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서 나랏빚 408조 불었는데, '재정준칙'은 감감 무소식

손해용 2021. 10. 1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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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채무 1000조원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오며 재정부담을 키우고 있지만, 이를 제어할 '안전장치'인 재정준칙은 지난해 말 국회에 제출된 뒤 방치되고 있다.

13일 기획재정부의 ‘월간 재정동향 10월호’ 등에 따르면 8월 중앙정부 기준 국가채무액은 927조2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말(819조2000억원)보다 108조원이나 늘어난 금액이다. 올해 당초 예상보다 많은 세수가 걷히고 있지만, 지출이 더 많이 늘다 보니 국가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중앙과 지방정부 채무를 포함한 국가채무는 올해 말 956조원, 내년 말 1068조3000억원이다. 국가채무는 문 정부 5년 만에 407조8000억원(47.3%) 불어나게 됐다. 이전까지는 한 정부에서 국가채무가 200조원 넘게 늘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국가채무비율도 내년 50.2%로,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긴다.

역대 정부 나랏빚 얼마나 늘었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지만 나라 곳간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재정준칙은 계속 '공회전' 중이다. 재정준칙은 재정 건전성 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규범을 말한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60% 이내,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발표한 뒤,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번번이 논의 일정이 미뤄지고 있다.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에서 재정준칙 법안이 논의된 건 지난 2월16일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6시간 넘게 이어진 이 날 회의에서 재정준칙에 대한 건 기재위 수석전문위원의 검토 의견 발표가 전부였다.

여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불가피한데, 이를 통제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고 보고 있다. 야당은 지금의 준칙은 예외 조항이 많은 ‘맹탕’이라며 훨씬 엄격한 준칙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야 모두 저마다 다른 이유를 들어 논의를 외면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늘어나는 국가채무 문제와 관련 (이를 억제할 수 있는) 재정준칙 도입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1년간 논의가 없었다. 안타깝다”(9월8일 국회 질의 답변)고 답답함을 호소할 정도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급증한 국가채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여당은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계속 확장재정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에서는 재정준칙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이 정부에서는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본다. 현 정부 내내 경기 지탱을 위해 돈을 풀며 빚을 늘린 정부가 다음 정부에 재정 정상화란 큰 ‘숙제’를 짊어지게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내년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재정준칙을 다시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은 부담스럽다. 여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본소득ㆍ기본주택ㆍ기본대출 등 이른바 ‘기본시리즈’로 초대형 예산 지출을 공언했다. 유력 야권 주자들도 나랏돈이 들어가는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고 있어서다. 다음 정부에서도 국가채무 증가세에 ‘브레이크’를 밟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의미다.

세계에서 제일 빠른 저출산ㆍ고령화로 복지 지출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내년에 들어설 새 정부가 공약 이행을 위해 지출을 늘릴 경우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통제 불능으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은 한 번 늘려 패턴화해놓으면 줄이기가 무척 어렵다”면서 “큰 위기가 지나가고 경제가 정상화로 가고 있는 흐름을 감안해 내년에는 정부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이런 작업이 없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피치ㆍ무디스 같은 글로벌 신용평가기관들은 물론 국제통화기금(IMF)까지 한국의 국가채무 급증에 따른 재정건전성 문제를 지적하는 등 해외에서도 경고등을 켜고 있다. 허장 IMF 상임이사는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간 신용평가사들이 재정준칙 도입에 보여 온 관심과 기대를 고려하면 도입 지연 시 신뢰가 약화할 우려가 있다”며 “IMF는 향후 고령화 등에 대비해 체계적인 재정 안정성 관리가 필요하고, 재정준칙 도입 추진을 환영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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