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뺨치는 말근육..68세 '대구 오빠'는 철인이라예~
지난 5일 오전 8시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한 빌라. 몸에 붙는 반바지 경기복과 티셔츠를 입은 다부진 체격의 남성이 검은색 사이클과 함께 모습을 나타냈다. 지방만 싹 빠진 듯 근육만 남은 팔목엔 스마트 워치가, 운동으로 다져진 구릿빛 종아리엔 ‘아이언맨’을 형상화한 빨간빛 타투가 보였다.
얼핏 20대처럼 보이는 체격과는 달리 가까이 다가갈수록 흰머리에 흰 수염이 가득한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다. 오는 17일 남해에서 열리는 한국 철인 3종 경기 참가를 준비 중인 대구지역 최고령의 현역 철인 이석천(68)씨다.
“남해 철인 경기 참가자 중 아마 제가 나이가 제일 많을 겁니다. 나이 그건 숫자일 뿐입니다. 당뇨약·혈압약 대신 저는 프로틴 음료나 프로틴 바를 즐길 정도로 힘이 넘치거든요.”
70세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이씨의 체력은 현역 철인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42.195㎞를 마라톤으로 4시간 이내에 주파한다. 1시간 10분 정도면 40㎞ 거리는 사이클로 부담 없이 돌파한다. 수영으로 3.8㎞까지는 1시간 40분 안에 완주가 가능하다. 컨디션을 끌어올리면 시간이나 거리는 더 단축할 수 있단다.
그가 준비 중인 남해 한국 철인 3종 경기는 수영 3.8㎞, 사이클 180.2㎞, 달리기 42.195㎞를 17시간 이내에 완주해야 한다. 이씨의 기록은 대략 15시간 30분. 이 정도면 프로 선수로 불리기 충분한 실력이다.
이씨는 맹훈련 중이다. 화·목 오전엔 사이클을 80㎞ 이상 탄다. 월·수는 한 바퀴가 2㎞인 수성못을 10바퀴쯤 달린다. 평일 오후엔 집 인근 수영장을 찾아가 25m짜리 레인을 40번쯤 오간다. 금·토·일은 근력운동을 하거나, 바다 수영, 100㎞ 이상 사이클 훈련을 떠난다.
사실 철인 3종 경기 출전은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돈이 꽤 들기 때문이다. 1000만원 이상 하는 선수용 사이클에, 20만원쯤 하는 마라톤화 등 값비싼 장비가 필요하다. 에너지 보충 음식도 먹어야 한다.
이씨는 “경제력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가족 없이 작은 빌라에 살며, 노령연금으로 생활을 하고 있어서다. “사이클을 직접 조립해서 최대한 선수용 상태로 유지하는 등 모든 것을 아껴 운동 비용에 씁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 19) 감염증 사태 이후 조금씩 후원을 해주던 지역 한 의료기관의 지원도 끊겨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씨가 철인 운동을 시작한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려움’과 맞닿아 있다. 직접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 탓이다. 24년 전 이씨는 출판업에 종사하다가 실패했고, 가정도 이때 깨졌다. 우울증·대인 기피증 등을 앓던 그는 충남 보령에서 열리는 ‘아이스맨 대회’, 즉 겨울 바다 수영대회를 처음 접했다. 해병대 272기, 수영에 자신이 있었던 그는 “그래 . 다시 한번 일어나보자”라는 생각에 아이스맨 대회에 참가했다.
이렇게 철인 운동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그는 지금까지 아이언맨 대회 국제공인 4회, 비공인 3회를 완주했다. 트라이애슬론은 30회 완주했다. 마라톤 풀코스는 두 차례 돌파했다. 대구 철인 클럽 초대 회장을 지낼 만큼 운동에 푹 빠져 살았다.
이씨는 10여 년 전 택시를 몰았다. 조금 수익이 생기면서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노인 목욕 봉사, 짜장면 배식 봉사, 보육원 아이 챙기기를 했다. 사후시신· 장기기증 서약도 한 상태다.
그에겐 작은 꿈이 있다고 했다. “가슴에 태극기를 딱 붙이고, 한국의 노익장(老益壯)을 국제 대회에서 보여주고 싶습니다.”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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