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박탈할 사정 단정할 수 없다"..김태현 무기징역 선고 까닭

2021. 10. 1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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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이 지난 4월 9일 오전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나오다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피고인을 사형에 처해 생명 자체를 박탈할 수 있는 정당하고 객관적인 사정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노원 세 모녀 살인 사건’의 피고인 김태현에 대한 12일 선고 공판에서 언급된 양형 사유다. 사형 선고 여론이 높았지만, 법원의 선택은 달랐다. 재판부는 “다른 중대 사건과 양형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앞서 사형을 구형한 검찰과 달리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방청석에 있던 유족들은 재판부를 향해 “사형을 선고하라”고 절규했다.


핵심 쟁점 ‘계획범죄’는 인정했지만…


노원구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난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이가람 기자
이날 오전 11시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3부(오권철 부장판사)는 살인·절도·특수주거침입 등 5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난 3월 23일 김씨가 서월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피해자 3명을 살해한 지 약 7개월여 만이다. 김씨는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큰딸 A씨를 스토킹하다가 집으로 찾아간 뒤 여동생과 어머니, A씨를 차례로 살해한 혐의로 지난 4월 27일에 재판에 넘겨졌다.

기소 이후 총 다섯 차례 열린 재판에서 핵심 쟁점은 김씨의 범죄가 계획적이었는지 여부였다. 실제로 김씨는 A씨 가족을 살해하기 전 직장에 휴가를 낸 뒤 흉기를 마련하고, 퀵서비스 기사처럼 보이려고 박스까지 준비하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재판 내내 범행 일체를 자백하면서도 A씨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에 대한 살인은 우발적이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김씨의 살인은 계획적이라며 지난달 13일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사형 아닌 무기징역 선고, 그 까닭은?


이날 재판부는 김씨의 범죄가 계획적이라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의 주거지를 범행 장소로 택하고 저녁 10시쯤 귀가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미리 5시35분쯤 피해자의 집을 찾아갔다”며 “가족 중 누군가를 반드시 마주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준비한 칼로 검색해둔 부위이자 급소를 힘껏 찔렀다”면서 “동생을 살해한 후 장소를 떠나지 않고 귀가한 어머니까지 살해한 것은 결코 우발적 살인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김씨의 극단적인 인명 경시 성향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동생은 영문도 모른 채 1시간 동안 고통에 시달리다가 살해당했다”며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살해당할 것을 예견한 상태에서 부모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절망감 속에 숨을 거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사건 형평성 고려…사형에 처할 사정이라 단정 어려워


법원 이미지 그래픽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의 구형과 달리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사형의 형벌로서의 특수성,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 대부분을 인정하고 있는 점, 벌금형 이상의 범죄전력이 없는 점, 범행 후 도주하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며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반성문을 제출하고 법정에서 유족에 사죄의 뜻을 밝히기도 한 점을 토대로 사형에 처할 만한 객관적 사정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씨를 향해선 “기간에 정함 없이 사회에서 격리돼 참회하고 피해자와 유족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했다.

무기징역 선고 직후 방청석의 유족들은 오열했다. 이들은 “이게 말이 되느냐. 사형을 선고하라” “사람을 더 죽이면 사형인가, 내가 죽겠다” “재판장님, 절규합니다”라며 절규했고, 일부 유족은 재판장을 향해 욕설을 퍼부어 법정 경위가 만류하기도 했다. 선고 직후 김태현 측 변호인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피고인과 상의해서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양수민 기자 yang.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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