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불평등, 산업구조 변화의 결과..AI시대엔 통역사도 피해자"
시대에 맞는 보완책 마련해야
최저임금 인상, 소득개선 의문
비용 늘어 되레 고용에 악영향
韓여성, 결혼 직후 일자리 이탈
'엄마의 시간' 대체 서비스 절실
◆ 매경·서울대 경제학부 공동기획 Rebuild Korea ⑤ / 이정민 교수 ◆
지난 7월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 대비 약 5.05% 인상한 9160원(시급 기준)으로 결정했다. 올해도 경영계와 노동계 사이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다. 최저임금 수준을 놓고 매년 상당한 사회적 비용이 소모되고 있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임금 불평등 완화 효과를 내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이제는 최저임금 외에 근로장려세제 등 다른 정책적 대안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성별에 따른 임금 불평등 문제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 이후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면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매년 상승해왔지만, 선진국과 비교해 저조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 노동시장의 불평등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묻기 위해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만났다.
―임금 불평등의 경제학적 원인은.
▷임금은 인적자본에 대한 가격이다. 임금 불평등은 인적자본의 가격 분포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1960~1970년대 노동집약적 산업의 발전으로 방직노동 같은 저숙련 단순노동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할 경우 임금 분포의 하위 부분 임금이 상승하면서 임금 불평등이 완화된다. 반면 한국 기업이 조립이나 포장 같은 단순업무를 중국이나 베트남 등 해외로 이전하고 국내에서는 기술개발이나 경영에 집중하는 경우라면 임금 불평등은 증가한다.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한국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이 같은 과정을 겪어왔다. 10인 이상 사업체의 경우 시간당 임금 하위 10% 대비 상위 10%가 4배 정도 격차를 보였다가 금융위기 직전에 5.5배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불평등이 늘었다고 해서 단순히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아무리 뛰어난 동시통역사라고 하더라도 미래에 동시통역을 해주는 인공지능(AI) 기술이 나올 경우 높은 임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우리 경제에 나쁜 것인가. 다만 정부 입장에서는 노동 수요가 줄어든 분야 노동자들의 소득수준 개선을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 기초연금제도, 최저임금제도 등을 시행 중인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임금 불평등 감소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가.
▷단순히 생각하면 그렇다. 최저임금은 시간당 임금에 대한 규제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이 고임금 근로자의 임금을 더 빠르게 끌어올리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금 불평등이 기계적으로 완화될 것이다. 문제는 시간당 임금의 격차가 해소됐다고 임금소득 격차가 반드시 완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가 임금 불평등 효과를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가.
▷최저임금의 인상은 기업 입장에서 보면 비용의 증가이기 때문에 일자리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게다가 최저임금 인하는 사실상 비현실적이므로 비용의 항구적인 증가다. 한국 연구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최저임금 근로자가 집중돼 있는 부문은 완전경쟁시장에 가까운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어 비용의 증가를 소비자에게 전가하기도 어렵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세중소기업 등의 경영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일자리안정자금'이 지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대책의 실효성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론적으로는 실효성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저임금으로 인상된 임금 부담을 일종의 보조금으로 덜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자리안정자금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한 후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급조됐던 것이다.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게 누수 없이 집행이 됐는지는 의문이다. 일자리안정자금의 실효성을 점검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관련 데이터를 제공해서 연구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정부의 지원사업이 늘면서 이런 종류의 문제는 머지않은 미래에 반드시 다시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연구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식의 정책연구 경쟁체제를 구축하고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의 대안으로서 근로장려세제가 많이 거론된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근로장려세제는 경제학자들 다수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 같은 경우는 근로장려세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빈곤율이 많이 줄었다. 근로장려세제는 최저임금과 달리 근로조건부 보조금이기 때문이다. 노동에 인센티브를 부여한 제도이기 때문에 노동 공급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반면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 수요를 줄어들게 한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최저임금에 의존하기보다 근로빈곤 퇴치에 효과적인 근로장려세제를 확대하라고 한국에 권고한 바 있다. 다만 근로장려세제도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논쟁 속에서 부랴부랴 확대된 측면이 있어 현재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점검해봐야 한다.
