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급 외국인 순매도, 삼성전자 주식만 24조 팔았다

홍준기 기자 2021. 10. 1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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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코리아' 13년前과 비교해 보니
삼성전자는 12일 국내 증시에서 6만9000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장중 및 종가 기준 7만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모두 지난해 12월 3일 이후 10개월 만이다. 사진은 이날 여의도 증권거래소 모습. /연합뉴스

올 들어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세가 역대 최대였던 2008년 수준보다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한 해로 외국인들이 코스피 시장에서 33조6034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 8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29조774억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 순매도가 가장 많았던 2008년 같은 기간(연초~10월 8일) 순매도 규모(29조554억원)를 넘었다.

올해 외국인 순매도의 특징은 삼성전자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올 들어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 순매도 1·2위는 삼성전자 보통주(19조5800억원)와 우선주(4조4920억원)였다. 삼성전자 보통주와 우선주를 합친 순매도 금액(24조720억원)이 전체 코스피 시장 순매도 금액의 83%에 달한다.

경기 둔화 우려에 돈 빼가는 외국인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서 역대급 순매도를 기록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코로나 사태 이후 지속돼온 전 세계적인 초저금리 시대가 끝나고 기업 실적이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은 6개월 후의 경제 상황을 예상하면서 주식 투자에 나선다. 그런데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 속에 반도체, 자동차, 화학, 조선 등 수출을 통해 이익을 내는 국내 대표 기업들의 ‘이익’이 향후 더 나빠질 것이라고 보고 국내 증시에서 주식을 순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올해 초부터 글로벌 경기가 정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고, 실제로 미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을 6%대로 예상했던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이 최근 전망치를 1%대까지 낮추기도 했다”며 “글로벌 경기 둔화는 우리나라의 수출과 기업 이익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금을 빼가는 것”이라고 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치솟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12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4.2원 오른 1198.8원까지 상승했다. 장 초반에는 1200원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서상영 연구원은 “중국의 전력난으로 인한 공장 가동 중단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위험자산인 주식보다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선호가 커진 것”이라며 “반대로 변동성이 큰 위험자산이라고 볼 수 있는 ‘원화’의 가치는 하락하면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계속 오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외국인 매도세와 환율 상승이 주춤해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서정훈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1200원까지 상승한 환율은 기술적으로 오버슈팅(단기 급상승)한 측면이 적지 않고, 이전부터 외국인 매도세가 지속적으로 누적됐던 까닭에 향후 매물이 나오는 규모는 점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삼성전자에 매도세 몰려

2008년과 다른 점은 외국인 매도세가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반도체주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보통주·우선주뿐 아니라 같은 반도체 업종의 SK하이닉스를 순매도한 금액까지 합치면 26조4860억원으로 올해 코스피 시장 전체 순매도 금액의 91%에 달한다. 2008년에도 외국인은 삼성전자(3조560억원 순매도)를 가장 많이 순매도하기 했지만, 포스코(2조3360억원)나 국민은행(2조1810억원) 등 순매도 2·3위 기업과 순매도 규모가 큰 차이를 보이진 않았다.

삼성전자 매도가 늘어난 이유 중에는 코스피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증가한 것도 있다. 2008년에는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코스피 시장 전체의 8.6% 정도였지만, 올해 초에는 24.4%까지 상승했다. 외국인들이 한국 증시에 대한 투자 비중을 늘리거나 줄일 때 삼성전자를 사고 파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된 것이다. 서정훈 수석연구위원은 “외국인들의 투자 자금은 인덱스(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자금의 성격이 짙기 때문에 순매수나 순매도가 대형주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최근 반도체 업황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당 업종에 대한 ‘투자 선호도’를 감소시키고 있는데, 국내 시총 1·2위 기업이 반도체 업종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이기 때문에 외국인 매도세가 두드러지는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하락에는 삼성 일가(一家)가 상속세 납부를 위해 주식 매도에 나선 여파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은 지난 8일 장 마감 이후 공시를 통해 삼성전자 지분 0.33%(약 1조4000억원)를 처분하는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이 회장의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삼성SDS)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삼성SDS·삼성생명)도 삼성그룹 계열사 주식을 매도할 계획인데, 이 때문에 삼성그룹의 주요 계열사 주식 주가가 12일 크게 하락하기도 했다.

주가 하락의 피해는 삼성전자 등을 집중 매수한 ‘개인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개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종에 대한 투자에서 평균적으로 큰 손실을 보고 있다. 같은 기간 개인 투자자의 순매수 금액을 순매수 주식 수량으로 나눠 구한 ‘평균 순매수 가격’과 12일 종가를 비교해보면 삼성전자 보통주의 추정 수익률을 -14.5%, 삼성전자 우선주의 추정 수익률은 -13%다. SK하이닉스의 추정수익률은 -21.9%로 더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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