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 차차차
[엄마아들 귀농서신] 선무영|시골로 가려는 아들·로스쿨 졸업
요새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를 참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영화 <홍반장>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인데, 배우 김선호씨가 홍반장 역을 맡았어요. 보고 있으면 ‘나도 꼭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갯마을에 있는 젊은이 중 한명인 홍반장은 ‘만능’입니다. 각종 수리 보수 일체, 청소년 상담사, 공인중개사 자격도 있어요.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기면 꼭 갑니다. 단, 최저 시급 8720원은 십원 단위까지 받아가요. 카페, 중국집, 슈퍼에서부터 일손 필요한 할머니댁 등 홍반장을 찾는 곳이 어찌나 많은지, 부럽습니다. 능력도 좋고, 비주얼은 더 좋고. 동네 사람들이 정말 소중히 생각하는 ‘반장’이에요. 계산은 철저한 홍반장인데, 사실 돈보다 나고 자란 마을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홍반장한테는 기름집 하시던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예쁜 집과 상가가 있었어요. 그리고 마을 3대 미스터리 중 하나인 ‘1등 당첨복권’의 주인공이 홍반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돈 걱정 따위 없는 청년으로 그려지거든요. 만들어진 이야기인 줄 압니다만, 보기 좋은 갯마을 청년 이야기가 참 반갑습니다.
얼마 전에 생일이었습니다.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사실 대부분의 근황을 묻는 연락들은 ‘요새 뭐 하고 지내나’로 시작해서 귀농에 대한 만류로 끝나요. 그럼에도 다시금 생각해볼 기회가 반갑습니다. 생각은 대화를 따라서 흘러갑니다. 보통 ‘농사만 지어서는 안 된다’가 상대의 요지입니다. 농사만 지을 생각은 아니라 하면 ‘모아 둔 돈이 많냐’는 물음으로 옮겨 가요. ‘야, 너는 돈이 많아서 서울서 살려고 하냐’는 물음을 참고, 차근차근 모을 생각이라고 대답합니다. 불편함을 각오하고 가는 시골이라지만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돈’이 무겁습니다. 아무래도 더 모아야 할 것 같고, 더 준비해야겠고. 그렇게 알바 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일단 사 온 로또 3천원어치. 어떻게 번호 한개를 못 맞혔네요. 드라마랑 현실은 참 다르죠. 시골 마을 이야기를 보면 그 차이가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올 추석 때 전을 다 부치고 뒷정리를 하다가 기름받이로 깔아 둔 신문에서 슬픈 칼럼 한 편을 봤습니다. ‘농부와 잡부’라고요. 농사일이 밀렸을 텐데도 시급 만원 받고 동네 청소 등을 하는 주변 농부들을 보며, 농사보다 잡일이 더 큰돈이 되는 현실을 슬퍼합니다. 어디에 이런 칼럼이 실렸나 보니 <한국농정신문>에 농민이 쓰는 칼럼이더군요. 열심히 농사짓는 농부들이라면, 돈 걱정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귀농 준비를 하는 사람으로서도 오로지 제 농사만으로 살길을 도모할 수 없는 입장이에요. 어디서 잠깐 하는 일이라도 여기저기서 찾아주면 반가울 듯합니다.
대학교 졸업하기 직전 겨울방학, 절임배추 일을 했던 생각이 납니다. 괴산에 와 있었는데 어머니가 내일 절임배추 일 나가는데, 같이 가자고 하셨죠. 새벽같이 나가서 초저녁까지 일했습니다. 사장님께서 배추를 뽑아 경운기 한가득 싣고 오시면, 그 배추를 받아 기계 위에 반으로 싹 잘리게 고이 놓았습니다. 새참 먹고 나서는 전날 절여진 배추를 잘 씻어서, 비닐에 담아 무게를 달고 포장했어요. 비닐 겉에는 물이 안 묻어야 박스로 잘 포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잘 포장한 절임배추를 트럭에 실어놓는 것까지가 몸 성한 비숙련공의 일이었어요. 일하는 내내 어르신들이 이런 일을 어떻게 한달 내 하실까 했어요. 절임배추 사장님·사모님, 사과밭 사장님·사모님, 부녀회장님 모두 허리 한번 못 펴고 일하시니, ‘힘들다’ 소리 한마디도 못 했습니다.
그렇게 집에 가서 씻고 저녁 먹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절임배추 사모님이 오셨죠. 대학생 아들이 왔는데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며 일당을 담은 봉투를 건네주셨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얼마나 반갑던지! 봉투에는 택배 상하차 알바 일급만큼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천일염값이 너무 오르고, 일하기도 힘에 부치셔서 절임배추 안 하실지도 모른다고요.
농촌에 돈이 많이 돌면 좋겠습니다. 생각해보면 드라마에서도 마을에 큰 오징어 덕장도 있고, 멀리 서울에서 관광 올 정도로 바다가 예쁘죠. 마을이 번성하니 홍반장이 할 일도 여기저기 많고, 걱정 없이 마을 생각하며 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큰길에 있는 가로등이 나가면 제일 먼저 면사무소에 가서 고쳐 달라 할 정도로 마을 일에 밝고, 혼자 사는 할머님 할아버님들 편안히 잘 계시는지 가끔 들러 말벗도 해드리고, 자기 밭도 잘 가꾸면서, 못 하는 게 뭔가 싶을 정도로 유능하고, 돈 걱정 하나 없는 젊은이.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열심히 이런저런 능력을 키울 건데, 우리 괴산 시골 마을이 그렇게 번성한 마을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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