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옥의 시시각각]대출 난민과 7조원의 선착순 게임
은행에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은 담보도 있다. 신용도 낮지 않다. 그런데도 돈을 빌릴 수 없다. 시중에 몰아치는 ‘대출 한파’와 실수요자까지 내몰리는 ‘대출 절벽’은 모순투성이다. 금융당국의 규제발 ‘대출 경색’이라서다.
은행의 높아지는 문턱, 좁아지는 문을 뚫을 묘수는 없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시중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5~6%)를 향해 다가섰기 때문이다. 남은 잔액은 충분치 않다. 목표치의 하단(5%)은 의미 없는 수치가 됐다. 이미 턱밑까지 찼다.
지난 7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03조4416억원이다. 지난해 말(670조1539억원)보다 4.97%(33조2877억원) 늘었다. 기존 대출 상환 등의 변수를 제외하고 5% 기준을 적용해 단순 계산하면 남은 한도는 22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증가율 목표치 6%로 계산하면 연말까지 5대 은행의 대출 잔액은 6조9152억원이다. 최소 대출 가능 잔액이라 할 수 있다. 증가율 6%대를 꽉꽉 채운다(6.99%)면 대출 잔액은 최대 13조5500억원까지 늘어난다.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약 7조~13조5500억원. 연말까지 가능한 대출 공급액은 이 정도로 추산된다.
■ 총량 규제 ‘금융당국발 대출 경색’
목표치 턱밑에, 좁아지는 은행문
집값 잡자는 결기로 피해자 속출
「
」
이제 대출 수요를 예상해 보자. 지난 1~9월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33조2877억원 늘었다. 월평균 3조6986억원 늘어난 셈이다. 평균 수준으로만 늘어도 석 달간 약 11조원의 대출 잔액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최소 대출 가능 잔액(6조9152억원)과 비교하면 4조원가량이 부족하다. 올 3분기(7~9월) 증가액(13조7805억원)을 생각하면 더 걱정스럽다. 최소 대출 잔액이 3분기 증가액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서다.
이 중 실수요 대출인 전세대출은 우려를 더 키운다. 전세자금 대출은 올해 가계대출 급증의 주범이다. 5대 은행에서 지난 1~9월 전세자금 대출은 16조4985억원 늘었다. 월평균 1조8332억원 늘어난 셈이다. 전셋값 급등 탓이다. 남은 석 달 동안 최소 5조4995억원 정도는 늘어날 수 있다. 잔금 대출도 다른 뇌관이다.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올해 입주 예정인 5만6592세대에 3조원가량의 잔금 대출이 필요하다.
공급은 달리는데 수요만 늘어나면 결론은 자명하다. 일단 값(금리)이 오른다. 대출 가수요를 막으려고 은행이 우대금리를 없애거나 가산금리를 적용해 대출 금리는 오르고 있다. 값이 올라도 살 수 없다면 먼저 빨리 채가는 사람이 임자다. 최소 7조원의 대출을 향한 선착순 게임의 막은 올랐다. 시장은 '대출 발작' 중이다.
대출 곳간을 틀어쥔 금융당국의 변심은 언감생심이다. 하필이면 전세 만기가, 입주 시점이 4분기에 잡혀 있는 지독히도 운 나쁜 이들의 고난의 행군은 이제 시작이다. “실수요자 보호”를 강조한 대통령 말씀이 현실과 다른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염두에 둬야 한다.
대출 창구가 막혀 전세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반전세나 월세 대열에 합류할 각오도 필요하다. 은행 창구가 닫히면 2금융권과 3금융권, 사인 간 거래까지 뚫을 기세는 필수다. 그조차도 안 되면 대출 증가율이 리셋되는 내년 초까지 기다리는 은근과 끈기를 발휘해야 한다. 방심은 금물이다. ‘대출 밀어내기’ 수요에 총량이 빨리 차버릴 수 있는 만큼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올 들어 8개월간 108조원이나 늘어난 나랏빚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면서 가계빚 급증만 위험하다고 ‘대출 경색’도 불사하는 금융당국의 결기에는 집값 급등을 막으려는 의도가 읽힌다. 물론 빵처럼 바로 찍어낼 수 없지만, 집값을 잡을 대책은 공급 확대다. 정답에는 고개를 돌린 채 ‘벼락 거지’와 ‘전세 난민’도 부족해 ‘대출 난민’까지 만드는 이 고집불통의 정책은 정말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일까.
하현옥 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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