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인줄 알고 삼킨 플라스틱..바닷새 몸, 화학물질도 쌓인다

강찬수 2021. 10. 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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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새의 배속에 꽉 찬 플라스틱 조각. [사진 크리스 조던]

매년 수백만 톤의 폐플라스틱이 전 세계 해양으로 흘러드는 가운데 폐플라스틱 조각을 삼킨 바닷새의 몸속에 플라스틱에 첨가한 화학물질이 쌓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쿄 농업기술대학과 도쿄대 등 일본 연구팀을 비롯한 미국·호주 등 국제 연구팀은 최근 국제 저널 '환경 모니터링과 오염물질 연구(Environmental Monitoring and Contaminants Research)'에 게재한 논문에서 "바닷새의 꼬리 샘(preen gland)에서 채취한 기름을 분석한 결과, 플라스틱 제조 때 첨가하는 화학물질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전 세계에서 분포하는 32종(種)의 바닷새 135마리에서 꼬리 샘 기름 시료를 채취해 분석했다.
꼬리 샘은 바닷새를 포함해 대부분의 새 꼬리 위에 위치한 기관으로, 새들은 부리를 이용해 이곳에서 분비되는 기름(왁스)을 깃털에 칠해 깃털이 물에 젖는 것을 방지한다.

플라스틱이 불에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첨가하는 난연제인 데카브로모디페닐에테르(BDE209) 성분을 분석한 결과, 145마리 가운데 7마리에서 검출이 됐다.
하와이에 서식하는 하와이슴새(학명 Pterodroma sandwichensis) 한 마리에서는 지질 성분 1g당 83 ng(나노그램, 1ng=10억분의 1g)이, 큰군함새(학명 Fregata minor) 두 마리에서는 203~379 ng/g이 검출됐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바닷새 꼬리 샘에서 BDE209 성분이 검출된 것은 자연 먹이 탓일 수도 있고, 직접 플라스틱을 삼킨 탓일 수도 있는데, 하와이슴새나 큰군함새의 경우 플라스틱을 삼킨 탓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BDE209는 먹이사슬을 따라 축적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고, 조사한 하와이슴새가 플라스틱 조각 12개를 섭취한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145마리 중 7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새들에게서 BDE209가 검출되지 않았는데, 이는 일부 플라스틱에서만 BDE209가 검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태평양 하와이 북서쪽에 있는 미드웨이 환초 해변에 플라스틱을 비롯한 해양 쓰레기가 쌓여 있다. 바닷새와 해양동물을 위한 야생동물 보호구역이지만, 쓰레기가 가득하다. AP=연합뉴스

분석한 145마리 중 9마리의 꼬리샘 기름에서는 또 다른 난연제인 데카브로모디페닐에탄(DBDPE)도 검출됐다.

큰부리바다오리(Uria lomvia)에서 가장 많은 101 ng/g이 검출됐다.
갈매깃과에 속하는 레드레그드키티웨이크(Red-legged Kittiwake, 학명 Rissa brevirostris) 세 마리에서는 14~65 ng/g이 검출됐다.

DBDPE의 경우 자연 먹이를 섭취했을 때도 몸속에 낮은 농도로 쌓일 가능성이 있지만, 높은 농도로 검출되는 경우는 섭취한 플라스틱 탓인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오염 해역이 아닌 곳에서 사는 바닷새의 경우에도 DBDPE가 높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플라스틱 조각을 섭취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또 플라스틱이 자외선(UV)에 노출되더라도 쉽게 변하지 않도록 첨가하는 벤조트리아졸 계통의 자외선 안정제(BUVS) 6종도 분석했다.

6가지 첨가제 중에서 UVP 성분은 30마리에서, UV326은 19마리에서, UV329는 34마리에서, UV328은 31마리에서, UV327은 8마리에서, UV234는 27마리에서 검출이 됐다.
전체적으로 67마리(46%)에서 한 가지 이상의 자외선 안정제가 검출됐다.

이들 자외선 안정제는 해변이나 바닷새 위장 속 플라스틱에서도 드물지 않게 검출이 되는 성분으로, 바닷새 꼬리 샘 기름에서 이들 성분이 검출된 것 역시 플라스틱 조각을 섭취한 탓일 수 있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난연제 검출률 11%에 비해 자외선 안정제 검출률이 더 높은 것은 플라스틱 제품에 자외선 안정제가 난연제보다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해석했다.

태평양 미드웨이 환초 해변의 바닷새 사체 속에 플라스틱 조각이 가득하다. AP=연합뉴스

연구팀은 "소화관에 플라스틱이 많이 든 새에게서 첨가물 농도가 높게 검출됐다"며 "새들이 플라스틱을 섭취했을 때 거기에 든 첨가제가 체내에 축적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학물질이 바닷새 체내에 축적된 것은 확인됐지만, 이것이 새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아직 확실히 파악되지 않은 상태여서 여기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한편, 플라스틱의 품질을 유지하거나 개선하기 위해 첨가되는 가소제나 자외선 안정제, 산화 방지제, 난연제 등의 첨가제 사용량은 전체 플라스틱 생산량의 7%를 차지할 정도로 플라스틱 제품의 필수 구성 요소다.

파나마 파나시티의 코스타 델 에스터 해변에 떠밀려온 해양 쓰레기 사이로 새 한 마리가 걷고 있다. AFP=연합뉴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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