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했던 깐부는 다 어디 갔을까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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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소환해 화제를 끌어오는 몫은 주로 영상 미디어다.
그런 예는 무수히 많은데, 가까이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정교하게 옛 시대의 감성을 살려냈다.
깜보가 그것인데, 딱지와 구슬치기를 할 때 깜보끼리 적을 속이기 위해 비밀리에 덫을 놓기도 했다.
드라마에서는 그냥 달고나로 지칭되었지만, 사실 '뽑기집'에서 파는 메뉴는 상당히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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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소환해 화제를 끌어오는 몫은 주로 영상 미디어다. 그런 예는 무수히 많은데, 가까이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정교하게 옛 시대의 감성을 살려냈다. '오징어 게임'이 불러온 추억은 드라마의 힘과 함께 파장이 넓어지고 있다. 게임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의 온갖 놀이의 추억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정글짐에서 술래를 정해서 쫓던 게임, '다방구'라고 부르던 엄청난 운동량의 술래잡기, '오징어가이상'(일본어의 냄새가 나는)은 늘 피부가 긁히고, 옷가지가 찢어져서 어머니의 원성을 사곤 했다. 길목을 지키는 아주 튼튼한 적을 돌파하기 위해 회유, 성동격서, 인해전술 같은 기술을 얼마나 많이 썼던가. 멀쩡한 언니의 책을 찢어서 딱지를 접었다가 치도곤을 당한 내 또래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딱지를 잘 치자면 손목의 스냅과 빠른 팔의 스윙, 떨지 않는 과감함, 지치지 않는 지구력이 필요했다. 딱지 게임 한 번에도 생각보다 복잡한 에너지들이 작동했다. 딱지와 구슬게임은 아마도 남자애들의 전용 놀이였을 텐데, 어른 세계의 권력 암투나 합종연횡을 미리 배우던 무대였다. 깜보가 그것인데, 딱지와 구슬치기를 할 때 깜보끼리 적을 속이기 위해 비밀리에 덫을 놓기도 했다. 더러는 어른 도박판의 기술이 영입되기도 했다. 밑장빼기 같은 것들 말이다.
깜보냐 깐부냐 말이 많은데, 서울 수도권에서는 아마도 깜보가 대세였던 것 같다. 배우 박중훈의 1980년대 영화 데뷔작 제목도 깜보였다. 경상도 출신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가부'나 '가보'라고 불렀다고 한다. 어느 호사가는 이 말을 듣고는, 아마도 가부가 일본어에서 주식을 뜻하는 '가부(株)'에서 왔을 것이라고 한다. 딱지나 구슬을 걸고 한판 게임을 할 때 깜보(가부)끼리 서로 갖고 있는 보유액을 교환하거나 대여해주기도 하는데, 이런 정황이 주식이 오고가는 금융시장, 즉 일본어로 가부시키(柱式)와 비슷하지 않느냐는 주장이었다. 깜보나 가부를 동맹이라고 하는 지역도 있었던 걸 보면, 또한 이런 행위를 뜻하는 동사가 '맺다'나 '걸다'인 걸 보면 맞는 해석일 수도 있겠다.
드라마에서는 그냥 달고나로 지칭되었지만, 사실 '뽑기집'에서 파는 메뉴는 상당히 복잡했다. 달고나와 뽑기는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달고나가 달콤하게 먹는 일에 치중하는 메뉴였다면, 뽑기는 도박성이 있었다. 본을 떠내기 위해 온갖 기술이 동원되었는데 최고는 침 묻힌 바늘이었다. 이 기술은 일정의 봉인된 비기여서, 주인에게 들키면 절대 경품을 주지 않았다. 꼼꼼한 주인은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감시를 했다. 어떤 주인은 그래서 현장을 벗어나서 뽑기를 하지 못하도록 통제했다. 뽑기 말고도 전설적인 메뉴로 '쨈'이 있었는데, 아마도 전분을 풀고 달콤한 포도당, 인공감미료를 끓인 과자였을 게다. 주인이 연탄불에서 끓여서 주면 대충 물 채운 컵에 넣어두던 공용 숟갈로 아껴 퍼먹는데, 정말 잼처럼 달고 녹진해서 입안을 채우던 그 밀도와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먹을 게 없던 시절에 그나마 단것의 욕망을 채워주던 달고나, 뽑기, 쨈의 기억이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다. 겨울에는 간이 천막을 치고 사과상자 하나, 연탄불 놓고 벌어먹던 그 주인들, 곱아터진 손으로 뽑기하던 한겨울의 아이들, 그 공간을 벗어나서 뒤돌아보면 겨울바람에 펄럭이던 뽑기집 천막 자락이 스산했던 기억이 치밀어오르기 때문이다.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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