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2년, 직장인 '스트레스 확진'..사내 상담 40% 증가

이소아 입력 2021. 10. 13. 06:00 수정 2021. 10. 13.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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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불안감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입사 후 10년 넘게 정말 열심히 달려왔어요. 야근을 밥 먹듯해도 인정받고 결과를 보는 게 좋아 앞만 보고 왔는데 요즘 뭔가 마음이 헛헛해요. 지치는 것 같기도 하고….” (40대 A씨)

코로나19 확산 속에 살아온 지 어언 2년. 감염증은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언제 감염될지 모른다는 스트레스에 불규칙한 생활, 시설 이용 제한에 따른 교육·육아 문제, 재택근무 증가로 인한 가족 간 마찰, 여행·모임 등 스트레스 해소 창구의 축소 등이 주요 원인이다.
올 상반기 가톨릭대 의과대학이 전국 직장인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6명(61.2%)은 “코로나19가 삶에 주는 스트레스가 심각한 편”이라고 답했다.


사내복지에서 ESG 핵심으로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가 코로나19와 직장생활 변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도 사내 상담 등을 통해 직원들의 마음 건강을 돌보는 데 어느 때보다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엔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기업 활동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지난 5월 네이버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구성원들의 정서 관리가 개인뿐 아니라 기업에도 큰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일깨웠다. 사내 복지 정도로 여겨졌던 구성원의 행복 증진이 ‘사회적 책임경영(Social)’이라는 ESG의 핵심 요소가 된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유일호 고용노동정책팀장은 “최근 근로자 고용의 트렌드는 ‘라이프케어(Lifecare)’”라며 “직원의 행복은 기업의 생산성과 직결되는 문제이고, 젊은 직원들은 정신적 상담에 거부감이 없어 기업마다 상담 프로그램이 활성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코로나19 이후 직원들의 사내 심리 상담 이용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상담 내용도 직장에 국한되지 않고 사생활·경력고민·가족고민, 심지어 삶의 의미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개인의 이야기나 속내를 회사에 드러내면 프로답지 못하단 평가를 받거나, 책잡혀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강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큰 변화다.


사내 관계부터 자녀 문제까지


SK이노베이션 신입사원들이 사내 상담센터의 ‘사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정유·배터리 기업인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사내 상담센터인 ‘하모니아’의 올 상반기 상담 진행 건수는 약 1200건으로 1년 전보다 약 40% 증가했다. 연령별로 20·30대 초반은 자신을 이해하려는 욕구가 높고 정서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았다. 30대 중반부터는 사내 후배들과의 관계, 의사소통, 중간 관리자로서 리더십에 대한 고민이 컸다. 또 자녀나 배우자와의 관계,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도 크게 늘었다.

상담 수요가 늘자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신입사원의 적응을 돕는 그룹 상담 프로그램 ‘사이-다’를 진행했다. 각종 심리 테스트에 적극적인 MZ(밀레니얼·Z)세대의 특성을 고려해 그림검사, 보드게임 등으로 기획했다. 상담에 참여한 김민준 사원은 “상대방의 생각을 알아내는 게임을 하면서 선배 사원님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직장인 실제 상담 사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삼성전자 비대면 상담 대폭 신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에서도 상담 건수가 코로나 전보다 약 20% 늘어났다. 삼성은 상담센터 14곳과 마음건강클리닉 10곳에서 인생 슬럼프 극복하기, 내 안의 화 다스리기, 40·50대 지혜롭게 맞이하기 등 12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코로나 이후엔 화상 상담, 온라인 1대1 심리 치료, 온라인 익명 고민 상담소 등을 새로 만들었다.
삼성 상담센터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주요 상담 내용은 자녀 양육의 어려움, 외로움 증가, 재택 증가로 인한 가족·부부간 갈등”이라며 “특히 계절적 우울증이나 불면증, 공황증, 자신의 성격에 대한 분석 등 개인에 집중된 상담도 많다”고 전했다.


백화점·마트서 소비자도 함께 상담


롯데쇼핑의 심리상담 프로젝트 '리조이스'의 캐릭터인 '조이스'가 고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백화점·마트 등 소비자와의 접점이 많은 롯데쇼핑은 아예 직원과 소비자가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심리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7년부터 감정 노동자가 많은 직원을 위해 시작한 ‘리조이스(Rejoice)’ 심리 상담 서비스를 지난해 코로나 이후엔 우울증을 겪는 여성과 지역 주민들에게도 제공하기로 했다.

현재 롯데백화점 부산 센텀시티점과 롯데마트 잠실점, 롯데백화점 동탄점 등 3곳에 상담소가 있는데, 직원은 물론 쇼핑이나 장 보러 온 일반 고객들의 이용이 빠르게 늘고 있다.
김학수 롯데쇼핑 CSR팀장은 “최근 2년 사이 코로나블루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며 “더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에 다니고 고객을 맞을 수 있도록 직원들의 정서적인 부분을 지속해서 챙겨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내가 본 나’는 코로나가 준 선물


이동우 인제대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 우울증의 근본적 원인으로 내게 즐거움을 주는 원천이 차단된 점, 끝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꼽았다.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이 교수는 “코로나 국면 동안 사회적 관계는 줄었지만 본인과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스스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동안 기계적으로 살며 허공에 떠나보냈던 질문들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나는 어떤 사람인지,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어떻게 하면 작은 것에 행복할 수 있는지 마음의 연습을 하게 된 것을 코로나가 준 선물이라고 생각해 보자”고 조언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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