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뺨치는 말근육..68세 '대구 오빠'는 철인이라예~

김윤호 입력 2021. 10. 13. 00:04 수정 2021. 10. 13.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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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전 8시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한 빌라. 몸에 붙는 반바지 경기복과 티셔츠를 입은 다부진 체격의 남성이 검은색 사이클과 함께 모습을 나타냈다. 지방만 싹 빠진 듯 근육만 남은 팔목엔 스마트 워치가, 운동으로 다져진 구릿빛 종아리엔 ‘아이언맨’을 형상화한 빨간빛 타투가 보였다.

얼핏 20대처럼 보이는 체격과는 달리 가까이 다가갈수록 흰머리에 흰 수염이 가득한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다. 오는 17일 남해에서 열리는 한국 철인 3종 경기 참가를 준비 중인 대구지역 최고령의 현역 철인 이석천(68)씨다.

대구지역 최고령 철인 3종 경기 참가자인 이석천(68)씨가 지난 5일 수성구 인근서 훈련을 마친 뒤 활짝 웃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남해 철인 경기 참가자 중 아마 제가 나이가 제일 많을 겁니다. 나이 그건 숫자일 뿐입니다. 당뇨약·혈압약 대신 저는 프로틴 음료나 프로틴 바를 즐길 정도로 힘이 넘치거든요.”

70세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이씨의 체력은 현역 철인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42.195㎞를 마라톤으로 4시간 이내에 주파한다. 1시간 10분 정도면 40㎞ 거리는 사이클로 부담 없이 돌파한다. 수영으로 3.8㎞까지는 1시간 40분 안에 완주가 가능하다. 컨디션을 끌어올리면 시간이나 거리는 더 단축할 수 있단다.

그가 준비 중인 남해 한국 철인 3종 경기는 수영 3.8㎞, 사이클 180.2㎞, 달리기 42.195㎞를 17시간 이내에 완주해야 한다. 이씨의 기록은 대략 15시간 30분. 이 정도면 프로 선수로 불리기 충분한 실력이다.

이씨는 맹훈련 중이다. 화·목 오전엔 사이클을 80㎞ 이상 탄다. 월·수는 한 바퀴가 2㎞인 수성못을 10바퀴쯤 달린다. 평일 오후엔 집 인근 수영장을 찾아가 25m짜리 레인을 40번쯤 오간다. 금·토·일은 근력운동을 하거나, 바다 수영, 100㎞ 이상 사이클 훈련을 떠난다.

사실 철인 3종 경기 출전은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돈이 꽤 들기 때문이다. 1000만원 이상 하는 선수용 사이클에, 20만원쯤 하는 마라톤화 등 값비싼 장비가 필요하다. 에너지 보충 음식도 먹어야 한다.

이씨는 “경제력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가족 없이 작은 빌라에 살며, 노령연금으로 생활을 하고 있어서다. “사이클을 직접 조립해서 최대한 선수용 상태로 유지하는 등 모든 것을 아껴 운동 비용에 씁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 19) 감염증 사태 이후 조금씩 후원을 해주던 지역 한 의료기관의 지원도 끊겨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씨가 철인 운동을 시작한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려움’과 맞닿아 있다. 직접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 탓이다. 24년 전 이씨는 출판업에 종사하다가 실패했고, 가정도 이때 깨졌다. 우울증·대인 기피증 등을 앓던 그는 충남 보령에서 열리는 ‘아이스맨 대회’, 즉 겨울 바다 수영대회를 처음 접했다. 해병대 272기, 수영에 자신이 있었던 그는 “그래 . 다시 한번 일어나보자”라는 생각에 아이스맨 대회에 참가했다.

이렇게 철인 운동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그는 지금까지 아이언맨 대회 국제공인 4회, 비공인 3회를 완주했다. 트라이애슬론은 30회 완주했다. 마라톤 풀코스는 두 차례 돌파했다. 대구 철인 클럽 초대 회장을 지낼 만큼 운동에 푹 빠져 살았다.

이씨는 10여 년 전 택시를 몰았다. 조금 수익이 생기면서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노인 목욕 봉사, 짜장면 배식 봉사, 보육원 아이 챙기기를 했다. 사후시신· 장기기증 서약도 한 상태다.

그에겐 작은 꿈이 있다고 했다. “가슴에 태극기를 딱 붙이고, 한국의 노익장(老益壯)을 국제 대회에서 보여주고 싶습니다.”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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