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오징어 게임'의 세번째 규칙

한겨레 2021. 10. 1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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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오징어게임 열풍]

손아람|작가

무인도로 납치당한 사회의 낙오자들이 게임에 참가한다. 승자 한명은 거액의 상금을 얻고 나머지 패자들은 목숨을 잃는다. 규칙은 세가지다. 첫째, 참가자는 임의로 게임을 중단할 수 없다. 둘째, 게임을 거부하는 참가자는 탈락으로 처리한다. 셋째, 참가자의 과반수가 동의할 경우 게임을 중단할 수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설정이다.

게임의 주최측은 끊임없이 공정을 강조하며, 게임의 공정을 해치는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이 게임이 불공정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참가자는 볼이 새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따귀를 맞지만, 주최자는 돈을 지불할 뿐이다. 참가자들은 단 한번의 실수로도 죽임을 당하지만, 주최자는 좀 더 많은 돈을 지불할 뿐이다. 이따위 불공정한 게임이 어떻게 가능할까? 세번째 규칙 덕분이다. 참가자들이 언제든지 게임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 대칭의 문제를 자발성의 문제로 슬그머니 치환하는 이 규칙은, 비상식적인 시합을 그럴싸한 경제학적 모형으로 둔갑시킨다.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한, 불공정 역시 게임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이 세번째 규칙은 <오징어 게임>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사건이자, 이 이야기의 주제와 같다.

가장 결정적인 비대칭은 게임의 안과 바깥, 무인도와 현실 세계 사이에 숨어 있다. ‘남은 인생을 빚쟁이들에게 쫓기며 쓰레기처럼 보내느냐, 게임이 제공하는 마지막 기회를 잡느냐’의 문제다. 다수결로 게임을 중지시켰던 참가자들의 의사는 엄혹한 현실 앞에 무력하게 꺾이고 만다. 그들은 거부권 행사를 번복하고 게임을 재개하면서 푸념한다. “밖에 나와 보니까 그 사람들 말이 다 맞더라고. 여기가 더 지옥이야.”

이것은 한 체제를 작동하게 하는 마법의 룰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불공정을 경험하든 판을 뒤엎지 못하는 이유는 다 똑같다. 게임 바깥으로 탈출하는 것이 게임 속 불공정보다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번째 규칙의 목적은 게임을 중단시키는 데 있지 않다. 이 규칙은 자발적 참여를 형식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것은 불공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묵시적 계약이다. 불만을 터뜨린다면 다른 이들은 공감하기는커녕 심드렁하게 반응할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거잖아?’ 그렇게 게임은 정당화된다. <오징어 게임>의 은유는 시청자 누구나 읽어낼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은유의 자기 예언적인 성격은 아주 흥미롭다. <오징어 게임>의 대성공 후 벌어진 수익 배분 논란이 드라마 내용의 재현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의 인센티브 수익 전부를 가져간다. 99%가 아니라 100%다. 투자 위험과 결과 수익의 수학적 상관관계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이 드라마의 투자 위험은 무한대였다는 뜻이 된다. 공정을 말하기 어려운 계약이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10년 넘게 한국 영화판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각본에 넷플릭스가 용감하게 투자해 성공했으니 충분한 보상을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넷플릭스가 맞더라고. 넷플릭스 바깥이 지옥이야’란 소리로 번역할 수 있겠다. 연출자인 황동혁 감독도 인터뷰를 통해 얼마간 인정한 바 있다. ‘알고서 계약서에 사인한 거다. 넷플릭스가 없었으면 어디서 이런 작품을 만들었겠나.’ 말하자면, 그는 투자자들에게 쫓기는 낡은 영화 산업 환경에 머무는 것보다는 넷플릭스가 주는 마지막 기회를 잡는 쪽을 택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황동혁 감독의 판단도 옳았고 넷플릭스의 판단도 옳았다. 그게 100 대 0의 수익 불공정도 옳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불공정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떳떳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은 넷플릭스가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징어 게임>의 세번째 규칙을 깊숙이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세번째 규칙의 추종자들은 게임 안에만 시선을 둔다. 규칙을 지배하는 힘의 비대칭에는 관심이 없다. 게임은 시스템과 대결하는 게 아니라 참가자들끼리 경쟁하는 것이므로,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불공정은 이미 공정한 것으로 본다. (상금이 계약대로 지급되기만 한다면 뭐가 문제란 말인가?) 현실에서 벌어지는 게임의 중단에 과반이 동의할 가능성을 상상해본 적은 없지만, 한가지는 무척 궁금하다. 우리는 이런 게임이 불공정하다는 사실 자체에는 과반이 동의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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