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예나 지금이나 부정·혼탁 선거를 허하지 말라

2021. 10. 1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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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문화통치 시기 25세 이상 남자만 참정권 이름만 직선제 사실상 친일파 대거 당선 부정선거 항의·체납자 자격 상실 등 이어 현대 선거와 대동소이… '역사는 반복된다'

대선 정국의 혼탁한 경쟁이 가관이다. 이번 대선이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전이 될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된 느낌이다. 정책은 간 곳 없고 오로지 상대에 대한 비방과 '카더라 통신'만 난무하는 모양새다. 여당의 경선 후유증도 크다. 이런 일들이 어제 오늘에 갑자기 나타난 일은 아니다. 100년 전 기사를 보면 그때의 선거 역시 지금과 대동소이하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일깨워주는 근대뉴스다.

1923년 11월 29일자 매일신보를 보자. '경성부 협의원 선거 부정투표 문제, 어제까지 7건이 현로(現露;드러남), 투표권 없는 여자가 그나마 대리를 보내 투표한 것'이란 제목의 기사다. "지난 20일에 집행한 경성부 협의원 선거에 부정사건이 있었다 하여 시내의 언론기관은 물론 일반 시민은 당국에 대하여 철저한 교섭을 개시하고 부정사건 조사에 대하여 활동을 하게 되었다 함은 이미 보도한 바어니와, 어제까지 조사 발견된 자는 선거권을 가지지 못한 여자가 남자를 대리로 보내 투표한 건수가 벌써 7건에 달하였다는데, 시내 언론기관과 일반 시민은 어디까지든지 이번 선거와 같이 부정한 것은 장래 조선 자치(自治)의 실현을 위하여 방임할 문제가 아니므로 다시 선거를 집행케 하여 장래 이후의 폐해를 막고자 관계 당국자의 태도를 물어 보기로 되었다더라."

3·1 운동 이후 이른바 '문화통치'가 단행되면서 조선인 참정권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제는 조선인들을 달래고 또 분열시키기 위해서 형식적이나마 참정권을 부여하는 형태를 고민했다. 그 결과가 1920년 처음 설치된 도평의회(道評議會) 및 부군면협의회(府郡面協議會)다. 도평의회는 광역의회이고, 부군면협의회는 기초의회였다.

하지만 참정권의 제한이 있었다. 5원 이상의 국세를 낸 25세 이상의 남자만이 선거권을 가졌다. 국세 5원은 지금으로 치면 한달 월급이 300만원 정도 되는 사람의 근로소득세에 해당된다. 선거는 혼탁했다. 명색이 직선제지만 사실상 총독부가 미는 인사들이 당선됐다. 대부분 친일파들이었다. 이는 선거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1924년 4월 7일자 동아일보에는 '군청의 허위선전으로 도평의원의 부정선거'란 제목의 기사가 게재되어 있다. "충남 논산군에서는 충남도 평의원 선거에서 벌곡면 협의회원 중에서 송헌수(宋憲洙)의 대리로 그 손자가 대리투표한 일이 요사이 발견되어 일반 민중은 선거운동에 군청 관리가 가담한 것과 면협의원의 대리투표를 면장은 물론 군수까지도 이때껏 발견을 아니한 것은 그 이면에 무슨 흑막이 있는 것이므로, 이번 선거된 강영식(姜永植)씨는 당연히 무효로 함이 옳다고 물의가 분분하다더라."

1920년대를 지나 1930년대에도 선거에 있어 말썽은 여전했던 모양이다. 1939년 5월 20일자 매일신보 기사다. "경성부 내 모 경찰서에서는 2, 3일 전부터 비밀리에 활동을 개시하여 선거 전의 맑은 공기를 흐리게 하는 혐의자에게 날카로운 눈을 드리고 있던 바, 마침내 확실한 증거가 들어나게 되어 (중략) 이틀밖에 안 남은 선거의 최후 심판일도 머리 위에 다가오고 있는 관계로 위반자의 이름과 10여 명의 관계자의 이름도 절대로 발표하지 않고 극비리에 취조를 계속하고 있다."

의원을 뽑는 선거뿐 아니라 금융조합의 임원 선거에도 부정이 있었다. 1927년 11월 24일자 동아일보에는 "평안북도 정주읍 내에 있는 정원(定原)금융조합에서 임원을 선거하였는데, 당선된 몇 명의 임원이 '부정하게 선거된 임원이 복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표를 제출하였고 일반 조합원들도 임원들을 신임할 수 없다는 이유로 총회를 소집하고자 운동 중이다"는 기사가 보인다.

투표권자의 선거 자격을 상실시키자는 기사도 눈에 띤다. 1929년 11월 14일자 매일신보의 '500여 명의 세금 체납자, 선거 자격을 상실'이란 제목의 기사다. "마산부 협의원 선거 유권자 중 현재 세금 미납자가 조선인 400여 명, 일본인 100여 명이나 된다는데, 부정(府政) 규책에 의하면 선거권을 가진 자로서 부세 체납 처분 중인 자는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명문(明文;명백하게 기록된 문구)이 있으므로 마산부에서는 10일 미납자 체납 처분에 착수하였다. 그리하여 500여 명의 체납자가 납세하지 않은 관계로 당연 선거권을 손실하게 될 모양이라더라."

부정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격렬한 항의를 보도한 기사도 상당히 많다. 1935년 5월 27일자 조선일보의 '부정선거 규탄 시민대회 준비'라는 제목의 기사다. "이번 진주 읍의원 선거에서 유권자 대리투표 등의 부정 사실이 폭로되어 재선거 요구의 구체화로 전개되어 22일 밤에는 탄핵 시민대회 준비회까지 성립되었는데, 회장에 최두환(崔斗煥)씨와 간부 5명의 위원을 배정하고 재선거를 요구하기 위하여 철저히 규탄하기로 결정한 바 (중략)."

부정선거를 조사해 관련자들을 처벌한다는 기사도 보인다. 1939년 5월 24일자 매일신보의 기사 중 '선거는 끝났으나 오점은 15개!, 전선(全鮮)에서 29명 검거, 취조'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인다. "이번에 전 조선적으로 실시된 부(府), 읍(邑), 면(面)의원 선거전은 입후보자들이 서로 협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22일 현재 투표를 해달라고 유권자를 매수한 것과 호별 방문한 것이 15건 29명에 이르렀고, 경찰서에서 취조를 하는 중이니 취조가 끝나면 설혹 당선이 되었더라도 위반 사실에 비추어 낙선의 고배를 맛보게 될 것이다."

백년하청(百年河淸)이란 말이 있다. 황하(黃河)의 물이 백 년에 한 번 맑아진다는 뜻이다. 즉 황하가 맑아지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아무리 기다려도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나, 기대할 수 없는 일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100년이 지난 후인 2121년 선거철에는 '백년하청'이란 말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사어(死語)가 되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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