―여성의 경력단절 이슈와 관련해 한국에서 특수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면 무엇인가.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한국 여성은 결혼 직후에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비율이 높고 이후에 노동시장으로 복귀하는 비중은 높지 않다. 해외 선진국에서는 주로 결혼보다는 출산 이후에 노동시장 이탈이 발생하는 반면, 한국은 결혼 후에 바로 이탈하거나 근로시간이 짧고 임금이 낮은 직장으로 이동하는 특징이 있고, 그 비율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크다. 한국 여성은 결혼 후 직장을 포기하면서 평균 근로소득이 50% 이상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영국 여성의 근로소득이 출산 후 30~40%, 덴마크, 스웨덴에서는 20% 정도 감소하는 것에 비해 크다. 아마도 '결혼=출산'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여성들의 경력단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결국 '엄마의 시간'을 대체할 수 있는 서비스가 더 많이 공급돼야 한다. 양육을 대체할 수 있는 서비스는 조금씩 등장하고 있고 앞으로 더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정부는 이러한 역동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외국인 가사도우미도 여러 가지 부작용 우려가 있지만 전향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저소득계층을 위해서는 공교육이 답이 될 수 있다. 여기서 공교육이란 단순히 학교 교육이 아니라 취학 전 아동까지 포괄하는 제도를 말한다.
―한국 노동시장의 고질적 문제점은 무엇인가.
▷영세 자영업자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전체 근로자 중 비임금근로자가 25% 수준인데, 이들 대부분이 자영업자다. 자영업자 사업체에서 일하는 임금근로자를 합치면 약 40%를 차지한다. 또 10인 이하 사업체 근로자 비중은 전체의 44%를 차지한다. 미국은 10%, 일본은 24% 수준이다. 한국 노동시장은 취약한 그룹의 비중이 높아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 기업의 비용 부담을 올리는 정책에 전체 노동시장이 영향을 크게 받는 구조다.
―최근 등장한 주목할 만한 노동시장 이슈는.
▷특수형태근로(특고)종사자, 플랫폼 종사자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특고 종사자는 50만~150만명으로, 플랫폼 종사자는 5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전통적인 근로자를 감안해서 만들어진 법을 이들에게 무리하게 적용하면 기술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새로운 직종들을 표준화해서 법 안으로 끌고 들어와야 할 텐데 그들을 어떻게 표준화할지가 문제다. 배달근로자의 경우 풀타임으로 하는 근로자, 부업이나 일시적으로 하는 아르바이트 근로자 등 같은 집단 내에서도 노동 양상이 매우 이질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라 노동시장에 새롭게 등장한 불평등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이른바 '코로나 세대' 등장 우려다. 노동시장 진입 시점의 거시경제적 환경이 청년층에 미치는 장기 효과를 살펴본 연구들에 따르면, IMF 경제위기 같은 경기 침체기 때 노동시장에 진입한 청년층의 경우 호황기에 진입한 세대에 비해 임금 수준도 낮고, 결혼도 제대로 못 하는 등 그 여파가 장기간 지속된다. 코로나19는 IMF 때보다 충격의 크기도 크고 불확실성은 몇 배 이상이다. 따라서 이른바 '코로나 세대'라는 집단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게다가 코로나19의 여파는 좀 더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팬데믹 이후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았는데 학교 수업일수 감소는 불평등의 증가로 이어진다. 이 효과는 장기간에 걸쳐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교수는…
△1996년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학사 △1999년 서울대 경제학 석사 △2004년 텍사스주립대-오스틴 경제학 박사(노동경제학 전공) △2004년 아칸소주립대 경제학과 조교수 △2007년 플로리다국제대 경제학과 조교수 △2010년 서강대 경제학과 부교수·교수 △현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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