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과학자 없는 한국, 노벨상도 없다
수상자 224명 전수조사..초기 30년간은 80%가 의사
지원 부족한 국내 의대 1곳당 연구의사 年1명도 안돼
◆ 한국도 노벨상 배출하자 ① ◆
생리의학상을 포함해 올해도 노벨상 수상자에서 한국인의 명단을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재와 같은 연구 환경이 지속된다면 한국의 '노벨 과학상 배출'은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매일경제가 1901년 노벨상 첫 수상자가 나온 이래 올해까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224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이들 중 절반이 넘는 117명이 의사였다. 초기 30년간은 수상자의 79.3%(23명)가 의사였고, 최근 30년을 놓고 봤을 때도 의사 출신 수상자가 22명으로 거의 매년 나왔다. 기초의학의 연구 분야가 환자에서 세포, 유전자, 화학물질 등 미시적인 영역까지 확장되면서 생리의학상의 수상 대상이 생화학자·생물학자·수의학자뿐 아니라 물리학자 등으로 다양해졌지만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은 여전히 생리의학 분야 연구의 주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의사가 노벨상을 탔다는 것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연구하는' 의사과학자였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는 의사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매일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회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주요 의대에서 매년 배출되는 연구하는 의사, 즉 '의사과학자' 수는 학교당 1명이 채 되지 않았다.
올해 6월 진행된 이 설문조사에 응한 전국 26개 의대 학장들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학교에서 최근 5년간 배출한 의사과학자는 총 108명이었다. 연간으로 환산했을 경우 26개 학교에서 매년 배출되는 의사과학자는 21.6명에 불과했다. 한 학교당 1명의 의사과학자도 배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실제 설문조사에 응답한 대학 중 9개 학교는 최근 5년간 의사과학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고, 5개 대학은 5년간 단 1명이었다.
주영석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백신과 치료제같이 인류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연구 성과가 나오려면 질병을 가장 잘 아는 의사들의 기초연구가 필요한데 한국에서는 의사과학자가 되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국내에 의사과학자의 좋은 롤모델이 없는 데다 한국 의대들의 목표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를 만들어내는 데 치우쳐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의사과학자 양성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연구 교육을 진행할 교수 등 인적자원 확보가 어렵고(56%), 연구예산·지원재정 확보 역시 힘들다(76.0%)고 답했다.
[이새봄 기자 / 송경은 기자 / 이종화 기자]
의과대·의전원협회 설문조사 매경 단독입수
"학부서부터 연구교육 등한시"
醫과학자 수급환경 점수
5점 만점에 1.92점에 불과
"연구醫 자리 턱없이 부족해
학생들에게 권하기도 민망"
K바이오 경쟁력은 날로 추락
9년 새 11계단 떨어진 26위
대한민국 의대와 의학교육을 책임지는 의과대학 학장·의학전문대학원 원장들이 진단한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의 노벨과학상 수상 지름길은 자타 공인 '인재강국' 한국에서도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의대의 핵심 인력들을 연구 인력으로 양성하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차세대 성장동력인 바이오 헬스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연구하는 의사인 의사과학자 육성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의대 학장들은 현재 한국 의대와 의전원에서는 사실상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매일경제가 입수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 '바이오 및 헬스산업 육성을 위한 인력(의사과학자) 양성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이들은 "바이오산업과 병원·연구기관 등에서 필요한 우수한 의사과학자의 수요 증가에 비해 양성되는 의사과학자는 부족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밝혔다. KAMC는 전국 40개 의대와 의전원 학장·원장으로 구성된 협의체다.
KAMC 역시 현재 국내 의대에서 의사과학자 양성에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국내 의대의 경우 각 대학의 차별적인 특성을 막론하고 의예과에 편중된 연구 과목이 상당수였으며, 많은 연구교과의 경우 별도 트랙이거나 선택과목 혹은 비정규 교과과정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꼬집었다.
실제 KAMC가 올해 전국 의대·의전대생 19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실제 학부·대학원 시절에 일정 기간 이상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경우는 22.2%에 불과했다.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10명 중 8명은 연구 프로젝트를 접하지도 못했다는 뜻이다.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 중에서도 연구 논문 출판, 포스터 발표 등 '연구결과물'이 있는 경우는 절반 남짓인 55.9%(241명)이다. 이를 토대로 계산해보면 사실상 연구 프로젝트를 완수해 성취감을 느껴본 경험이 있는 학생은 전체 의대생 중 12.4%에 그친다. 한 의대 학장은 "연구하는 의사가 되려면 연구 주제 탐색과 접근방법 결정,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거쳐 연구와 친숙해지고 마지막으로 본인의 결과를 발표하며 새로운 지식을 쌓아가는 것에 대한 성취감을 느끼게 되면서 연구에 흥미를 가져야 하지만 현재 의대 재학생들은 이러한 경험을 해볼 기회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 1호 국가과학자이자 대표 의사과학자인 신희섭 기초과학연구원(IBS) 명예연구위원은 "의사들이 환자를 직접 다뤄본 경험이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지만 한국은 임상경험이 심도 있는 연구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KAMC 보고서는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들은 의사과학자 양성을 통해 의대 교육과정에서부터 연구인력을 강화해왔고, 이를 통해 연구하는 의사 육성에 대한 우수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며 주요 사례로 인간지놈 프로젝트를 이끈 프랜시스 콜린스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소장, 유도만능줄기세포 연구를 이끈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 광간섭단층촬영을 한 데이비드 황 하버드 의대 교수 등을 꼽았다. 의사과학자가 부족하다 보니 한국의 바이오산업 글로벌 경쟁력은 뒷걸음질 중이다. 과학기술논문 발표가 세계 10위권 수준인데도 한국의 바이오산업 국가경쟁력은 2009년 15위에서 꾸준히 하락해 2018년에는 26위에 그친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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