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닮은 사람',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고현정의 살인?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1. 10. 1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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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그녀는 자전 에세이 ‘섬과 호수의 이야기’를 낼만큼 성공한 화가다. 아들과 딸, 두아이의 엄마이고 학교 및 병원 재단을 소유한 집안의 며느리다. 그녀를 둘러싼 울타리는 행복과 여유로 제법 완고하고 단단하게 보였다. 보풀 인 초록코트를 입은 여자가 스며들기 전까지는.

JTBC 새 수목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극본 유보라·연출 임현욱)이 13일 방영을 시작했다.

드라마의 프롤로그는 섬뜩했다. 피가 튄 정희주(고현정 분)의 놀란 얼굴, 검붉은 피로 범벅된 타일, 물걸레로 흔적을 지우는 희주, 사체가 든 듯한 트렁크, 호수인지 바다인지 모를 곳에서의 유기까지...

그 화면 위로 희주의 독백이 흘렀다. "지옥에 대해 생각한다. 살아서도 지옥인 세상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의 지옥은 사랑하는 이가 나 대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그러니 아직 지옥은 아니다."

이 프롤로그가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될 지 끝이 될 지는 미지수다.

빛 밝은 화실에서 작품에 몰두하는 희주는 순하고 평화롭고 나른하게까지 보인다. 자신의 딸 안리사(김수안 분)가 기간제 미술교사로부터 고막을 다칠 정도로 폭행당했다는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그래서 만난 기간제 교사 구해원(신현빈 분)은 뻔뻔했다. 때린 이유에 대해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해야지 안했단다. 그래서 체벌을 했다고. 화가 난 희주 역시 책으로 해원을 가격한다. 쓰러졌던 해원이 초록 코트를 집어 든 순간 그 옷을 골라내는 희주 자신의 모습이 플래시백 된다. ‘저 여자, 내가 아는 사람인가?’

희주는 리사의 학교 친구 주영(신혜지 분)을 통해 리사가 폭행당한 이유를 알고자 했으나 “미미(해원)가 리사 귀에 대고 뭐라고 하던데”란 말만 듣는다.

리사는 외삼촌인 정선우(신동욱 분)가 “언제나 네 편 들어주는 엄마가 있어 좋겠다”는 말을 하자 “내가 사람을 죽여도 내 편 들어줄까?”라 되묻는다.

예상은 맞았다. 집으로 찾아와 무릎 꿇고 사과하는 해원은 예전 희주에게 미술을 가르쳐준 한나였다. 한나는 유학을 앞두고 마련한 해원의 영어 이름이었다.

희주에게 맞은 부위 진단서를 끊고 희주를 고소한 해원은 “언니인 줄 알았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며 ‘당장 취하하겠다“고 밝히면서 부담을 느끼도록 거듭 사과한다. 이어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이젠 그림에 관심도 없어요. 관심이 있었다면 언니를 좀 더 일찍 만났을 텐데..."라고도 말한다.

해원의 사과가 거짓임을 눈치챈 희주는 해원을 내쫓고 해원은 집 밖에서도 희주를 바라보며 ”찾았다“며 시린 미소를 짓는다.

1회의 전개로 보아 프롤로그는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인 듯 하다.

먼저 희주의 자전 에세이가 ’섬과 호수의 이야기‘다. 해원은 그 에세이중 호수로 보이는 물 위에 배를 띄워놓고 있는 한 사람이 그려진 그림을 찢는다. 프롤로그에서 희주가 사체가 들어있음직한 트렁크를 유기한 곳은 바로 그 호수일 수 있다.

또한 해원의 귀엣말을 들은 리사는 외삼촌 선우에게 “내가 사람을 죽여도?”란 어울리지 않는 질문을 되던진다. 아울러 해원이 말한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해야지”란 말도 의미심장하다.

제작진은 “아내와 엄마라는 수식어를 버리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여자와, 그 여자와의 짧은 만남으로 '제 인생의 조연'이 되어버린 또 다른 여자의 이야기”라고 드라마를 소개한다.

욕망에 충실했던 여자 정희주에게 고졸 간호조무사로 살았던 청춘의 가난은 끔찍했다. 안현성(최원영 분)과의 결혼은 그런 과거와의 결별이고 행복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화가로의 새 삶도 찾았다. ‘아내와 엄마라는 수식어를 버리고’란 설명은 욕망을 위해 또 다른 결별이 감행됨을, 혹은 됐음을 예견케 한다.

희주가 해원을 바로 기억해내지 못한 것 역시 ‘짧은 만남’ 외에도 과거와의 결별에 익숙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무심히 던진 돌에 맞는 개구리는 죽는다. 희주가 애써 기억해내야 하는 시간 중의 어떤 사건이 해원에겐 ‘제 인생의 조연’이 되도록 강요했을 것이다. 돌 던진 희주야 잊겠지만 맞은 해원이야 어찌 잊을까. 그래서 이야기는 희주가 시작했지만 끝은 해원이 맺는다. 그를 위해 해원은 희주를 찾았다.

여기에 의식불명의 존 도(서우재·김재영 분)가 결정적 키를 쥐었을 테고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을 지키자는 안현성의 역할이 또 있을 것이다.

드라마는 심리스릴러물답게 1회부터 고현정·신현빈의 연기가 돋보였다. 특히 신현빈은 전작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장겨울 캐릭터를 완벽하게 벗어던졌다. 마치 영화 ‘케이프 피어’의 로버트 드니로처럼 언제 터질지 모를 불안정한 내면을 성공적으로 발산하며 고현정의 연기에 팽팽하게 맞섰다.

고현정·신현빈이 끌어가는 두 여자 이야기 ‘너를 닮은 사람’, 이 가을을 좀 더 선듯하게 만들 듯 싶다.

/zaitung@osen.co.kr

[사진] '너를 닮은 사람'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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