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나"..검은 피눈물로 표현

서정원 2021. 10. 1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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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프란츠 개인전..구찌 가옥 아래 파운드리서울 전시
`Lowghost #12`. [사진 제공 = 파운드리 서울]
하얀 액자에 하얀 종이가 있다.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것 같아 가까이 가보니 아주 조그맣게 숫자들이 적혀 있다. 아직도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건지 알 수 없어 조금 뒤로 물러서니 보인다. 숫자들이 하나의 별 역할을 하며 전체로는 별자리를 그리고 있다. 이런 액자가 가로로 3줄, 세로로 4줄 총 12개로 가지런히 배치돼 황도 12궁을 연상케 한다. 미국 작가 이건 프란츠의 연작 'Untitled [numbers]'(2010)의 인상이다. 그는 활자의 색다른 배치를 통해 문자의 내용뿐 아니라 형태로도 시를 쓴 프랑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주사위 던지기'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주사위 던지기'에서 문자가 수행하던 기능을 여기에선 숫자가 대신하며 작가는 더욱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지난 6월 개관한 현대 미술 갤러리 파운드리 서울이 두 번째 전시를 열었다.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아트 바젤 스테이트먼트'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 노바' 등 역량 있는 신진 작가들 무대에 꾸준히 출품해온 프란츠의 아시아 첫 개인전 '낫 이너프 워즈(Not Enough Words)'와, 한국 미디어 아티스트 장명식의 'SURREAL JELLY'를 선보인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파운드리 서울에서 12월 19일까지 진행된다. 앞서 6월 개관전에서는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헤닝 스트라스부르거, 디자인 듀오 강혁(최강혁·손상락) 작품을 전시했다. 파운드리 서울은 "지적이고 도전하는 작가들이 이번 전시의 테마"라며 "미술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시대 작가들을 계속해서 소개할 계획"이라고 했다.

전시 제목 '낫 이너프 워즈'는 언어의 틀 안에 다 담아낼 수 있는 현상의 본질을 포착하고 표현하겠다는 의미다. 2010년대 초반의 조각, 설치부터 시작해 최근의 추상 회화에 이르기까지 지난 10여 년간의 예술 여정을 40여 점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특히 검은색 피눈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Lowghost #12'(2014)가 눈길을 끈다. 스프레이 페인트 한 캔을 통째로 분사한 뒤 굳히는 '1 Spray Can' 기법이 적용됐다. 작품 제목인 Lowghost는 그림 아래 쪽(low)에 반복해 등장하는 유령(ghost)들을 가리킴과 동시에, 진리 혹은 언어를 뜻하는 그리스어 로고스(logos)와 발음이 비슷하다.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나 예술적 영감은 유령처럼 갑작스레 나타난다고 작가는 말한다.

갤러리 1층의 전시 공간 '바이파운드리'는 신진 작가를 발굴해 소개하는 공간이다. 2016년 렉서스 디자인 어워드에서 장난감 'DADA'로 결선에 진출했고, 이후 이탈리아 베네통 디자인 리서치 센터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일했던 장명식의 미디어 아트 작품 8점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2019년부터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한 춤추는 젤리들을 이번에 처음 현실의 스크린으로 옮겼다. 몸의 형태와 의상을 바꿔가며 다양한 춤사위를 선보이는 모습들이 귀여우면서도 초현실적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춤'과 '변신'에 대해 얘기한다. 파운드리 서울은 부산의 파이프 자재 제조기업 태광의 자회사로, 패션 브랜드 구찌의 국내 두번째 단독 매장인 '구찌 가옥'과 건물을 같이 쓴다. 갤러리는 1층 일부와 지하 1~2층 약 300평을 사용한다. 상업 화랑으로 전시 관람은 무료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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