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 면역, 그리고 백신

한겨레 2021. 10. 1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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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숨&결] 김준|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연수연구원

면역계만 빼고 보면, 사람 몸은 영양분이 넘쳐나 다양한 미생물이 얹혀살기 정말 좋은 환경이다. 세균과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 중 일부는 이런 양분을 챙기려고 사람 몸에 침입한다. 우리 몸도 가만히 있진 않는다. 방어 체계인 면역계가 침입자를 해치우려 힘쓰고, 대부분은 잘 막아낸다. 그러나 몇몇 미생물은 이런 면역계를 무력화하며 우리 몸속에 자리를 잡은 뒤 차츰 불어난다. 불어난 미생물은 장기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고,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심각한 경우라면 엄청난 고통을 동반하기도 한다.

처음에야 멋모르고 이 침입자들에게 뚫릴 수도 있지만, 우리 몸은 두번 당하지는 않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한다. 면역세포가 시각이 있다면 침입자 사진이라도 찍어 대비할 거다. 하지만 세포는 눈이 없으니 다른 방식을 취한다. 미생물을 해치우고 남은 찌꺼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번에 들어왔던 녀석이야. 잘 만져보고 기억해둬.” 항원이라고 부르는 이 찌꺼기는 마치 지문처럼 독특한 모양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이 독특한 모양만 잘 기억할 수 있다면, 다음에 들어왔을 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곧장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찌꺼기 모양은 특별한 면역세포들이 기억해둔다. 이 면역세포들은 종류가 정말정말 다양하고, 저마다 서로 다른 모양의 찌꺼기에 달라붙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니 이 중 몇몇은 일부 찌꺼기에는 엄청나게 잘 들러붙을 수 있다. 대신 다른 침입자 찌꺼기에는 잘 못 붙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이렇게 잘 붙는 세포들이 신호를 받고, 그 적을 기억해둔다. 그러곤 다음 침입을 대비해 몇년이고 기다린다.

기다림이 오래되지 않은 어느 때, 다시 똑같은 침입자가 들어오면 곧장 공격이 시작된다. 이 침입자는 몇몇 면역세포들에게 잘게 씹히고, 그 찌꺼기가 공개된다. 그러면 우리 몸은 다른 면역세포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무기 공장을 가동하고, 침입자는 무기에 얻어맞아 무력화된다. 두번 당하진 않는 것이다.

문제는 코로나바이러스처럼 두번째 기회를 주지 않는 침입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런 침입자들이 처음 들어올 때도 두번째 침입인 것처럼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 침입자를 구별하는 데 필요한 찌꺼기나 그 찌꺼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설계도를 만들어 우리 몸에다 주입함으로써, 마치 이미 한번 당했던 것처럼 대비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가 계속해서 맞고 있는 백신이다. 이렇게 몸에 들어온 찌꺼기나 찌꺼기 설계도는 곧장 침입자를 기억하는 면역세포에게 신호를 줄 수 있고, 우리는 침입자가 직접 들어올 때보다는 훨씬 덜 고통스럽게 두번째 기회를 얻게 된다.

전에 없을 만큼 빠르게 신종 감염병에 대처할 수 있게 해준 설계도 백신이 탄생했다는 것은 기록해야만 하는 일이다. 물론 여전히 신규 확진자가 적지 않고, 백신 접종자 중에서도 확진되는 경우가 적게나마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신종 감염병이 등장한 뒤로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인 백신이 대량생산되고, 부족하나마 전세계에 퍼지게 된 것은 전례 없는 성공이다. 신종 감염병이 언제든 새롭게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성공이기도 하다. 코로나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새로운 미생물이 언제든 인류를 침입하려 하겠지만, 이번에 쌓인 경험을 통해 어떤 미생물이든 백신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이제는 기술로 답할 수 없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백신의 부작용이 적다지만 제 발로 맞으러 가는 게 어떻게 걱정이 안 돼? 코로나야 걸리면 고생하겠지만 꼭 걸리는 것도 아닌데.’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이런 걱정을 풀어주고,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백신 공급 부족도 해소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에 다가올 수 있는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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