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맛있는 것 아껴 먹듯이.. 순천만 갈대밭을 걷는 법

손민호 입력 2021. 10. 14. 05:01 수정 2021. 10. 14.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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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우길⑦ 순천만 갈대길


전남 순천 순천만에 가을이 내려왔다. 순천만 습지 옆의 경관농업 논에 올해도 흑두루미가 새겨졌다. 이 논에서 나는 쌀 대부분이 겨울 철새 먹이로 쓰인다.
깊어가는 가을, ‘다자우길(다시 걷자 우리 이 길)’이 찾아간 고장은 전남 순천이다. 그래, 그 유명한 순천만을 다시 걸었다. 누런 갈대 서걱거리는 갈대밭만큼, 가을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는 많지 않다. 마침 순천만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이 가을날 ‘순천만 갈대밭’을 걷는 것은, 국내 생태관광의 모범 사례를 체험하는 일이자 유네스코도 인정한 갯벌의 가치를 경험하는 일이다. 순천만 갈대길에서는 절대 속도를 내선 안 된다. 이왕이면 느릿느릿, 맛있는 것 아껴 먹듯이 걸으시라 권한다.

순천만을 걷기 전 당신이 알아야 할 것


드론으로 촬영한 순천만 습지. 9월 30일 방문했을 땐 갈대가 아직 누렇게 익지 않았다.
순천만은 이름난 관광지다. 코로나 사태 전에는 연 방문객이 1000만 명에 육박했다. 그러나 순천만은 여느 되바라진 관광지와 차원이 다르다. 순천만에 들 때마다 설명했지만, 반복한다. 중요한 건 외워야 한다.

순천만은 이례적인 자연유산이다. 인간이 개입해 생태계의 가치를 높인 특이한 사례여서다. 처음엔 개발 논리가 우세했다. 순천시를 가로지르는 동천이 범람하자 순천만 갯벌의 모래를 퍼내 동천을 정비하려고 했다. 순천시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순천만 대대포구에 내다 버리던 시절이니까 1990년대 일이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운동이 일어났고, 2003년 순천만 갯벌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개발 계획이 무산됐다.

순천만 갈대밭 탐방로를 드론으로 촬영했다. 탐방로가 오리처럼 생겼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후의 시간은 순천만이 세계적 수준의 생태관광지로 거듭나는 시간이다. 순천만은 2006년 국내 연안습지 최초로 람사르 습지에 등록됐고, 이듬해 순천만 일대 7.7㎢가 생태계 보존지구로 지정됐다. 대대포구 주변 식당이 보전지구 외곽으로 옮겨졌고, 샛길 통행을 막기 위해 갈대밭에 탐방로가 놓였다. 2009년엔 철새를 위한 조처가 실시됐다. 순천만 일대 전봇대 282대가 뽑혔고, 0.59㎢ 면적의 논을 경관농업단지로 조성했다. 경관농업 논에서 나는 쌀은 대부분 겨울 철새 먹이로 쓰인다. 하여 일절 농약을 안 쓴다.

지난 10여년간 달라진 건 갈대밭 풍경만이 아니다. 2006년 순천만 방문객은 70만 명 수준이었다. 2019년 1000만 명에 육박했으니, 13년 만에 방문객이 약 14배 폭증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취약종(VU등급)으로 지정해 보호하는 겨울 철새 흑두루미도 이 사이 크게 늘었다. 순천만 보전사업이 본격화한 2008년, 순천만에서 발견된 흑두루미는 344마리였다. 2020년 겨울엔 9배가 넘는 3107마리가 찾아왔다.

순천만 갈대밭의 갈대. 9월 30일엔 아직 푸른 기운이 남아 있었다.

2013년 순천시가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한 것도 순천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박람회가 열린 순천만 국가정원이, 팽창하는 순천시와 순천만 습지 중간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순천만 갯벌은 7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다. 내친김에 순천시는 2023년 두 번째 국제정원박람회 개최를 선언했다. 허석 순천시장은 “이번엔 순천시 전체를 정원으로 꾸밀 작정”이라고 말했다.


