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윳값에 칼 빼든 정부..낙농진흥회 수술대에 올린다
원유 가격 생산비 연동제는 못 건드려
사료 가격 안정 '당근'에도 업계 반발 극심
정부가 원유(原乳·우유의 원재료) 가격 결정권을 가진 낙농진흥회의 의사 결정 구조를 손 볼 방침을 밝혔다. 원유 수요 감소를 반영하지 못하는 원유 가격 생산비 연동제는 당초 수술대에 올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건드리지 못했다. 정부는 낙농업계의 극심한 반발을 감안해 생산비를 줄여 사료 가격을 낮추는 방법으로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당근’도 함께 제시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소비자와 전문가, 유업계, 낙농업계가 참여하는 ‘낙농산업 발전위원회’ 2차 회의를 통해 정부안을 13일 공개했다. 정부안의 핵심은 현행 낙농진흥회의 의사 결정 구조를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원유 가격은 낙농진흥회 이사회를 통해 결정된다. 그런데 생산자(낙농가)가 반대하면 이사회를 열 수 없어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 자체가 불가하다. 15명의 낙농진흥회 이사 가운데 7명이 생산자측 이사로 구성돼 있는 상황에서 이사회 3분의 2가 출석해야만 이사회를 개의할 수 있는 정관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도 정부는 1년 간의 제도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 없이 시간을 보냈다. 농식품부는 지난 1차 회의에서 낙농진흥회를 두고 “비합리적 구조”라면서 이례적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농식품부는 “지난 1년간 낙농진흥회를 통해 생산자, 수요자, 전문가, 소비자가 참여하는 소위원회를 1년간 운영하며 제도 개선을 논의해 왔지만 생산자가 논의에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제도 개선 논의에 진전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부는 낙농진흥회의 이사회 구성을 바꿔보겠다는 방침이다. 이날 박영범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낙농진흥회의 의사결정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며 “낙농진흥회를 공공기관에 준하는 수준에서 합리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각각 1명씩인 소비자와 전문가 몫의 이사 수를 늘리고, 이사회 개의 조건을 완화해 낙농업계 종사자들로 구성된 이사들이 반발해도 이사회가 열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원유 가격 생산비 연동제’는 개선 대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원유 가격 연동 제도는 수요 변화 등과는 상관없이 원유 가격을 계속 끌어올렸다는 지적을 받는다. 무조건 생산비를 보전해주는 방식이어서, 수요가 줄어도 공급을 줄이거나 생산비를 절감하려는 노력을 요하지 않는 부작용이 발생해왔기 때문이다.
국민 한 사람 당 흰 우유 소비량은 매년 줄어, 지난해에는 한 사람당 26.3㎏으로 1999년 24.6㎏ 이후 가장 적었다. 그럼에도 낙농진흥회는 원유 가격을 리터(ℓ)당 926원에서 947원으로 21원 올렸다. 수요가 줄면 가격이 떨어져야 하는 시장 원리와 관계 없이 원유 가격이 결정되고 있
대신 낙농업계에 제시하는 당근책으로 생산비 절감을 지원하기로 했다.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면 사료값이 따라 오르기 때문에, 이를 상쇄할 수 있도록 정부 주도로 안정적인 사료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20년간 우유 생산비는 리터당 373원(85.6%)이 올랐고, 사료비의 비중은 6.7%P 늘었다.
하지만 이 같은 당근책에도 불구하고 낙농업계가 무조건 수익을 보전해주는 방식을 쉽사리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낙농육우협회와 전국낙농관련조합장협의회로 구성된 낙농가 단체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깜깜이’ 제도개선을 추진하는 것은 낙농말살을 위한 계략”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승호 낙농육우협회장은 “과거 이사회나 총회 개최가 문제가 된 사례가 없었다”며 “사단법인인 낙농진흥회를 공공기관처럼 운영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학계와 소비자단체 등은 대체적으로 정부안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윤성식 연세대 교수는 “낙농진흥회를 특수법인에서 공기업이나 공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지인배 동국대 교수도 “낙농진흥회 이사회의 책임과 권한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며 정부 측 의견이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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