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동갑내기로 만난 엄마와 딸의 '평등한 우정'[플랫]
[경향신문]
딸이라면 누구나 엄마와 친구처럼 지내는 상상을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영화 <쁘띠 마망>은 딸과 엄마 사이의 ‘친구 같은 우정’을 그렸다. ‘꼬마 엄마(Petite Maman)’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엄마와 딸은 낙엽이 아름다운 숲속에서 8살 동갑내기로 서로를 만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잘 알려진 셀린 시아마 감독이 이 동화 같은 이야기를 연출했다.
8살 소녀 넬리(조세핀 산스)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슬픔에 빠진 엄마에게 마음이 쓰인다. 넬리의 가족은 유품을 정리하러 교외 숲속의 외할머니 집으로 왔다. 넬리의 엄마가 어릴 적 살던 집이다. 우울해진 엄마는 집을 먼저 떠나버리고 넬리와 아빠가 둘이 남는다. 집 근처 숲에서 놀던 넬리는 자신과 똑 닮은 소녀 마리옹(가브리엘 산스)을 만난다. 두 소녀는 서로의 이야기를 터놓으며 금세 가까워진다.
넬리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엄마가 걱정이고, 마리옹은 수술을 앞두고 있어서 두렵다. 둘은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한다. 이윽고 감춰졌던 비밀이 넬리와 마리옹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 넬리의 엄마는 마리옹과 이름이 같다. 마리옹의 집에 놀러간 넬리는 집 구조와 벽지가 외할머니 집과 똑같다는 걸 발견한다. 넬리와 이름이 같은,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젊은 시절까지 만나게 된다. 비밀을 눈치챈 넬리는 마리옹에게 이를 털어놓는다. “비밀이 있어. 내 비밀이면서 너의 비밀이기도 해.” 쉽게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넬리와 마리옹은 이를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고, 함께 크레페를 만들며 천진한 우정을 쌓는다.
시아마 감독은 “엄마와 딸의 우정은 이 시대의 새로운 발견이자 아이디어”라고 봤다. 그는 지난 24일 한국 언론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페미니즘 물결이 부상하는 시대에 정치적 시스템의 관점에서 어머니 세대 여성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됐고, 사회적으로 이들이 겪어야 했던 제약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며 “어머니 세대와의 유대감이 여기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딸 세대가 어머니 세대 여성들의 과거를 직시하고 이해하면서 모녀 간의 정을 뛰어넘은 새 우정이 싹튼다는 것이다.
그는 엄마와 딸의 ‘평등한 우정’을 그리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시아마 감독은 “어린 시절의 어머니를 만난다면 자매나 친구사이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서열을 완전히 배제하고, 평등함과 동등함을 캐릭터에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이 “상당히 개인적인 영화”라고 소개한 시아마 감독은 “제 고향에서 촬영했고, 집 세트를 꾸밀 때도 할머니 댁을 상상하며 꾸몄다”고 했다.
외할머니-엄마-딸. 이 3대의 이야기를 그리는 과정에서 넬리 아빠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조연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아마 감독은 이 같은 관점에 반대했다. 그는 “제가 그리고자 했던 혁명에 아버지라는 인물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극중 아빠가 넬리에게 “난 내 아빠가 무서웠어”라고 털어놓으면서 가부장제를 부정하고, 딸과 교감하며 세대 간 서열을 해체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놀라운 ‘비밀’을 두 소녀가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연출에 대해 시아마 감독은 “나조차도 넬리가 하는 이야기를 마리옹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해당 부분을 쓰는 게 어려웠다”면서도 “어느 순간 ‘당연히 믿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좋은 영화는 갈등에 기반한 대화가 아닌, 다른 사람을 믿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툭 터놓는 대화를 다룬다고 믿는다”며 “아이들은 솔직해서 그렇게 하기가 쉽고, 그래서 어린이 영화와 아역배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마리옹과 넬리 역할을 맡은 가브리엘 산스·조세핀 산스는 쌍둥이 배우다. 시아마 감독은 “(쌍둥이 배우는) 캐스팅 과정에서 고민하다가 떠오른 아이디어”라며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가 (서로를) 만난다면, 그들의 삶에서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라 수평적 관계와 동등함이 강조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동화나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를 따른다. 시아마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많이 영감을 받은 건 애니메이션”이라며 “색감이나 의상 등 요소에서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지난해 한국에서만 1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예술영화로서는 이례적인 흥행 성적을 냈다. 특히 2030 여성의 선택을 많이 받았다. 18세기가 배경이지만, 주인공 여성들이 시대를 박차고 나와 자신들의 주체적 욕망을 좇는 이야기란 점에서 주목받았다. 시아마 감독은 “한국에서 이렇게나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은 감독으로서 놀랍고 기쁜 일”이라며 “왜 한국에서 유독 뜨거운 반응을 얻었는지 궁금하고, 빠른 시일 내 한국의 관객을 만나서 물어보고 싶다”며 웃었다. 엄마와 딸이 함께 볼 수 있는 전체관람가다. 영화는 7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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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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