순천만을 걷는 방법


물 빠진 와온 갯벌. 바닷물 들락거리는 물골과 사람 드나드는 노둣길이 나란하다. 죄 칠게 밭이다.
공부도 마쳤으니 이제 걸을 차례다. 순천만 갈대길은 13.7㎞ 길이의 탐방로다. 문체부가 조성한 남해안 종주 트레일 남파랑길의 61코스와 그대로 겹친다. 순천시가 조성한 ‘남도 삼백 리 길’ 11개 코스 중 한 코스의 이름이 순천만 갈대길이다. 와온 해변에서 시작해 용산전망대를 올랐다가 순천만 습지를 관통한 뒤 제방을 따라 걸어 화포까지 가면 끝난다.

순천만 갈대길은 걷는 방법이 따로 있다. 이 길만큼은 이정표를 무시해도 좋다. 이왕이면 이틀에 나눠 걸으시라 권한다. 특히 순천만 습지 쪽은 오후에 길에 나서자. 먼저 순천만 습지에서 놀자. 순천만역사관을 둘러보고 순천만습지 쉼터에 들르자. 쉼터에서 갈대 뿌리 넣은 커피와 함께 칠게빵을 먹어보는 건, 순천만을 체험하는 색다른 방법이다. 쉼터에서 나와선 바로 걷지 말고, 순천만 어귀까지 왕복 6㎞를 운행하는 배를 타보자. 강나루(62) 순천만 명예습지안내인에 따르면 운이 좋으면 수달도 볼 수 있다.

이젠 정말로 걸을 시간이다. 바람이 불어도 좋고, 비가 내려도 좋다. 갈대 서걱거리는 소리 만큼 운치 있는 가을 소리도 없다. 갈대밭 구간은 3.2㎞밖에 안 된다. 순천시 순천만보전과 황선미 주무관이 알려준 순천만 걷는 요령을 옮긴다.

“순천만을 걸을 땐, 보폭을 줄이고 자세를 낮추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가능하면 한 장소에서 1∼2분 기다려 주세요. 갯벌에 사는 수많은 생명이 여러분을 만나려고 나올 겁니다.”

순천만 갈대밭에서 용산전망대로 가려면 출렁다리를 건너야 한다.

용산전망대에 오르면 순천만 물길을 사이에 두고 누런 갈대밭과 더 누런 논이 내려다보인다. 9월 30일 용산전망대에 올랐을 땐, 갈대밭에 가을 색이 덜 들었었다. 올해 경관농업 논에 흑미 벼로 새긴 글자는 ‘동아시아 문화도시 순천’이었다. 지난해엔 ‘힘내라 대한민국’을 새겨 화제가 됐었다. 용산전망대도 일몰로 유명하지만, 일몰은 와온 해변에서 맞는 게 낫다. 너른 갯벌 너머로 넘어가는 저녁놀이 장관이다. 이정표 무시하고 역방향으로 걸은 이유가 와온에서 일몰을 보기 위해서다. 허다한 시인이 와온 해변의 황금빛 석양을 노래했다.

순천만습지 쉼터에서 파는 칠게빵. 모양만 칠게처럼 생긴 게 아니다. 반죽에 칠게 가루를 넣었다. 빵에서 '새우깡' 같은 맛이 난다.

용산전망대에서 와온 해변까지 약 5㎞ 구간은 갯벌을 따라 이어진다. 농게, 칠게, 짱뚱어 등 온갖 갯것이 꼼지락거린다. 와온 갯벌은 칠면초 군락지로 유명한데, 올해는 칠면초가 예년보다 적어 아쉬웠다. 가을이면 붉게 변한 칠면초가 장관을 이뤘었다. 순천만 습지에서 화포까지 약 6㎞ 구간은 이튿날 아무 때나 걷자. 제방 따라 길이 이어진다. 마침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 길 정보

순천만 갈대밭은 대체로 평탄한 길이다. 용산전망대를 오를 때 살짝 오르막이 있을 뿐 나머지 코스는 쉬엄쉬엄 산책하기에 좋다. 순천만 습지는 입장료가 있다. 어른 8000원. 순천만 선상투어도 돈을 내야 한다. 어른 7000원. 순천만습지 쉼터에서 파는 칠게빵도 맛보시라 권한다. 100% 쌀빵이다. 생긴 것도 칠게 모양이지만, 칠게 가루를 쌀가루에 넣어 반죽했다. 5개 한 봉지 3500원. 남파랑길 90개 구간 중에서 매우 드물게 입장료가 있는 코스이지만, 기꺼이 돈을 낼 만하다. 유네스코도 인정한 세계자연유산이다.

글ㆍ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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