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의 생각의 공화국]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했던 위대한 상상을 되살리는 축제

2021. 10. 14.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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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란 무엇인가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출간한 저서 『리바이어던』의 표지.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강력한 바다 괴물의 이름이다. 홉스는 국가를 이것에 비유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인간은 변하는가? 인간 행동을 예측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인간이 별로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곤 한다. 일견 변하는 것 같아도 변치 않는 패턴이 있으니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인간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간에게는 본성이 있어서 예측 가능하고, 예측 가능하기에 통제 가능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실로 인간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며,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 들며, 인센티브에 반응하고, 쾌락을 좇고,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당장 이익을 주는 일에 민감하고, 장기적인 계획에 상대적으로 무심하다. 상당한 고통과 비용이 따르기 때문에, 비약적인 변화를 감행하는 일에 주저한다.

그러나 살다 보면 간혹 비약적인 변화를 목격하는 때가 있다. 천진하던 학생이 졸업을 앞두고 무서울 정도로 계산적인 인물로 변하기도 하고, 낭만적인 청년이 첫사랑에 실패한 뒤 사람을 고깃덩이로 보는 천박한 속물로 타락하기도 한다. 독립투사였던 사람이 친일파로 변하기도 하고, 친일파였던 사람이 독립투사가 되기도 한다. 급격히 살을 빼고 다른 사람처럼 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느닷없이 삭발하고 출가를 감행하기도 한다. 혁명을 꿈꾸던 사람이 인생관이 바뀌어 동료를 밀고하기도 한다.

「 사익 추구하던 이기적 존재들이
정치적 존재가 되는 변신의 과정
공적 권력을 창출하는 축제이자
정치적 인격이 만드는 ‘국민’ 탄생

그러고 보면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을 뿐, 큰 변화를 아예 겪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언제 큰 변화를 겪는가? 변신에 가까울 정도의 비약적인 변화는 언제 일어나는가? 느닷없이, 그러나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변신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마블 코믹스의 ‘스파이더맨’도, 안노 히데아키의 ‘에반게리온’도, 봉준호의 ‘기생충’도 다 변신 이야기다. ‘에반게리온’은 청소년이 정체불명의 괴물과 맞서기 위해 최강 병기로 변신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영화 ‘기생충’은 왜 한국 청년이 빈둥대기를 멈추고 그토록 돈을 사랑하게끔 변했는가에 대한 탐구다.

인간이 만들어 낸 다양한 변신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것이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다. 호라티우스와 더불어 로마의 대표적 시인인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변신은 대체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이의 애타는 갈망으로 인해 일어난다. 정말 더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때, 그러나 포기할 수 없을 때, 변신은 발생한다.

바다의 신이 여인의 미모에 반해서 쫓아온다. 그만 “미모가 재앙이 되고 만 것이다.” 바다의 신에게 붙잡히기 직전, 그녀의 두 팔은 마침내 까만 깃털로 변하기 시작한다. 음탕한 숲의 정령에게 쫓기던 요정 역시 더이상 도망칠 수 없게 되자 갈대로 변신한다. 가장 유명한 것이 아폴로와 다프네 이야기다. 아폴로가 “전사가 쓰는 활이 왜 네게 필요하지?”라고 놀리자, 화가 난 큐피드는 아폴로에게 사랑의 불을 피우는 화살을 쏘고, 다프네에게는 사랑을 거부하는 화살을 쏜다. 이제 아폴로는 달아나는 다프네를 쫓는다. 쉽게 충족되지 않은 욕망은 더 달아오르는 법. 달아날수록 다프네는 아름답게 보인다. “달아남으로 인해 더 눈부셨다.” 지쳐서 더이상 도망할 수 없게 되자 다프네는 외친다. “신이시여, 저에게 호감을 갖지 못하게끔 아름다운 제 모습을 바꾸어주세요!”

이것이 허황한 옛날이야기에 불과한 것일까. 퍼듀 대학의 문학 담당 교수이자 작가인 록산 게이는 『헝거』에서 말한다. “나는 뚱뚱하지 않았었다. 나중에 날 뚱뚱하게 만들었다. 나의 몸이 거대하고 아무것도 뚫을 수 없는 커다란 덩어리가 되기를 바랐다.” 12세에 성폭력을 당한 록산 게이는 남자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일부러 자신을 뚱뚱하고 역겹게 만들고자 한다. 먹고, 먹고, 또 먹어서. 그 결과, 록산 게이는 261kg의 거구로 변신한다.

