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美 재정 매파, 기후 그리고 아동빈곤
재정적자 감축에 함몰된 엘리트들
미래 핑계로 복지 축소 주장하면서
정작 기후변화·아동빈곤엔 눈감아
소탐대실 말고 진정한 개혁 힘써야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시절 ‘심슨-볼스’ 재정건전화위원회의 채무 삭감 계획을 기억하는가.
10년 전, 미국 내 엘리트 논객들은 입에 거품을 물어가며 재정 적자 감축을 위한 긴급조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같은 견해는 필자가 “지독히 심각한 사람들”로 명명한 지식인층 사이에 유달리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뉴욕타임스의 논설위원인 에즈라 클라인은 당시 적자가 “보도의 중립성이 적용되지 않는 이슈가 됐다”고 지적했다.
당시 언론 매체들은 일반적인 예산 삭감뿐 아니라 의료보험과 사회보장 혜택 축소를 뜻하는 ‘복지 후생 프로그램 개혁’을 적극 지지했다. 내로라하는 평자들은 너나없이 사회복지 프로그램 축소가 국가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필자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엘리트 집단이 그토록 국가의 미래에 신경을 쓴다면 지식인들 사이에 기후변화 대응 조치와 어린이들을 위한 지출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둘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더 나은 경제 복구 플랜(Build Back Better)’의 주요 요소로 사회복지 프로그램 축소보다 훨씬 강력하고 합리적인 제안이다.
하지만 사회보장 축소가 대단히 진지한 정치적 의제로 받아들여진 것과 달리 기후변화와 아동 부양을 위한 긴급조치 플랜은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요즘 대다수 언론 보도는 바이든의 ‘BBB 플랜’을 해체하고 이를 소박한 재래식 기반 시설 지출안으로 제한하려 드는 몇몇 민주당 의원들을 책임감을 지닌 정치인으로, 국가의 확실한 미래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주의 의원들을 진지하지 못한 정치인으로 몰아간다.
이쯤에서 국가의 미래를 확보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따져보자.
복지제도 개혁의 논리는 늘 어딘가 수상쩍다. 이미 오래전부터 재정 적자 우려에 상당한 거품이 끼어든 게 사실이다. 인구 고령화와 늘어나는 의료 비용이 언젠가 우리에게 증세와 사회복지 혜택 축소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할 것이라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예컨대 꼭 2010년에 시급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몇 년 더 기다릴 경우 우리가 잃는 게 무엇인가. 당시 엘리트 논객 사이에 형성된 공감대는 미래에 사회복지 예산을 삭감해야 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미래 복지 예산을 지금 미리 축소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기후변화와 어린이 부양안을 늦추는 데 따른 비용은 허구가 아닐뿐더러 액수 또한 막대하다.
기후변화부터 살펴보자. 전 세계는 매년 온실가스 배출량 제한에 실패한다. 인류는 연간 약 350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한다. 그리고 이렇게 배출된 가스는 수백 년 동안 대기 중에 머물면서 지구를 덥힌다.
우리는 심각한 가뭄, 극단적 이상기후의 확산 등 기후변화의 초기 비용이 얼마나 호된지 직접 경험했다. 과학자들 사이에는 앞으로 수십 년간 기후변화에 따른 비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확고한 공감대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 대응 조치를 늦추는 것은 국가부채를 몇 퍼센트 추가하는 것보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훨씬 약화시킨다.
부양 자녀도 살펴보자. 아동 빈곤은 미국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아동 빈곤 경감 프로그램이 대단히 효과적이라는 확실한 증거 또한 차고 넘친다. 이런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은 어린이들은 혜택을 받지 못한 아이들에 비해 한층 더 건강하고 높은 수입을 올리는 성인으로 성장한다.
사실 이제까지 나온 모든 자료는 어린이에 대한 투자가 도로와 교량 등 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에 비해 높은 이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부양 자녀 세액공제 확대와 같은 조치를 통해 매년 아동 지원을 늘리지 않는다면 수십 년간 인간의 잠재력을 감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러나 엘리트 집단의 견해와 상당수 언론 보도는 청정에너지 플랜에 반대하는 극단적 무책임과 아동 빈곤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 것에서 발생하는 인간 잠재력의 막대한 소모를 부각시키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이 3조 5,000억 달러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이 단 1년 사이에 지출되는 비용이 아니라 10년에 걸쳐 집행될 예산이고 전체 액수도 국내총생산(GDP)의 1.2%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종종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필자는 솔직히 이런 이중 잣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지독히 심각한 사람들’이 정부 부채 제한이라는 필요성에 집착하면서 우리의 미래에 관한 진정한 이슈를 다루려는 제안에 호전적이거나 기껏해야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도대체 무언지 필자는 알지 못한다.
돈이 문제의 일부인 것은 분명하다. 미국상공회의소와 같은 기업집단은 BBB 플랜에 반대하는 치열한 로비를 통해 메디케이드(저소득층·장애인을 위한 의료보조제도)와 사회보장 축소를 골자로 하는 복지제도 개혁에 ‘올인’한다. 사실 바이든의 어젠다를 무산시키려는 민주당 의원들은 ‘중도주의자’가 아니라 정확히 말해 당내 기업 우호 세력에 해당한다. 모든 여론조사 결과는 그들이 반대하는 정책이 일반인들 사이에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그들은 정치적 중도에서 한참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러나 일반적 통념을 규정하는 힘 있는 자들만 부패한 것은 아니다. 정치판과 언론계에는 여론 주도층의 움직임을 반영하는 일종의 사회적 역동성이 존재하는 듯 보인다. 이들은 일반인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을 용기 있다고 칭찬하는 반면 대기업과 부유층 증세를 고려하는 사람들을 편파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비난한다.
이런 역동성의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는 여기에 맞서야 한다. 바로 지금이 우리가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비극이 따라온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미국서 공개한 GT 전기차 '제네시스X', 서울 성동구에 뜬다
- '21세로 월급 400만원에 원룸 살면서 1억 아우디…전 카푸어인가요?'
- 온몸에 피멍 유명 유튜버, 대학병원 검사서 의외의 결과가
- '조국의 시간' 불태운 이낙연 지지자 '안녕히 가세요'
- 베트남서 판치는 짝퉁 ‘한국 배’…정작 담당 기관은 ‘깜깜이’
- 오징어게임 나온 전화번호 주인, 손해배상 받을 수도
- 사람 사냥하듯 화살 쏴댔다…노르웨이 충격에 빠뜨린 사건
- 상금 500만원 '현실판 오징어게임' 결국 취소된다
- '암투병 논란' 최성봉, '후원금 돌려주겠다' 게시글은 삭제
- 정용진의 '현란한 웍질'…'31년간 먹은 탕수육 가짜' 극찬한 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