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장·남성 정규직의 마당..작은 6%가 '이름'을 찾기까지
[경향신문]
김진숙, 1981년엔 유일한 여성
임금·승진 차별과 싸우기 전
남성 조합원 설득하는 게 숙제
성차별 없는 클린룸은 없지만
한발 앞서 있다는 자부심 커
자동차·조선·철강 같은 제조업 노동자의 이미지는 흔히 대공장의 정규직 남성으로 그려진다. 생산 라인부터 작업 도구까지 남성을 기본값으로 설계돼 있다. 노동조합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투쟁을 주도하고 결정하는 것은 주로 남성들이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 18만여명 중 여성은 1만여명. 비율로 따지면 6%에 불과하다.
이 6%의 여성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담은 기록이 나왔다. 금속노조가 최근 펴낸 <여성 노동자, 반짝이다>이다.
책에는 대우자동차에서 34년간 자동차를 만들다 정년퇴직한 62세 이노이씨부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에서 용접일을 하는 27세 변주현씨까지 금속노조의 여성 노동자 69명의 증언이 담겼다. 제대로 된 밥을 달라는 요구에서 시작된 노동자들의 투쟁이 저임금·장시간 노동 현장을 어떻게 바꿨는지, 그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책을 만든 금속노조의 권수정 부위원장(48)과 김은혜 여성국장(46), 최윤정 조직실장(53)을 지난 5일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만났다.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구상은 2019년 처음 나왔다. 권 부위원장 말이다. “20년 된 금속노조가 자기 역사를 정리할 때 ‘1대 위원장 누구, 2대 위원장 누구’ 이런 방식으로 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었어요.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가 여성 노동자뿐만 아니라 금속노동자들의 자기 역사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최 실장은 “남성 중심의 사회, 그 속의 금속 제조업에서 노동조합을 지켜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책엔 김진숙 지도위원이 1981년 한진중공업에 용접공으로 입사할 때 공장 노동자 1만명 중 유일한 여성이었고, 당시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혐오적인 내용의 노래를 부르며 파업을 했다는 일화가 등장한다. “채용할 때부터 여성을 채용하지 않아요. 제조업 사업장은 ‘남성의 일’이라는 공식이 있는 것이죠. 정규직에 안정된 직장은 남성들의 것이고, 여성의 사업장인 돌봄 노동이나 식당·청소, 렌털 가전 방문점검 이런 것은 다 특수고용 노동자나 비정규직으로 돼 있어요.”(권 부위원장)
경공업·중소기업·여성 중심이던 노동운동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기점으로 중공업·대기업·남성 중심으로 바뀌었다. 여성 노동자들은 임금·승진 차별, 성폭력과도 싸워야 했지만 회사에 맞서기 전 남성 조합원들부터 설득해야 했다. 최 실장은 “사회의 시스템이 처음부터 왜곡되고 비뚤어져 있기 때문에 남성들은 (여성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의 필요성을) 잘 느끼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성차별은 사회 전 영역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그럼에도 금속노조와 함께하는 이유도 분명히 있다고 했다. 금속노조가 노동환경 개선을 공동의 힘으로 회사에 요구하는 노동조합 본연의 기능뿐 아니라, 자기의 존재를 발견하는 공간으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김 국장은 ‘금속노조 활동이 삶을 반짝이게 했다’는 여성 노동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금속노조에 오기 전까지는 사회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고, 공연이나 노래를 해본 적도 없는데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공연도 하고 노래도 하고 글쓰기도 했다는 거예요. 누구의 와이프, 누구의 엄마 식으로 불리다가 금속노조 활동을 하면서 자기의 이름을 찾았다는 노동자도 있었어요.”(김 국장)
권 부위원장은 “성별에 따른 차별이 없는 훌륭한 집단, 클린룸(무균실)은 없다”며 “이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보다 우리(금속노조)가 딱 한발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금속노조는 2001년 설립 때부터 반성폭력 규약을 갖고 있었고, 2004년엔 조직 내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2차 가해’ 개념을 추가했다. 권 부위원장은 이 사건의 피해자였다. 그는 “(금속노조는) 조직 내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부위원장으로 승인한 조직”이라며 “저는 이것이 자랑이다”라고 책에 썼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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