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하 "제조업은 값싼 인건비가 최고?..AI·IoT로 '맞춤형 제조' 전환해야"

김병근 2021. 10. 1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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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창간 57th 미래를 말한다
릴레이 인터뷰 (5) 김근하 인탑스 대표
유연한 제조 과정 중요..부가가치로 승부하는 시대
3년 전 첨단 팩토리 도입 후 생산성 25%가량 상승
진단키트 등 의료기기 이어 자율주행 로봇도 생산
'스마트 플랫폼' 앞세워 전기차 등 다양한 분야 확장
김근하 인탑스 대표가 경기 안양 본사에서 사업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제조업은 죽었다.” 중국이 값싼 인건비를 앞세워 세계 공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던 2000년대 초반 국내 산업계에 회자되던 말이다. 김근하 인탑스 대표는 “이 말을 이해는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제조의 기본을 철저히 지키면서 유연함을 접목하면 ‘남다른 제조’가 가능하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김 대표는 “제조는 정직하기 때문에 한 번 볼 것 두 번 보면 수율이 올라간다”며 “정성을 들일수록 결과가 잘 나오는 게 제조업 특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직원이 이런 제조업의 핵심을 꿰뚫고 있느냐에 따라 생산성은 극과 극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관점도 중요한 문제다. “인건비 관점에선 싸게 만들 수 있는 곳으로 설비를 옮겨야 하지만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하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안전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최적의 소재·공정·양산 기술로 생산하기 위해 찾아가야 하는 제조 플랫폼이 인탑스가 추구하는 미래 제조업”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1981년 인탑스 전신인 신영화학공업사를 창업한 김재경 인탑스 회장의 장남이다. 미국 워싱턴대 마이클포스터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2005년 인탑스에 입사했으며, 2015년 사장에 올랐다. 2세대 경영인으로서 산업 대전환 시대에 걸맞은 ‘제조업 플랫폼’을 앞세워 인공지능(AI), 전기자동차, 의료기기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 진단키트는 스마트폰 케이스와 전혀 다른 제품인데, 생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SD바이오센서로부터 의뢰를 받고 작년 4월 금형 제작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른 시간 내 금형을 완성했지만 짧은 시간에 생산량이 이렇게 늘어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죠. 많을 땐 하루에 100만 개 넘게 생산했습니다. SD바이오센서가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고 민첩한 회사인 덕분에 별문제는 없었죠. 인탑스가 스마트폰 부품업체인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스마트폰은 고도로 정교한 제품이지만 개발 주기가 짧습니다. 매년 신제품이 나오기 때문에 인탑스도 민첩함에선 어디에도 뒤지지 않죠. 업력이 40년에 달해 전문경영인과 임직원 모두 제조업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3년 전 스마트 팩토리를 도입한 뒤 꾸준히 고도화하면서 생산성이 25%가량 향상된 덕도 봤습니다.”

▷의료기기인 진단키트는 아무 데서나 생산할 수 없는 품목 아닌가요.

“의료기기 생산은 일반 공산품보다 조건이 까다롭고 엄격합니다. 이탈리아 기업 엠파티카가 내놓은 뇌전증 환자용 스마트워치 임브레이스를 생산하고 있는데, 의료기기라서 국제의료기기품질경영시스템인 ISO 13485 인증을 취득해야 했죠.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우수의약품제조기준(KGMP) 인증을 받고 미국식품의약국(FDA) 제조처 등록도 했습니다. 의료기기뿐 아니라 요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전자가격표시기(ESL)와 자율주행 서비스 로봇도 인탑스 플랫폼에서 양산 중입니다.”

▷플랫폼이란 말이 전부터 많이 사용돼왔지만 ‘제조업 플랫폼’이라는 표현은 낯섭니다.

“낯선 게 당연합니다. 제가 만든 거나 다름없는 말이죠.(웃음) 미국에서는 몇몇 회사가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생산을 돕습니다. 하지만 중국 공장을 연결해주는 게 전부라서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일이 많죠. 인탑스는 제조 기반을 갖춘 데다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까지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게 다른 점입니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위한 ‘페이퍼프로그램’이란 별도 플랫폼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를 위한 플랫폼 ‘히다랩’도 열었는데 인기가 좋아요. 다양한 소재 및 공정 기술을 제안하는 히다랩을 통해 세계 다양한 기업이 매주 수십 건씩 연락해와 신규 프로젝트가 생성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사업을 직접 하고 있지는 않은데 따로 계획이 있습니까.

“중견기업은 스타트업처럼 인재 확보도 어렵고 기술 변화에 민첩하게 대처하기도 힘들죠. 인탑스가 직접 또는 신기술사업금융 자회사(인탑스인베스트먼트)를 통해 4차 산업혁명 분야 스타트업에 활발하게 투자하는 이유입니다. 인탑스는 이미 제조 또는 투자 형태로 의료기기, 로봇, 퍼스널 모빌리티를 비롯한 다양한 4차 산업혁명 관련 사업과 깊숙이 연계돼 있어요. AI 스타트업 수아랩과 전기차 충전시스템 업체 시그넷이브이에 투자해 자금을 회수한 게 좋은 예입니다. 수아랩은 2년 전 미국 나스닥 상장사에 팔렸고, 시그넷이브이는 올해 SK그룹에 매각됐죠. 스타트업 투자가 지금도 수십 건 진행 중이고, 인수합병(M&A)도 진지하게 검토 중입니다.”

▷산업 대전환 시대엔 제조업을 하는 데 필요한 자질도 바뀔까요.

“과거 제조업에선 근면성실이 최고였습니다. 여전히 중요하지만 기준은 많이 바뀌고 있죠. 예전처럼 회사에 일찍 나와 늦게 퇴근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시간 안에 완성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개념입니다. 우리 회사에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유연성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추세인데, 그에 맞춰 유연하게 조직과 사업 방향을 변화시키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죠. 작년에도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어려움이 많았는데 3년 전 시작한 스마트 팩토리와 전사적인 업무 효율성 향상에 초점을 둔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프로젝트 덕분에 선방할 수 있었습니다. 비즈니스 인텔리전스는 전사의 데이터를 신속히 수집하고 빠르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돕는 프로젝트로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 인탑스는 어떤 회사로 성장할까요.

“저는 창업주 2세대로서 혜택을 봤습니다. 마라톤에 비유하면 출발선이 아니라 중간 정도에서 뛰기 시작한 거죠. 창업주와 임직원이 어렵게 일군 기업이 영속성을 지닐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뛰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임직원과 회사가 같이 성장하고 제조를 중심으로 기술과 투자, 핵심 역량을 한데 묶는 플랫폼으로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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