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글씨 쓰고 백신 접종까지..문어 다리 닮은 만능 그리퍼 개발

문어 다리(왼쪽)를 닮아 복잡한 형상의 물건까지 안정적으로 집을 수 있는 흡착형 로봇이 개발됐다. 한국기계연구원 제공

문어 다리를 닮아 복잡한 형상의 물건까지 안정적으로 집을 수 있는 흡착형 로봇이 개발됐다. 뒤집개를 잡아 호떡을 뒤집고 굽거나 붓을 집어 붓글씨를 쓰고, 백신 바이알이나 주사를 다루는 데도 성공했다.

송성혁 한국기계연구원 첨단생산장비연구부 로봇메카트로닉스연구실 선임연구원 연구팀은 기존 진공 흡착 그리퍼가 집기 힘든 복잡한 형상의 물건도 안정적으로 집을 수 있는 만능 그리퍼를 개발했다고 13일 밝혔다. 그리퍼는 사물을 잡는 도구를 뜻한다.

이번에 개발한 그리퍼는 다양한 사물을 집은 다음 위치를 단단하게 고정할 수 있어 사물로 일상생활 속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다. 문어가 다리와 빨판을 동시에 이용해 다양한 사물을 잘 집는 것에 착안해 개발됐다. 문어가 물체를 잡기 위해 가장 먼저 다리로 물체를 휘감는 것처럼 그리퍼도 물체에 닿으면 물체를 감싸 안는다.

송성혁 선임연구원이 흡착형 그리퍼를 시연하는 모습이다. 그리퍼가 손가락을 감싼 후 단단히 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기계연구원 제공

연구팀은 이를 구현하기 위해 유연한 그리퍼 표면에 미세 와이어 구조를 나란히 배치했다. 물체가 미세 와이어를 누르면 그리퍼 구조가 물체 방향으로 오므라든다. 문어 빨판이 물체 형상대로 바뀌며 흡착하듯 그리퍼 표면의 유연한 구멍이 물체 형상대로 변화해 밀착한 후 강하게 흡착한다. 구멍은 벌집 형상으로 이뤄져 표면이 심하게 굴곡져도 맞출 수 있게 설계됐다.

흡착 그리퍼 바깥 구조는 실시간으로 단단하거나 말랑하게 바꿀 수 있도록 설계됐다. 문어가 물체를 집은 후 단단해지는 데 착안했다. 송 선임연구원은 “사물을 파지한 후 그리퍼의 외곽 구조가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물체의 위치가 고정되기 때문에 파지한 사물로 다양한 일상 작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흡착형 그리퍼는 일상생활 속 사물을 집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비대면 서비스도 제공했다. 연구팀은 그리퍼를 로봇팔에 장착한 후 뒤집개를 잡아 호떡을 뒤집으면서 굽거나 서예를 위해 벼루와 먹물, 화선지, 붓을 다루며 붓글씨를 쓰는 데도 성공했다. 백신 접종에 필요한 백신 바이알을 꺼내고 주사기에 백신 약제를 넣은 후 주사를 놓는 동작도 가능했다.

흡착형 그리퍼를 이용해 백신을 마네킹에 접종하는 모습이다. 냉장고에서 바이알을 꺼내고, 바이알 뚜껑을 연 다음 주사기에 주사액을 주입하고, 주사로 접종하는 것과 유사한 과정들을 하나의 그리퍼로 구현이 가능하다. 한국기계연구원 제공

박찬훈 기계연 로봇메카트로닉스연구실장은 “개발된 흡착형 만능 그리퍼는 모터나 복잡한 기구 메커니즘 없이 단순한 흡착만으로 복잡한 작업까지 수행할 수 있는 세계 최초 기술”이라며 “향후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사물을 효과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비대면 서비스 로봇 개발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기계연 기본사업인 ‘올인원 로봇 작업 시스템을 위한 스마트 엔드 이펙터’ 과제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