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불타는 인삼
[경향신문]
“인삼딸”은 인삼의 열매를 말한다. 인삼 재배 농민들은 그렇게 부른다. 적어도 3년 이상을 키워야 맺히는 붉은 열매가 딸같이 귀하고 소중하다는 뜻이다. 최근엔 ‘진생베리(ginseng berry)’로도 불린다. 인삼은 ‘고려 인삼’ 이래 국내외를 막론하고 약용작물의 대표로 여겨진다. 인삼 이외에도 10여개의 명칭이 있을 정도로 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하지만 뛰어난 약리적 효능만큼 인삼 재배는 까다롭다. 우선 씨앗을 틔우는 것부터 쉽지 않은 데다 재배하는 과정에서도 햇빛 가림 시설 등 온갖 시설과 정성이 필요하다. 특히 상품성을 인정받는 인삼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을 매달려야 한다.
그런데 한창 수확의 기쁨에 들떠야 할 인삼 재배 농민들이 인삼을 포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전국의 인삼 재배 농민들이 충남 금산의 인삼엑스포광장에 모여 수삼을 쌓아놓고 ‘인삼 화형식’을 치렀다. 인삼밭도 갈아엎는다. 인삼 가격 폭락에 따른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수급조절 실패에 따라 인삼 가격은 예년 대비 27% 폭락했다. 농민들의 체감 수치는 “반토막, 50%”라고 한다.
인삼 농가들은 최근 수년째 가격 하락에 직면하고 있다. 공급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느는데 건강기능식품의 다양화 등으로 수요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 판매의 효자 노릇을 하던 여러 인삼축제들이 없어졌다. 중국인 관광객이 감소한 것도 한 원인이다. 농민들은 지난봄부터 가격 급락에 따른 대책을 촉구했지만 정부가 수급조절 품목이 아니라며 손을 놓았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농민들이 인삼을 불태우는 것은 직장인으로 치면 3년, 6년치의 연봉을 통째로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우리의 인삼이 어쩌다 이런 상황을 맞았는지 당혹스럽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뒤늦게 인삼공사 등을 통한 수매 확대 방침과 함께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한 경작신고의무제 도입의 추진 계획을 밝혔다. 정부와 인삼 농가의 혁신 노력이 필수이지만 당장 재고로 쌓이는 인삼을 해소하는 일이 시급하다. 우리 인삼산업 활성화를 위한 소비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것 같다.
도재기 논설위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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