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토요포커스] 이승현 인팩코리아 대표 "거북선을 꿈꿨던 섬 소년, 또 다른 도전을 위하여"

2021. 10. 1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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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주재원 당시 전자상거래 이용한 판매 전략으로 성공 거둬 - 2008년 창업 후 국제금융위기 닥쳐…오픈마켓 통해 위기 극복 - 청년 취업 문제 위해 '처벌 중심의 기업규제' 완화로 기업 일자리 창출해야 - 국가 성장 위해 많은 기업인 참여해 주길 바라

방송보기 링크 : https:youtu.be/6sXc0jkDcNg

■ 방송일시 : 2021년 10월 9일 (토요일 / 05:40 ~ 06:20)

■ 진 행 : 박대일 산업부장 / 정아영 아나운서

■ 출연자 : 이승현 인팩코리아 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박대일: 4차 산업혁명은 반도체와 IT가 핵심 산업입니다. 정부와 기업 모두 4차 산업혁명의 역량을 집중한 가운데 IT 분야에서 창업 열기가 더욱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 정아영: 오늘은 IT 기업을 이끌고 계시는 이승현 대표님 모시고서 다양한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표님 어서 오세요.

◇ 박대일: 지금은 IT 쪽에서 사업을 하고 계신데 출발점은 IT가 아니었어요.

◆ 이승현: 네 저는 원래 꿈이 거북선을 만드는 꿈이 있었는데.

◇ 정아영: 거북선이요?

◆ 이승현: 네, 그래서 제가 태어난 곳이 명량해전의 인접지인 어룡도라고 하는 조그마한 섬마을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거북선에 대해서 상당히 관심을 갖게 된 거 같습니다.

◇ 박대일: 그렇다면 조선소에서 일을 하시게 된 계기는 지금 말씀하셨지만 구체적인 계기는 또 무엇이었고 그러다가 또 어떻게 업종 전환을 해서 IT 쪽으로 가셨는지 한번 답해주시죠.

◆ 이승현: 공대를 졸업하고 배를 만드는 곳에 갔었는데, 제가 대구조선에 근무할 때인데 그게 아마 1982년입니다. 그런데 해상 구조물이 그 당시로써는 세계 최대였고 그것을 최종 수주 계약을 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발주처에서 정하는 어떤 기준에 만족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 어린 나이에 미국 출장 프로젝트 팀에 선발이 돼서 미국 벡텔이라고 하는데 벡텔이라는 회사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겠지만 한국의 원자력발전소. 또 그리고 고속철도 그리고 고층 건물들을 기본 설계를 하는 곳입니다.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 회사인데 제가 거기에 가서 가장 빠른 시일 내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만들 수 있는, 그러한 생산 관리 공정을 제가 제안을 하게 됐고 그 당시만 하더라도 컴퓨터에 의한 생산 관리 스케줄을 짠다는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없었는데 저희들은 그걸 해야 되니까 벡텔 엔지니어들이 깜짝 놀란 거죠, 놀라고. 또 저희들이 무사히 프로젝트를 알래스카 연안에 잘 설치가 끝났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삼성조선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고 그런데 삼성 조선으로 가서 거북선보다 더 큰 배를 만들려고 했는데 그 당시에 조선업이 불황이 시작이 됐습니다. 불황이 시작돼서 삼성반도체 통신으로 이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보면 최첨단 IT 산업으로 이동을 하게 됐고 그렇게 IT 산업에 진입을 하게 된 겁니다.

◇ 정아영: 그러면 IT 산업의 발을 들여놓으신 다음에 또 해외 지사로도 또 발령을 받으셨다고 들었어요. 뭐 일본으로 가셨다고 했는데 1990년대 초라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그 당시에 일본에서는 사실 전자 산업의 가장 최전성기가 그 당시 아닙니까? 현장에서 그 모습들을 다 목격을 하셨겠네요.

