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리즘] 저널리즘을 사랑한 능력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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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재미가 없다. 활자나 건조한 중계로 가득 찼을 때는 더하다. 그런데도 보는 경우가 있다. 눈길만 스쳐도 화나는 제목을 봤을 때다. 확인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뉴스창을 연다. “대체 무슨 소리야?” 하는 마음이다. 결과는 대체로 “어휴 열 받아!” 하는 후회다. 클릭바이트에 목마른 매체들에 이런 화는 유력한 마케팅 수단이다. 분노나 호기심 유발 제목으로 뉴스창을 채우면 정량 성과는 보장된다. 주로 포털 사이트 화면에서 이뤄지는 일이니 브랜드 평판 훼손 가능성쯤은 감수하는 듯하다. 적잖은 매체의 뉴스창이 분노로 분주하다. 결국 많은 독자에게 뉴스는 안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물론 남다른 다짐으로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곳도 있다. 그렇다고 독자들이 남다른 일부 매체의 '닷컴'을 각별히 기억해뒀다가 굳이, 기꺼이, 일부러 찾는 일은 드물다. 검색이며 이용이 압도적으로 편하고 즐거운 다른 플랫폼은 수두룩하다. 게다가 세상엔 즐거운 게 너무 많다. 넷플릭스와 로블록스가 경쟁하는 시대 아닌가. 언론사 닷컴의 뉴스라니. 쉽지 않다. 묵직하게 저널리즘의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매체들엔 전쟁터가 따로 없는 환경이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말 그대로 전쟁, 사투다.
오징어 게임보다 무섭고 허탈한 클릭 게임에 뛰어들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는 없을까. 한국일보 뉴스룸이 도모하려는 세 줄기 해법은 이렇다. △더 깊게 더 집요하게 공들인 기획ㆍ탐사ㆍ연재를 추구한다. (중간착취의 지옥도, 국가가 버린 주민들, 농지에 빠진 공복들 등) △독자가 삶에서 당면한 어려움이나 고민을 해소할 수 있는 주제를 더 충실히 다룬다. (그래도 출근, 오은영의 화해 등) △중요하지만 난해한 문제일수록 흥미롭고 쉬운 방식으로 소개한다. (영상, 인터랙티브, 뉴스레터 등)
쉽잖아 보이는 세 목표지만, 이를 한데 엮는 열쇳말은 경험하는 뉴스, 즉 인터랙티브다. 뉴스를 더 쉽고 직관적으로 와닿게 펼쳐 주는 영상, 사진, 음성, 그래픽의 총화다. 언론계에 익히 알려진 대표적 인터랙티브 뉴스, 뉴욕타임스의 스노폴(Snow Fall)을 생각하면 쉽다. 2012년 12월 전 세계 언론에 놀라움을 안긴 압도적 콘텐츠인데, 이후 많은 국내외 언론의 도전이 이어졌다.
‘뉴스를 경험한다’는 건 꽤 낯선 표현이다. 하지만 방식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중요한 정보를 3D나 증강현실로 실감나게 볼 수 있다. 철거촌의 모습이나 빈곤착취가 이뤄지는 쪽방촌의 실상을 360도 촬영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우리 아이 유치원도 비리에 연루됐는지 혹은 특정 공직자가 불법으로 농지를 소유했는지 검색을 해 결과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체험이 된다. 내 월급을 입력해 넣어 내 위치는 어디인지, 전체 우리나라 임금노동자들이 얼마나 적은 급여를 받는지 직관적인 시각물로 알아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지구 상공에는 5,000여 개의 인공위성과 4만여 개의 인공 물체가 떠 있다는데 지금 바로 내 머리 위를 스쳐 지나는 위성은 무엇이고, 이걸 들여다보고 있는 건 누구일까. 빽빽한 텍스트로 설명하는 대신 3D와 증강현실을 동원한 위성뷰어로 구현해 독자들에게 선보이면 지루할 뻔한 뉴스도 생생한 경험이 된다. 한국일보 인터랙티브 ▶한반도, 소리 없는 위성 전쟁 - 머리 위 감시자들이 선보인 콘텐츠다.
이는 2020년 한국데이터저널리즘어워드(KDJA) 수상작이기도 하다. 국제 데이터저널리즘상인 시그마 어워드(Sigma Awards) 2021에서도 본선 진출 격인 쇼트리스트(shortlist)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012년 이 상이 만들어진 이후 한국 보도가 쇼트리스트에 등재된 건 처음이다. 그 밖에도 다양한 경험의 문법을 구현한 인터랙티브들이 호평받고 상도 받았다.
구현 과정은 물론 쉽지 않다. 무엇보다 과거의 신문사 구조로는 불가능하다. 과거엔 뉴스룸에서 민완기자(업무 처리가 빠르고 실력 있는 기자)들을 길러내는 데만 분주했다면 이제는 출중한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퍼블리셔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인공위성 뷰어만 해도 팀원들이 미 전략사령부 자료를 비롯한 국내외의 수많은 데이터를 입수하고, 정합성과 신뢰성을 확인하고 스토리를 풍부하게 보일 구현 방식을 연구해 만들어냈다. IT 인력 몸값이 치솟고, 일할 개발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시대에 이른바 옛 신문사, 레거시 미디어에 몸담고 ‘미디어 사랑’을 외치는 남다른 능력자들이다. 어느 날은 이 사명감의 원천이 정말 궁금했던 한 동료가 물었단다. 일의 동력이 무엇이냐고. 그에게 돌아온 답. “제가 저널리즘을 좀 많이 사랑하잖아요!”
기자들의 일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미디어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갖춘 기획·기술인력, 디지털에 대한 이해도와 협업·소통 능력을 갖춘 기자 및 PD가 함께 일하는 방법을 꾸준히 공부한다. 과거엔 비밀에 부쳐진 검찰 수사의 중요한 사실관계를 알아내는 단독발굴을 최우선 과제로 여겼던 법조 기자조차 그렇다. 이제 독자의 삶에 더 와닿는 밀착형 인터랙티브를 선보여 박수 받는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일반 시민들의 사건 처리 과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시험해 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 ▶복잡한 형사사법절차, 내 사건 어디로를 수개월에 걸친 노력 끝에 구현하는 식이다. 더 깊게, 더 가까이, 하지만 더 쉽게의 삼박자다.
“좋은 기사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이런 답답함에 고통 받는 독자들을 마주할 때면 종종 상상의 나래를 편다. 뉴스룸에 흐르는 이 다양한 구슬땀의 표정을 고스란히 생중계하는 상상. 중계 마이크를 쥔다면 캐스터처럼 이렇게 말해 볼 요량이다. “여러분, 저 선수의 구슬땀을 보세요. 이런 표정, 더 자주 한국일보 닷컴을 기꺼이, 일부러, 굳이, 방문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필요하고 와닿고 쉬운 뉴스들은 생각보다 그리 먼 곳에 숨어 있지 않네요. 시뮬레이션과 360도 사진, 3D, 증강현실을 넘어 어쩌면 VR나 AR 콘텐츠를 구현할 뉴스룸의 도전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입니다!”
▶ 한국일보의 인터랙티브가 궁금하다면https://www.hankookilbo.com/Series/S-PLANNING-PL-2-894 의 링크를 누르시거나 주소창에 붙여넣기 해주세요.
김혜영 커넥트팀장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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