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그룹 '입김' 관행 깬다..SK "계열사 CEO 이사회가 결정"

김영배 2021. 10. 1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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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평가·보상 각 사 이사회 전담 방안의 연장선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이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에스케이 서린 사옥에서 화상으로 열린 ‘제3차 거버넌스 스토리 워크숍’에 참석해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에스케이 제공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대표이사는 개별 기업 단위에서 이사회 결의로 선정하는 게 원칙이다. 상법 규정에 따른 것이다. 회사 대표를 뽑는 일은 그 회사 이사회 소관이라는 이 당연한 상식이 국내 재계에선 통하지 않는다. 해마다 연말께 내로라하는 대기업집단(재벌)들이 그룹 차원에서 정한 계열사 사장단 후보군을 일괄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13일 <한겨레> 취재 결과, 에스케이(SK)그룹이 오래 묵은 이 관행을 깨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계열사 최고경영자를 뽑을 때 그룹 차원의 입김을 배제하고 각 사 이사회에서 추천받아,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에스케이그룹 관계자는 “앞으로 (관계사) 최고경영자 후보군을 각 사 이사회에서 발굴해 결정하는 방식으로 가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관계사마다 사정과 준비 상태가 다 달라서 바로 할 수 있다고 대외적으로 알리기는 이르지만, 방향성은 확실하며 신중하되 강한 의지를 갖고 연구·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도 (각 사) 이사회 자율로 최고경영자를 발굴하고 평가·보상한다고는 하나, 아직 그룹(계열사 사장단 협의체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후보군을 내려보내는 게 관행”이라며 “앞으로는 이런 걸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계열사의 최고경영자 발굴, 선임을 각 사 이사회로 돌리는 방침은 시이오의 평가·보상을 이사회에 전담 결정하도록 한 최근 조처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에스케이그룹은 지난 11일 “올해 연말부터 최고경영자 평가와 보상을 각 관계사 이사회에서 전담 결정하는 등 이사회 경영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재벌 총수가 각 회사 이사회를 거치지 않고, 또는 사실상 건너뛰면서 맘대로 결정하는 것은 다른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개별 회사 경영에 대해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이라며 “(이를 멈추는 결정을 실제 하게 되면) 법 취지를 지키겠다는 것이며 비정상의 정상화가 조금씩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에스케이그룹이 각 사 이사회 기능을 정상화하는 식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꾀하고 있는 것은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여느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에스케이 또한 기업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디스카운트’(평가 절하) 문제의 핵심이 비정상적 지배구조에서 비롯한다는 분석은 꾸준히 있었다.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 있는 에스케이(SK)그룹 사옥. 에스케이 제공

에스케이 관계자도 “(글로벌 경영의 새 흐름을 이루고 있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중 환경보호(E)나 사회적 책임(S) 부분에선 ‘사회적 가치 추구 경영’을 통해 진전을 보고 있지만, 지배구조개선(G) 항목에선 저평가를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외국 투자자나 평가기관들이 ‘오너’(지배주주)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구조로 여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지배구조개선 방침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게 되면 더욱 책임감있게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회에 사외이사가 줄줄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란 설명을 덧붙였다. 수펙스추구협의회에 참여하는 관계사 17개사 중 12개사(비상장 2개사 포함)가 이사회 내에 인사위원회를 두고 있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으로 꼽힌다. 에스케이그룹은 나머지 관계사들에도 가급적 올해 안에 인사위를 꾸리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각 사 이사회를 정상 궤도로 돌리는 게 지배주주인 최태원 그룹 회장에게도 결국 유익한 결과로 돌아갈 것이란 판단을 내부에서 내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에스지 경영이 확산하는 추세에 맞고 기업가치를 높일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이 대목이 실행을 담보할 수 있는 첫 번째 배경이란 설명이 여기에 덧붙는다.

그룹 내부에서 들고 있는 한 가지 문제는 최고경영자 후보를 발굴하고 추천하는데 주역을 맡을 사외이사들의 역량이다. 관료, 교수 등 다양한 출신의 사외이사들이 최고경영자급에 걸맞은 후보군을 끌어오고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물음표가 남아 있다. 에스케이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 17개 관계사 중 상장된 10개사의 이사회에서 사외이사 비중이 60%를 웃돌고, 이 중 7개사에선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스스로 선언하는 형식으로 각 계열사 이사회에서 최고경영자 후보를 추천, 결정하도록 한다면 전향적”이라며 “에스케이그룹이 이에스지 경영의 최선봉에서 전면적이지는 않아도 기본적인 것을 하나하나 고쳐나가겠다고 한 대목은 유의할 만하다”고 말했다. 남 실장은 “때늦은 감은 있으나 정상화 과정이며, 다른 재벌그룹의 상장 대표기업들에 적지 않은 압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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