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무심코 지나치던 일상의 사물들이 도시를 지탱한다

정영현 기자 2021. 10. 1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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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도시의 보이지 않는 99%
로먼 마스·커트 콜스테트 지음, 어크로스 펴냄
하수구 안으로 떨어지지 않는 '맨홀 뚜껑'..
냉난방비 줄이는 '회전문'..
車사고때만 부러지는 교통표지판
공원벤치·울타리·가게 풍선인형 등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 중요한 역할
도시를 아름답고 세련 되게 만들어
인간과 연결고리·역사도 흥미진진
미국의 대표 메트로폴리스, 뉴욕.
[서울경제]

서울 롯데타워, 파리 에펠탑,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사람들은 ‘도시’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 도시의 랜드마크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실제 도시를 구성하고, 도시라는 공간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요소는 따로 있다.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작은 것들이 마천루를 지탱하고, 거대한 도시 교통 시스템을 원활하게 만들고, 도시 전체의 분위기를 더 아름답고 세련되게 만들어 준다.

신간 ‘도시의 보이지 않는 99%’는 교통 표지판, 회전문, 맨홀 뚜껑, 공원 벤치, 울타리, 신장 개업 가게의 풍선 인형 등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사물들에 관한 책이다. 이런 사물들과 이들에 얽힌 에피소드를 통해 도시와 인간이 어떻게 서로 연결돼 있는 지를 이야기한다.

책에서 소개되는 사물들은 우리가 지금껏 흔히 봐왔으면서도 그 이면의 이야기는 알지 못하는 것들이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지나치는 교통표지판은 비바람에는 잘 버티지만, 차가 부딪혔을 때는 쉽게 부러질 수 있도록 고안된 기둥이 지탱하고 있다. 급커브를 둘러싼 시멘트 중앙분리대도 과학 원리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자동차가 충돌했을 때 제 방향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각도로 만들어져 있다. 어느 도시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맨홀 뚜껑은 하수구 안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원형으로 만들어진다. 사각형이나 타원형은 뚜껑을 열어서 방향을 돌리면 아래로 빠질 수 있다. 게다가 원형이기에 무거워도 세워서 굴리는 식으로 편하게 옮길 수 있다.

회전문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도시의 요소다. 1800년대 말 뉴욕 타임스퀘어의 한 식당 출입문에 처음으로 회전문이 설치되자, 신기하게 생긴 문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런데 회전문은 생김새만 독특한 게 아니다. 기존 여닫이 문과 비교하면 내부 공기가 8분의 1 정도만 교체돼 건물의 냉난방 비용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책은 사소하지만 도시를 지탱하는 큰 역할을 하는 요소도 소개한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는 붉은 건물 정면에 박힌 금속 별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언뜻 보면 장식을 위한 부속품 같지만 실은 벽을 보수한 흔적이다. 벽돌이 무너지거나 벽이 휘어지는 걸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흔히 보이는 고속 방지 장치도 도시 일상에 꼭 필요한 요소다. 어떤 도시는 과속 방지턱 그림을 바닥에 그리고, 어떤 곳은 도로 폭을 좁혀 과속을 막는다. 이중급커브 길을 만들거나 마을 입구에 여러 장치를 설치해 차들로 하여금 속도를 미리 줄이게 유도하기도 한다.

도시에는 역사적 재활용품도 곳곳에 존재한다. 영국 전역의 도로와 보도에는 다소 특이하게 생긴 기둥이 박혀 있다. 차량 이동을 막는 게 목적인 이 설치물은 원래 기둥이 아니라 전쟁에 사용되는 대포였다. 캐나다 노바스코샤 핼리팩스에선 옛 대포가 건물 모퉁이 보호 장비로 사용되기도 한다.

책은 도시의 흔한 사물에 얽힌 재미있는 역사적 이야기도 들려준다. 자동차 판매점이나 주유소, 쇼핑몰 앞에서 일어섰다가 주저앉길 반복하며 팔을 휘두르는 풍선 인형의 고향은 트리니다드 토바고다. 도시 밤 풍경의 상징인 네온사인은 1900년대 초 프랑스인 조르주 클로드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고, 그의 첫 상업적 네온 간판은 이발소에 달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도시, 서울.

최근 도시에는 인간 중심 도시 설계에 대한 반성의 결과물도 등장하고 있다. 다람쥐용 줄, 계단식 물고기 이동로 등 야생동물 회랑이 대표적이다. 도시의 밤이 지나치게 밝으면 사람은 물론 동식물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도시 불빛의 조도는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이처럼 책은 도시의 작은 요소들이 품고 있는 진지하고 깊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정성 들여 설명해준다. 우리가 사는 도시 속 그 어떤 것도 결코 사소하지 않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1만9,000원.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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