변신이라고 할 정도로 자신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속설에 따르면, 그런 일은 일생일대의 사랑에 빠졌거나, 죽음의 위협이 닥쳤을 때나 가능하다고 한다. 그것이 어디 개인에 국한된 일이랴. 변신이 어렵기는 조직도 마찬가지다. 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고 목전의 안위를 도모하다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조직이 허다하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나 간신히 정치적 변신을 시도한다. 위기에 따르는 엄청난 비용을 치르지 않고도, 개혁과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정치 리더의 자격이 있다.

가장 의미심장한 ‘정치적 변신’은 대통령 선거 투표일 당일에 발생한다. 투표일에 관례처럼 벌어지는 일들을 상상해보라. 아침에 일어나면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뉴스가 들리고, 날씨와 투표를 연결짓는 일기예보가 나오고, 투표했다고 인증하는 연예인의 사진이 SNS에 올라온다. 시간대별 투표율이 보도되고, 결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관측이 줄을 잇고, 후보자들의 인터뷰가 잇따른다. 마침내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몇 표 차로 당선되었는지 귀 기울인다. 결국 누군가 당선된다.

이 과정에 쏟는 사람들의 관심은 실로 놀랍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어도 근본적으로 새로운 정치는커녕 발표한 공약마저도 온전히 지켜지지 않을 텐데? 결국 지지자들의 기대를 배반하고 말 텐데? 혹시 새로이 구성되는 정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심산인가? 대통령이 새로 임명할 수 있는 자리는 2000여 개에 불과하다던데? 새로 구성되는 정부에서 중책을 맡을 것도 아닐 텐데? 자기 커리어가 바뀔 것도 아닐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투표장에 나와 자기 몫을 다한 시민들의 열정이 놀랍다.

그들은 실로 방안에서 유튜브를 보다가 낮잠을 잘 수 있었는데도 투표장에 일부러 나온 것이다. 아이스크림 한 통을 통째로 퍼먹으며 방안에서 만화책이나 볼 수 있었는데도 투표장에 나온 것이다. 창밖에 내리는 저 소나기에 나쁜 놈들이 떠내려갔으면 좋겠다는 상상만 하고 만 것이 아니라, 비옷을 차려입고 투표장으로 나온 것이다. 혹시 바다 한가운데 요트를 띄워 놓고 선상 파티라도 하고 있었나? 그래도 육지로 뱃머리를 돌려 투표장으로 나온 것이다. 자기보다 한심한 놈에게 지배받기 싫어서라도 굳이 투표하러 나온 것이다.

투표장에 들어서면, 이제 중립 타령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누군가를 기어이 선택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그 자리에 왔다. 자신은 아무 의견이 없다고? 매사에 중립이라고? 누가 정치의식을 중성화하기라도 했나? 투표하는 사람은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날카로운 마음으로 지지 대상을 판별한다. 그러나 투표는 적과 벌이는 전쟁과는 다르다. 미운 놈을 돌도끼로 때려죽여서 갈등을 해소하는 대신, 문명인답게 한 표를 던지는 것이다. 투표는 농성과도 다르다. 세를 과시해서 상대를 굴복시키는 대신, 계산 가능한 한 표를 던지는 것이다.

바로 그 투표 행위를 통해서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이 투표 행위를 통해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본 것 같은 ‘변신’이 일어난다. 자기 자신의 생존과 안위만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인간들이, 그래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공권력을 가진 국가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국가 권력을 창출하고자 투표장에 간 순간, 흩어져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던 사적 존재들은 어엿한 정치적 존재로 변신한 것이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산발적인 사익 추구자가 아니라, 단일한 의지를 가진 국가의 일원이 된 것이다. 투표로 말미암아 ‘국민’이 재탄생한 것이다. 통합된 의지가 생겨난 것이다. 국가와 국민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인격이 탄생한 것이다.

근대 정치 이론의 초석을 놓은 토마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그처럼 한갓 사적(私的) 인간이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낱낱이 흩어져 있던 인간들이 어떻게 단일한 의지를 가진 권력체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일까? 그냥? 심심해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죽지 못해서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지속되는 두려움과 난폭한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인생이 ‘고독하고, 열악하고, 고약하고, 잔인하고, 짧아질까 봐’ 변신하는 것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괴롭기 때문에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변신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삶을 견딜 수 있게 된다. 투표는 인간이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했던 그 위대한 상상을 되살리는 축제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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