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군에 총쏘지 마라" 5·18 영웅 안병하, 뒤늦은 광주 추모식

김준희 입력 2021. 10. 13. 00:03 수정 2021. 10. 13.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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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한 고(故) 안병하 치안감과 그가 남긴 비망록.

“부친은 8년간 고문 후유증으로 투병하면서 자신이 힘이 없어 시민들과 부하들, 가족들을 지키지 못했다며 괴로워하셨습니다.”

지난 9일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한 고(故) 안병하(1928~1988년) 치안감의 막내아들 호재씨가 이날 안병하기념사업회(대표 박기수)가 마련한 안 치안감의 33주기 추모식에서 한 말이다. 고인의 추모제가 광주에서 열린 것은 33년 만에 처음이다.

이날 행사에는 안 치안감의 부인 전임순 여사 등 유족과 고(故) 김사복씨의 아들 김승필씨 등이 참석했다. 영화 ‘택시운전사’ 속 주인공인 김사복씨는 독일 공영방송(ARD) 위르겐 힌츠 페터 기자와 함께 5·18 당시 광주 참상을 널리 알린 택시 기사이다. 안호재씨는 “부친과 당시 참모들은 강제 해직을 당했는데도 아직도 경찰청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그들의 업적을 재평가하고 정신을 계승할 수 있도록 조그마한 기념비라도 건립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정의롭고 옳은 길만 걸었던 고인의 숭고한 뜻은 자유·평화·정의와 민주주의로 살아 숨 쉬고 있다”며 “유족의 당부가 실현되도록 시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9일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서 33년 만에 처음 열린 안 치안감의 33주기 추모식에서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왼쪽)이 안 치안감의 부인 전임순씨와 인사하고 있다. [뉴스1]

광주 추모식 다음 날 고인이 안장된 국립서울현충원 경찰 묘역에서도 추모식이 열렸다. 안 치안감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5·18의 ‘숨은 영웅’으로 불리게 됐을까.

안 치안감은 5·18 당시 전남도경찰국장으로 재직하던 중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전두환 신군부의 명령을 거부한 인물이다. 80년 당시 경찰이 소지했던 무기를 회수한 뒤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음식 등을 제공했다가 그해 5월 직위해제를 당했다. 5·18 이후 ‘직무유기 및 지휘 포기 혐의’로 보안사령부에 끌려간 뒤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88년 10월 숨졌다.

사망 15년 후인 2003년 광주민주유공자로 인정받은 데 이어 2006년 국가유공자가 되면서 신군부에 의해 실추된 명예를 회복했다. 충남 아산의 경찰교육원에는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한 ‘안병하 홀’이 있다.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6·25 전쟁에도 참전해 북한군과 맞서 싸웠다고 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고인은 1962년 장교 특채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경찰청은 2017년 11월 고인이 생전에 근무한 전남경찰청에 추모 흉상을 건립했다. 또 80년 당시 광주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쓴 뜻을 기려 2018년 3월 10일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안 치안감은 88년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5·18의 발생 원인과 당시 광주의 상황을 자필 메모로 남겼다. 비망록을 간직해오던 유족은 2018년 5월 10일 메모 원본(8장)과 고인의 유품을 광주광역시에 기증했다. 고인은 비망록에 ‘5월 16일까지 시위는 평온했으나 17일 자정 이후 계엄령 확대, 공수부대 투입과 진압 시작, 이에 자극받은 시민들의 무장으로 상황이 악화했다’고 적었다. ‘5·18은 신군부가 과격한 진압과 유언비어 유포를 통해 시민들을 자극해 발생했다’, ‘5월 22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 군의 과격한 진압에 항의하던 경찰국 과장이 군인에게 구타당함’이라는 글도 남겼다.

그는 시위에 대응하는 경찰에 ‘절대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경찰 희생자가 있더라도), 일반 시민 피해 없도록, 주동자 외에는 연행치 말 것(교내에서 연행 금지), 경찰봉 사용 유의(반말, 욕설 엄금)’라고 기록했다.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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