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역사 무서웠지만 미얀마 연대 투쟁에 나선 이유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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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 무서웠지만, 지속하여 오월을 접했다."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 이사 김유빈(29)씨는 최근 출간된 <포스트 5·18-지금 세대가 오월을 마주하는 10가지 방법> (문학들)에 '오월이 무서운 나의 고백'이라는 글을 실었다. 포스트>
"봄 소풍으로 망월동 국립5·18민주묘지에 가고, 놀러 나갔던 시내가 (오월의) 금남로와 충장로였고, 구 도청이 천막에 가려진 채 1980년 그날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김씨는 "나의 모든 생활권이 오월이었고, 이 무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체념을 배우며 '광주 사람'이 되도록 교육받았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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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빈씨 등 '포스트 5·18' 청년 10명
'오월을 마주하는 10가지 방법' 담아
“오월이 무서웠지만, 지속하여 오월을 접했다.”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 이사 김유빈(29)씨는 최근 출간된 <포스트 5·18-지금 세대가 오월을 마주하는 10가지 방법>(문학들)에 ‘오월이 무서운 나의 고백’이라는 글을 실었다.
“봄 소풍으로 망월동 국립5·18민주묘지에 가고, 놀러 나갔던 시내가 (오월의) 금남로와 충장로였고, 구 도청이 천막에 가려진 채 1980년 그날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김씨는 “나의 모든 생활권이 오월이었고, 이 무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체념을 배우며 ‘광주 사람’이 되도록 교육받았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초등학교 때 부모를 따라 갔던 망월동 묘역에서 “처음으로 죽음을 보았”던 김씨는 중학교 때 봤던 5·18다큐멘터리가 또다시 공포로 다가왔다. 그가 오월에 대해 느끼는 또 하나의 감정은 “화가 난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광주 밖에선 ‘역시 광주는 다르다’고들 하신다.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광주는 호명된다. 광주도 ‘지금’을 살고 있는데, 광주를 호명하는 이들은 1980년 5월의 그때 만을 호명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런 김씨가 “아이러니하게도” 5·18기념재단 자원활동가가 됐다. 5·18기념재단 국외인턴으로 타이와 캄보디아 엔지오(NGO) 단체에서 활동했던 그는 “타이에는 ‘미얀마 8888혁명’에 참여했던 분들도 있어 오월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정의를 공유했다는 것만으로 나는 그들의 동지가 됐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을 한 그는 귀국 뒤 본격적으로 5·18 관련 기록들을 읽기 시작했다. 김씨는 “(이후) 망월동에 가더라도 (그분들이) 목숨을 바친 정의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고 할 정도로 친숙해졌다.
하지만 지난 2월부터 페이스북으로 미얀마 친구들이 올려주는 현지 모습에 충격을 받은 김씨는 “나는 또다시 오월의 죽음을 마주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고 했다. 미얀마 친구들이 걱정스러워 메시지를 남겼던 그는 “정의를 위해 싸울 것”이라는 답변에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그들과 연대하기 위해 미얀마 민주주의 투쟁 연대를 요청하는 문장을 읽는 동영상을 찍어 보냈다. 그런데도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보는 (미얀마의) 피가 고인 웅덩이가 여전히 오월을 떠오르게 한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이런 감정을 “수직적으로 내려온 트라우마”라고 생각한다. 오월에 대해 깊게 이야기하는 친구들은 없지만, 대부분 ‘오월 사진’을 볼 때면 격하게 반응한다. 그는 “오월을 겪지 않았지만, 공포의 기억을 학습한 내 또래 청년들을 위해 광주에 작은 공간이라도 ‘오월이 아닌 곳’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오월이 아닌 광주에서 머무르며 광주의 음식, 문화, 역사 등을 생각하고 마음의 쉼을 가지다 보면 오월을 조금 더 옆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책에는 김씨처럼 5·18 이후 태어난 10명의 활동가·기획자 등이 만났던 “저마다의 5·18”이 담겼다. 오월의 이미지를 담은 엽서를 만들어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작업을 하는 기획자 김지현씨, 페이스북을 통해 이 시대의 <투사회보>를 배포하는 하는 활동가 김동규씨 등이 만났던 오월의 얼굴은 다양하다. “오월을 기억하는 방법에 정답은 없다”는 생각으로 “오월을 잇고자 하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다양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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