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 서머싯 몸 [임혜자의 내 인생의 책 ③]
[경향신문]
‘깡촌’ 전북 부안 산골소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무기여 잘 있거라> <데미안> <적과 흑> <호밀밭의 파수꾼>…. 문명이라곤 텔레비전 정도나 있을까. 그나마 대학생 삼촌 덕분에 책꽂이에 꽂혀 있는 이런 고전들 사이에서 만난 <달과 6펜스>는 절대 추상어였다. 제목부터 묘했다. 왜 달이고, 왜 6펜스인지? 세상 물정 몰랐을 그땐 그랬다.
소설 주인공의 모델은 화가 폴 고갱이었다. 작품 속에서 달이나 6펜스 이야기는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달’은 고갱이 그토록 갈망한 아름다운 이상, ‘6펜스’는 척박하고 세속적인 현실을 상징할 뿐이다. 서머싯 몸은 고갱을 오랫동안 사랑했다. 작가 자신도 보헤미안 같은 고독한 인생길을 걸었기에 자신의 내면세계를 고갱의 삶과 예술에 합체시켜 작품에 고스란히 나타냈다.
그런데 왜 1펜스나 5펜스, 10펜스가 아니라 6펜스일까. 당시 영국은 12진법을 썼고, 6펜스는 가장 낮은 단위의 동전인 셈이다.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예술이라는 고매한 목표(달)를 위해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의 모든 것(6펜스)을 버렸다. “스트릭랜드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아름다움을 창조하고자 하는 정열이었다. 그것이 그에게 한시도 평안을 주지 않고 그를 이리저리 몰고 다녔다. 그는 영원히 신성한 향수에 홀려서 쫓겨다닌 순례자였다. 그에게는 미가 진리를 대신했다.” 스트릭랜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 안에서도 달과 6펜스가 마주하고 있다. 이상과 일상, 열정과 냉정, 사랑과 야망, 정책과 정치…. 하늘의 별만큼이나 셀 수 없이 많은 그 사이사이에서 가슴이 일렁이는 대로 살고 싶은 나와 그럴 수 없는 나를 발견한다. 불꽃같이 살다 간 고갱을 부러워하면서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영화 <베테랑>의 대사가 떠올랐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임혜자 | 국민권익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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