◆ 이승현: 그렇습니다. 92년도, 90년도 초만 하더라도 일본은 전자 분야에서는 세계 최강국이었습니다. 삼성전자는 안중에도 없었죠, 사실은. 90년대 말만 하더라도 일본에는 판매상들이 독특한 판매 시스템이 있어서 아키하바라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제품을 갖다주면 그 판매상들이, 자기들이 셀렉션을 해서 판매를 하는데 알다시피 삼성의 제품들을 한쪽 구석에 좀 내팽개치다시피 하면서 고객들한테 좋은 설명을 안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이제 삼성 브랜드를 근본적으로 좀 고급화 시켜라라는 특명이 떨어졌습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런 분위기 반전을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가장 고민을 하다가 그때 마침 전자상거래가 태동하기 시작을 했는데 용어는 나왔습니다. E-비즈니스라고 하는 건 나왔는데 실제로 일본에서도 그 경험을 가진 회사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전자상거래를 통해서 삼성의 최첨단 액정 모니터를 직접 판매를 하게 되면 훨씬 더 일본 고객들이 우리 삼성을 인식하지 않겠느냐 해서 고급화 전략을 폈는데 그게 굉장히 성공을 거둔 것 같습니다.

◇ 정아영: 그 핵심 업무를 잘 수행하셨으니까 이제 또 IT 업계에 계셨으면 그 자리에서 또 승승장구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 자리를 물리치고 나오셔서 창업을 하실 수가 있었을까. 그런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 이승현: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미국 벡텔 출장 때 하고 또 일본 주재 생활 경험을 통해서 본 바에 의하면 새로운 사업을 개척을 하는 사람이 있고 또 그 사업을 계속 유지, 발전시켜나가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항상 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저한테는 가장 하나의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었는데, 개척은 제가 했지만 저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이 이걸 더 크게 성장시켜야 되지 않느냐라는 게 하나 있었고. 그다음에 이제 샐러리맨들의 꿈이라는 게 자기 회사를 갖는 거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 회사를 가져야겠다고 해서 당시에 이제 과감하게 팽개치게 된 겁니다.

◇ 박대일: 창업을 하신 때가 2008년이었어요. 2008년이 미국 금융위기에서 전 세계가 흔들렸던 때인데 그때 위기를 극복하셨던 그런 때를 좀 설명을 해 주시면 지금의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인들한테도 어떤 조언이 될 것 같습니다.

◆ 이승현: 사실은 정말 아찔한 그런 시기였습니다. 저희 회사 부품은 휴대전화기라든지 TV에 들어가는 아주 초소형 세라믹 반도체인데 그걸 저희들이 삼성이나 LG에 공급을 하려면 여러 가지 테스트도 물론하고 그다음에 마지막 제조 공장하고 그다음에 정말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제조하는지를 검증을 하는 그런 체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금융위기가 되다 보니까 삼성이나 LG가 출장을 전부 중지를 시킨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초기 자본금을 가지고 시작을 했는데 그게 거의 동이 날 정도가 돼서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때는 정말 극단적인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 대표이사 급여는 거의 제로 정도로 낮추고. 그리고 또 우리 직원들이 열심히 해서 오픈 마켓이라고 있습니다. 이게 대기업만 하는 게 아니라 중소, 중견기업을 상대로 하는 그런 판매상이 있는데 그 부분을 저희들이 개발을 해서 그 위기를 넘어섰는데. 그런 것도 제가 태어난 섬, 배를 타고 굉장히 거친 바다를 왔다 갔다 하면서 체험한 어떤 모험심이랄까? 그런 도전 정신 이런 부분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 정아영: 2008년부터 사업체를 운영을 하셨으니까 이제 올해로 한 13년째 사업체를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과거에는 샐러리맨으로 시작을 하셨는데 이제는 대표님이시고요. 경영자로서 내 사업체를 지금 어떤 마인드로 좀 끌고 계시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요.

