 저항하고 북한을 도운 전쟁’이란 뜻의 ‘항미원조 전쟁’으로 부르는 한국전쟁 영화는 정치적 풍향에 따라 부침을 겪어왔다. 냉전시대인 1950~1960년대에는 <상감령> <영웅아녀> 등 한국전쟁을 다룬 유명 작품들이 만들어졌지만, 1970년대 미-중 화해 이후에는 거의 사라졌다. 한국,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한국전쟁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되었고, 중국 내에서도 한국전쟁에 개입한 것이 중국에 손해가 되었을 뿐 옳지 않았다는 논쟁도 활발해졌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집권한 뒤 이런 흐름은 뒤집혔다. 시 주석은 “항미원조는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역사관을 강조한다. 여기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중국공산당의 한국전쟁 참전은 옳았으니 더 이상의 비판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2018년 미-중 ‘신냉전’이 시작된 이후에는 ‘중국이 미국에 맞서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정치 선전의 의미가 더해졌다. <장진호>에는 “양놈들이 우리를 무시하지만, 존엄은 전쟁에서 싸워서 얻는 것”이라는 마오쩌둥의 대사가 등장한다. 이런 애국주의 선전을 통해 불평등과 실업 증가 등으로 인한 불만을 통제하려는 의도도 있다.

2016년 30여년 만에 <나의 전쟁>이라는 한국전쟁 영화가 중국에서 개봉했다. 이후 한국 영화사가 수입하려다가 논란이 벌어진 <1953년 금성대전투>(원제 금강천)에 이어 <장진호>가 상영됐고, 곧 장이모우 감독의 <저격수>도 공개된다. 시진핑 주석이 ‘미국에 대한 승리’를 외치는 한 ‘한국전쟁’ 영화는 계속 등장할 것이다.

영화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 <장진호>는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국가영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정치공작선전국, 베이징시 선전부 등의 지원으로 만들어졌고, 인민해방군 병사 7만명이 출연했으며, 개봉을 앞두고 관영언론들이 총동원되어 홍보에 나섰다. 언론과 문화산업, 인터넷 평론까지 모두 당국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 중국의 현 상황에서 영화로만 보기 어렵다.

그런데, 장진호 전투는 중국 당국의 선전처럼 ‘미국에 대한 중국의 승리’일까? 1950년 11월27일부터 12월13일까지 카튜사로 참전한 한국군 700명을 비롯해 미군 3만명이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 중국군 12만명에 포위되었다가 17일 만에 포위망을 뚫고 나와 흥남철수에 성공했다. 미군 7338명이 전투와 추위로 사망했지만, 중국군 사상자도 약 4만~8만명으로 추산된다. 어느 쪽도 ‘승리’를 주장하기보다는 전쟁의 참혹함을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중국식 한국전쟁 해석은 한국에 어떤 의미인가? 중국의 한국전쟁 해석은 미-중 두 강대국만의 승패로만 바라볼 뿐, 한국의 희생과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 장진호 전투에 참여한 한국군 700명 중 500명이 전사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을 마치고 귀국길에 하와이에서 유해를 봉환한 김석주·정환조 일병도 그들이다. 시진핑 주석이 “중국이 결연히 ‘침략자’를 무찌른 정의로운 전쟁”으로 선언한 것은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1992년 한-중 수교 교섭 당시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문제는 쟁점이었다. 수교의 주역 중 한명인 이상옥 전 외무부 장관의 회고록을 보면, 한국 쪽은 당시 중국에 “참전으로 한국 국민들이 입은 큰 피해와 희생을 감안하여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는 역사적 전환점에서 다시는 그러한 불행이 없도록 한다는 뜻에서 중국 측의 적절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 역사 문제는 오래 전에 지나간 일이며, 양국 관계 정상화를 논의하는 데 있어 과거의 역사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불필요한 논쟁만 야기시키게 될 것”이라고 대응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오래 전에 지나간 일”이라고 했던 역사를 다시 꺼내어, 애국주의 결집을 위한 정치적 동원에 이용하고 있다.

오병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한중 역사 교과서 대화>에서 시진핑 시대 들어 중국이 한국전쟁뿐 아니라 역사 서술 전반을 바꿔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만들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의 전근대를 ‘문화제국’으로 설명하면서 소수민족에 대한 국가주의적 통합, 주변국과의 위계적 관계를 강조하고, 근현대사에서는 ‘비서방적 대국’인 중국과 주변국과의 역사관계를 ‘대국과 소국’ 관계로 치환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 질서 전반에 대한 대국적 개입을 정당화는 논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강해진 중국이 이웃국가들과 평등한 관계 대신 ‘대국과 소국’ ‘중화와 옛 속국’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중국인은 모두 <장진호>의 관제 애국주의에 열광하고 있을까? 관영언론들엔 호평이 가득하고, 극장에서 벅찬 감격에 관객들이 기립해 거수경례를 하는 사진들이 온라인을 떠돈다. 하지만 검열로 삭제되는 적지 않은 비판과 이견들이 있다. 경제주간지 <차이징> 부편집장 출신의 언론인 뤄창핑은 “반세기 후, 이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며 통렬한 비판 글을 올렸다가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강요된 애국주의에 질문을 던지는 많은 중국인들이 그곳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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