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 티켓' 따려고 차박에, 텐트에..공공산후조리원 늘려주오

최윤아 2021. 10. 1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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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이용 168만원, 민간의 반값
의료시절 좋아 입소경쟁 치열해
온라인 예약은 1~2분 만에 동나
"저출생 말만 말고 이런데 관심을.."
여주공공산후조리원 예약을 위해 전날 저녁부터 세워진 텐트. 사진 제공 ㄱ씨

오는 12월 출산을 앞둔 ㄱ씨의 남편(ㄴ씨)은 지난 1일 경기도 여주시 여주공공산후조리원 입구에 텐트를 쳤다. 농성이 아니라 공공산후조리원 이용 예약을 위해서다. 경기도 통틀어 단 하나뿐인 이곳의 2주 이용 요금은 168만원이다. 같은 지역 민간 산후조리원 이용료의 절반 수준이다. 꼭 비용 때문만은 아니다. 감염 예방·관리를 위한 음압병실이 갖춰져 있는 등 의료시설은 물론 간호진의 서비스 질도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다.

문제는 ‘입소 티켓’을 구하려면 ‘피케팅’(피가 튀는 전쟁터 같은 티케팅)에 성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산후조리원은 매달 1일 방문이나 전화로 예약을 받는데, 전날부터 입소 희망자들이 산후조리원으로 몰려와 문 앞에 텐트를 치거나 주차장 ‘차박’을 하며 날을 새운다. ㄱ씨의 남편도 그중 하나였다. ㄴ씨는 전날인 9월30일 저녁 7시쯤 ㄱ씨의 어머니와 함께 산후조리원 앞에 텐트를 쳤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 9시부터 다른 대기자가 몰리기 시작했고 이튿날 새벽 4시께엔 오리털 점퍼를 뒤집어쓴 이까지 전체 대기 인원이 30팀에 이르렀다. 조리원은 아침 7시부터 대기 순번대로 예약이 이뤄졌고 첫번째 대기자인 ㄱ씨는 물경 12시간 가까이를 기다린 뒤에야 입소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또 다른 산모 ㄷ씨 역시 같은 날 새벽 2시쯤부터 남편과 함께 여주공공산후조리원 주차장에서 차박을 했다. 임신 8개월, 한껏 부른 배를 안고 ‘서가숙’을 한 셈이다. ㄷ씨는 “(매달 초) 총 26명에게 입소 티켓이 주어지는데, 앞쪽 대기자 가운데 쌍둥이가 있으면 예약 가능 인원이 더 빠르게 줄어든다고 해서 현장대기했다”며 “산후조리원 예약을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고 했다. “일단 금액 차이를 무시 못 하는데다 서비스 질도 좋아 긴 시간 대기해서라도 꼭 입소하고 싶었다”는 ㄱ씨의 바람 역시 “국가와 사회가 저출생에 대해 고민을 한다면서 공공산후조리원 등 정작 임신부에게 필요한 제도 마련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아쉬움으로 이어진 까닭이다.

<한겨레>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보면, 전국에 있는 공공산후조리원은 총 13곳이다. 17개 시·도 가운데 서울·경기·울산·울진·강원(3곳)·전남(4곳)·충남(휴업 중)·제주 등 8개 시·도에 공공산후조리원이 있다. 국내 전체 산후조리원은 지난해 말 기준 501곳으로, 공공산후조리원 비중은 2.4%(충남 제외)에 그친다. 공공조리원의 병상수도 그나마 161개에 불과하다. 지역별 인구, 거리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복불복의 공공서비스인 셈이다.

지난 1일 아침 7시 경기도 여주공공산후조리원에서 입소 희망자들이 예약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전날 새벽부터 텐트를 치거나 차박을 하며 대기했다. 밤을 새우며 대기하기 위해 10월에 오리털 점퍼까지 챙겨 입은 모습이 눈에 띈다. 사진 제공 ㄱ씨

특히 서울 유일무이의 공공산후조리원(송파구)은 온라인 예약만 받는데 예약 시작 뒤 1~2분 만에 자리가 동날 정도다. 지난 7월 문을 연 울산 공공산후조리원은 개원 두 달 만에 내년 1월까지 예약이 찼다. 각 지역 여성 커뮤니티에는 ‘어떻게 하면 예약에 성공할 수 있느냐’는 질문부터 ‘텐트 치고 대기하려고 하는데 화장실은 어딜 써야 하냐’는 세세한 질문까지 올라온다.

출산을 앞둔 임신부가 공공산후조리원을 선호하는 첫번째 이유는 가격이다. 공공산후조리원 이용 요금은 2주 기준 150만~190만원 안팎으로 민간에 견줘 절반가량 저렴하다. 경기도에 사는 임신 4개월차 ㄹ씨는 “경기도 내 민간 산후조리원은 350만~400만원까지도 한다. 제왕절개 수술 비용까지 합하면 출산에만 1천만원이 드는 셈”이라고 했다. 공공산후조리원은 취약 계층 산모에게 30~70% 이용 요금 감면 혜택도 준다. 이런 할인까지 고려하면 가령 160만원대의 여주공공산후조리원과 민간 조리원의 비용 차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2018년 보건복지부가 국내 산모 291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산후조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모의 75.1%가 산후조리원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모들이 가장 필요하다고 여기는 정부 정책 1순위(51.1%) 역시 ‘산후조리원 이용 경비 지원’이었다. 이현주 우송대 교수(간호학)는 “산후조리는 출산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보편적 과정인 만큼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 보호를 위한 국가의 개입은 정당하다”며 “시·도별 공공산후조리원을 확충하고, 산후조리원 비용을 건강보험에 반영하는 등 국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춘숙 의원은 “공공산후조리원에 대한 여성의 수요가 이처럼 높은데도 지난해 말 확정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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