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트럼프' 무서운 기세..대선 3파전 구도 뒤흔들까

김혜리 기자 2021. 10. 13. 21:4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극우 언론인 ‘에리크 제무르’
출마선언도 안 한 낯선 인물
“무함마드 성씨 사용 금지” 등
막말로 존재감 급격히 키워
여론조사서 르펜 누르고 2위

‘프랑스의 트럼프’라 불리는 극우 언론인 에리크 제무르가 지난 9월 프랑스 툴롱에서 열린 출판 기념회에서 자신의 신간을 소개하고 있다. 툴롱 | 로이터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대표, 안 이달고 파리시장 간 3파전으로 예상됐던 차기 프랑스 대선전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프랑스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파 언론인 에리크 제무르(63)다.

여론조사 기관 해리스 인터랙티브가 지난 6일(현지시간) 발표한 대선 후보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제무르는 17%를 얻어 24%의 마크롱 대통령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올해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줄곧 2위를 지켰던 르펜 대표는 3위(15%)로 밀려났다.

지난 7월까지만 해도 5% 안팎을 맴돌던 제무르의 지지율은 몇 개월 만에 급상승했다. 해리스 인터랙티브는 지금껏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특정 후보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지지율이 치솟은 경우는 없었다고 밝혔다.

소속 정당은커녕 정치 이력도 없고, 대선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인물이 대선 후보 지지율 2위에 오르면서 내년 대선 구도에 지각 변동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르펜 대표의 아버지이자 국민연합 당 창시자인 장마리 르펜조차 “제무르가 더 적합한 후보로 보인다면 딸이 아니라 그를 지지할 것”이라고 르몽드에 말했다.

프랑스 보수일간지 르피가로에서 오랫동안 기자로 일해온 제무르는 2014년 출간한 저서 <프랑스의 자살>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책에서 “이민자와 동성애 등의 문제로 프랑스는 자살의 길을 걷고 있다”고 주장하며 타인을 포용하는 톨레랑스가 현대 프랑스의 기반이 될 수 있게 한 68혁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인종차별적 혐오발언으로 2018년에 유죄 판결을 받은 전적도 있는 그는 르펜 대표보다 더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무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TV쇼를 통해 유명해졌듯이 제무르도 ‘프랑스의 폭스뉴스’로 불리는 우파성향의 C뉴스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인기를 얻었다.

제무르는 올해 출간한 저서 <프랑스는 마지막 단어를 말하지 않았다>의 표지를 디자인할 때 트럼프의 2015년 저서 <불구가 된 미국> 표지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도 했다. 그는 “표지뿐만이 아니다. 정치 경력이 전혀 없고, 노동계급의 주요 관심사가 무역과 이주민 문제라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당 밖의 사람이라는 점에서 (트럼프와)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제무르는 유럽의 백인들이 이민자들로 대체되고 있다는 ‘대전환’ 음모론을 지지하며, “이주민 아동은 모두 도둑, 살인자, 강간범들이라 내쫓아야 한다”거나 “무함마드 같은 성씨의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발언들로 여러 번 도마에 올랐다.

제무르의 지지자들은 주로 프랑스판 미투 운동(Wokisme), 인종차별 반대 등 기존 프랑스 사회에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목소리를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제무르 지지자들에게 그는 정치적 올바름에 포위된 사회에서 마음껏 숨쉴 수 있게 해주는 시원한 공기와 같은 존재라고 평가했다.

대선까지는 6개월이나 남아있고 제무르는 아직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상태다. 현재 프랑스 내에서는 대선전은 이제 1라운드에 불과한 만큼 제무르의 인기가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쉽게 꺼질 바람이 아니라는 분석이 맞서고 있다.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에 기존 후보들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마크롱 대통령도 지난달 28일 “성씨에 따라서 프랑스인의 정체성이 결정되지 않는다”면서 제무르의 무함마드 성씨 금지 발언을 공격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