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장애인 탈시설', 정답 아니다
손송하|중증발달장애 딸을 둔 어머니
말도 글도 모르고, 의사소통이 안 되는 아이. 캔 뚜껑에 제 손바닥을 베여 피가 솟구쳐도 무관심한 아이. 위험을 몰라 8차선 도로에 뛰어드는 아이. 물건 사고 결제하는 사이에도 사라져 매번 경찰차로 찾아와야 하는 아이. 27살 발달장애인인 제 딸은 지금 한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원 30명의 그 시설은 1년에 빈자리 한곳이 나기 힘든데, 대기자가 이미 170명을 넘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그런 장애인거주시설을 사실상 대부분 없애겠다고 합니다.
지난 8월 정부가 내놓은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현재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사는 2만9천명의 정원을 단계적으로 여러 해에 걸쳐 2천명으로 줄이겠다는 내용입니다. 정부의 ‘로드맵’은 모든 장애인이 시설에 갇혀 자신의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게 해주자는 것입니다. 그 대책인 ‘시설 밖으로 이주’란 곧 ‘공동주택으로 이주’를 뜻합니다.
그런데 제 딸에게 도시의 공동주택이란 어떤 곳일까요? 거주시설에 입소하기 전, 높은 데서 뛰어내리기 좋아하는 제 딸은 침대나 소파를 사는 대로 모두 망가뜨렸습니다. 거실에서 베란다 창문으로 달려가 몸 부딪치기를 하다 유리가 깨져서 큰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습니다. 새벽이나 한밤중에도 밖으로 나가자고 방바닥에 머리를 찧어대며 괴성을 질렀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놀이기구로 아는지 85㎏ 넘는 아이가 신이 나서 점프를 합니다. 자연히 살던 아파트 단지에서 기피 대상이 되고, 이웃에게 별의별 원성을 다 들었습니다.
제압할 힘도 없는 엄마는 죄인이 되어 이웃에게 빌다가 지칩니다. 아파트 건물 밖으로 나가면 곧바로 엄마 손을 뿌리치고 대형마트로 달려갑니다. 인형을 한아름 껴안고 미친 듯이 포장지부터 뜯기 시작합니다. 아무도 딸아이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날도 인형값 수십만원을 카드로 긁습니다. 현관 철문에 잠금장치를 자꾸 더하고 좁은 아파트 안에 제 자신과 딸을 가둔 채 어쩔 줄을 몰라 자책하고 분노하고 울며 살았습니다. 주간 보호시설에도 맡겨보았지만 도심 속 좁은 공간에서 딸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년을 알아보고 기다리면서, 그 시설을 짓는 과정부터 지켜보며 문을 열자마자 입소한 곳이 현재의 거주시설입니다. 딸의 삶은 시설에 입소하면서 비로소 자유로워졌습니다. 몇천평의 대지에서 매일 그네를 타고 트램펄린을 뛰며 넘치는 에너지를 풀어냅니다. 토종닭, 토끼 키우는 곳에서 동물들을 쫓아다니고 선생님과 텃밭에 물주기를 하다, 시설 안 장애인 운영 카페에서 딸기 음료와 직접 만든 쿠키를 먹습니다. 20년째 우울증 약을 먹는 엄마 대신 선생님과 관리감독자들이 서로 인권침해 사실이 없나 세심하게 살피며 돌봐주고 있습니다.
한달에 한두번은 가족과 1박2일을 함께 보내는 프로그램이 있고, 하루의 생활을 사진과 글로 알려주는 온라인 카페도 계속 운영합니다. 이제 그곳이 딸한테는 제2의 집입니다. 27살 딸은 그곳에서 전 생애에 걸쳐 가장 자유롭습니다. 엄마는 덕분에 자기 일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현실도 모르면서 대기자를 위한 증설은커녕, 무조건 ‘시설은 감옥’이라며 잘 운영되고 있는 시설조차 없애려 하십니까? 제 딸을 지역사회로 보내 어떻게 자립시키겠다는 것입니까? 왜 제 딸이 ‘탈시설’ 정책에 따라 다시 ‘자립지원주택’이란 이름의 공동주택에 갇혀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살아야 합니까?
정부는 로드맵이 본격 시행되기 전부터 장애인거주시설의 신규 입소를 막았고, 대규모 시설의 정원을 줄여가며 시설과 그 부모들을 압박해왔습니다. 정부는 로드맵을 단계적으로 이행한다고 하지만 역시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일 뿐입니다. 정원 감축과 지원 축소는 지금도 힘겹게 버티고 있는 우량 거주시설을 급속히 고사시킬 것입니다. 이런 시설이 없어지면, 또는 제 딸이 이 시설에서 나와야 한다면, 저와 제 딸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지난 7월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저와 비슷한 처지의 부모들이 장애인 당사자와 그 보호자의 의견이 반영 안 된 로드맵의 재검토를 요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처절한 목소리에 제발 귀 기울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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