◆ 이승현: 내 자신을 움직이려면 그거는 야심이 있어야 되지만, 다른 사람을 움직이려면 진심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신뢰도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직원들이 만족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직원들이 만족하는 그런 회사, 그리고 또 고객이 필요로 하는 그런 회사가 되는 게 저로서는 가장 중시하는 경영 철학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박대일: 청년 취업 문제가 이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실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 기업 또 어떤 노력을 해야겠습니까?

◆ 이승현: 제일 중요한 건 기업이 많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자리가 많이 창출이 돼야 되는데 우리나라는 사실은 규제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까 기업들이 투자 의욕을 잃는 거죠. 그리고 조건이 좋은 해외로 나가버리기 됩니다. 예를 들어서 지난 4년간 국내로 돌아온 기업은 50개 사입니다. 해외로 나간 기업이 1만 2천 개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1만 2천 개에서 10명씩만 하더라도 12만 명이고, 100명이면 120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한 일자리가 지금 없어지고 있는 거고 최근에 발의가 된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법은 뭐 자칫 잘못하면 대표자라든지 법적인 책임자들은 전과자가 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서로 법적인 대표자는 안 하겠다,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데 규제 중심의, 처벌 중심의 이런 규제를 빨리 완화해서 기업가들이 조금 안심하고 기분 좋게 투자를 많이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좀 개선해 주는 거 그리고 우리 젊은이들도 중소기업 쪽에도 좀 이렇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정아영: 우리 대표님께서는 샐러리맨도 겪어보셨고 창업도 하시면서 지금 대표직도 수행을 하고 계시잖아요. 인생 선배로서 우리 청춘들에게 좀 힘내라는 어떤 조언을 해 주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 이승현: 제가 그렇게 잘난 사람은 아닙니다마는 제가 살아오면서 가지고 있는 아주 중요한 게 있는데, 너무 유행에 휘둘리지 말라는 겁니다. 자꾸 너무 유행에 휘둘리다 보면 자기중심을 잃어버릴 수가 있으니까 유행에 휘둘리지 말고. 그렇지만 이게 어떻게 변해갈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하게 정직하게 전진해 나가면 이 세상은 절대 나를 버리지 않는다. 배신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 젊은 청춘들한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되겠습니다.

◇ 박대일: 앞서 거북선을 만들려고 했던 소년이 이제 기업가로 성장을 하셨고 그래서 여러 가지를 일궈오셨는데 또 여기서 그치는 건 아니겠죠? 앞으로의 목표는 또 무엇입니까?

◆ 이승현: 제가 기업에 있으면서 늘 국가에 대한 생각이 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정치인들을 비판도 하고 이렇게 하면 될 텐데 왜 안 하는지, 몰라서 못 하는 건지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잘못된 나라 일을 바로잡자면 직접 정치권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고생 끝에 이제 겨우 편안하게 살게 됐는데 뭐 하려고 그런 정치를 하느냐면서 많이 말리기도 했는데 그렇지만 초일류 국가, 저는 어쨌든 세계 일류 제품, 또 1등 제품도 만들어 봤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자신 있고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이 초일류 국가가 되는데 저 같은 기업인들이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고. 저 또한 이런 기회가 주어지면 한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이 조그마한 섬마을 섬 소년 촌놈으로 태어나가지고 세계 최고의 배를 만드는 엔지니어도 됐고 글로벌 기업인으로 성장도 했습니다. 제가 한 60년 동안 우리 국가 사회로부터 많은 걸 받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내가 받은 혜택을 국가와 사회에 좀 돌려줘야 되지 않느냐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요즘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자 합니다. 이것이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일지 모르겠습니다.

◇ 박대일: 자신을 움직이는 것은 야심이지만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다, 이 말씀이 인상에 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분들에게도 힘이 되는 말씀이 될 것 같습니다.

◇ 정아영: 대표님의 말씀은 오늘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 이승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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