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상 께름칙' 말 많던 판구빌딩, 올림픽 앞서 용머리 잘렸다

신경진 2021. 10. 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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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중축선 용맥에서 자금성 내려 보는 꼴
美 도주 궈원구이 건물 국유기업이 낙찰 받아
네티즌 "풍수 아닌 구이 탓""목 잘린 관우 닮아"
2018년 용맥 훼손한 친링산맥 불법 별장 철거
12일 철거 중인 베이징 판구빌딩의 꼭대기 용머리 위로 노란 크레인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신경진 기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4’(2014)에 등장했던 중국 베이징의 랜드마크 빌딩 판구다관(盤古大觀)의 ‘용머리(龍頭)’가 철거 중이다. 판구다관은 지난 2014년 미국으로 도주한 부동산 거부 궈원구이(郭文貴·51) 판구스(盤古氏) 투자유한공사 대주주가 세웠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직전 준공 당시부터 디자인과 가격, 불법 건축물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지난 2014년 상영된 미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4에 등장한 판구빌딩. [트랜스포머4 캡처]


11일 찾아간 인근 올림픽 공원에선 용의 여의주를 닮았다는 건축물 링룽(玲瓏·영롱) 탑에 초대형 숫자 D-116이 보였다. 내년 2월 4일 개막하는 동계 올림픽 카운트다운 숫자다. 이미 컬링경기장으로 개조를 마친 올림픽 수영 경기장 수이리팡(水立方) 서쪽 180m 위치에 판구다관이 보였다. 마치 날아오르려는 용 형상의 빌딩이 남북 600여m 길이로 펼쳐져 있었다. 오피스 빌딩과 아파트 3개 동, 7성급 판구호텔이 이어진 초대형 복합건물이다.

북 4환과 맞닿은 오피스 빌딩 옥상에는 노란 크레인 세 대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고도 191.65m인 꼭대기에 철거를 위해 설치된 비계 옆으로 해체된 구조물이 연신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가림막 옆에 설치한 인도 철제빔에는 “시공 구역, 쾌속 통과, 멈추지 마시오”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정장 차림의 경비원은 행인을 하나하나 예리한 눈초리로 살피고 있었다.

12일 찾아간 베이징 판구빌딩의 1층 모습. 미국 IT 기업 IBM의 로고가 보인다. 신경진 기자
12일 철거 중인 베이징 판구빌딩 꼭대기 층 외벽에 사무실 창문과 같은 모습의 비계가 설치되어 있다. 신경진 기자


용머리 철거는 지난달 22일 경제매체 ‘중국경제주간’의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검열 당국은 바로 삭제했다. 지난 10일 상하이 매체 와이탄화보(外灘畵報)가 다시 보도했다. 포털 왕이(網易)에 올라간 뉴스에는 12일 오전까지 8만4000여건의 댓글이 붙었다. “(용머리는) 조금도 추하지 않다. 독특하고 창의성이 넘친다”는 댓글이 ‘좋아요’ 1만1580건으로 가장 많았다. 철거 반대론이다. “내게 대담한 억측이 있다. 풍수가 이유인가?”라는 반문도 보였다. 아래에는 “풍수가 아니다, ‘구이(貴)’ 때문”이라며 궈원구이를 철거의 진짜 이유로 꼽는 댓글이 달렸다. “관우 조각상 철거와 다른 곡조 같은 노래”라며 지난달 철거된 징저우(荊州)시의 초대형 관우 조각상의 ‘목’이 잘린 것과 비교하는 댓글도 보였다. 해외 트위터에는 “지도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네 머리가 잘린다. 알겠나”라는 삭제된 댓글의 캡처 화면도 돌고 있다.

판구다관 용두를 철거한 이유로는 풍수설이 우세하다. 베이징의 정중앙부터 천안문→자금성(紫禁城)→경산(景山)→올림픽공원으로 잇는 중축선(中軸線) 바로 옆에 나란히 선 판구다관의 용머리가 마치 자금성과 최고 지도부의 집단 거주지인 중남해(中南海)를 굽어보는 형상이어서 철거됐다는 풀이다. 웨이신(微信, 중국판 카카오스토리)의 주역(周易) 풀이 계정 ‘천역정관’(天易正觀)은 지난 3월 “중축선과 같이 풍수가 극치를 이루는 곳을 지배하려는 사람은 이익은커녕 피해를 보기 마련”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주역의 건(乾)궤에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말이 있다”며 “극치를 지나면 곧 내리막길“이라는 풀이를 덧붙였다.

판구다관은 7성급 판구호텔과 고급 아파트 가격으로도 유명했다. 2008년 분양 당시 판구 아파트는 ㎡당 6만5000위안(1200만원)으로 고가 논란이 일었고, 2015년에는 ㎡당 16만 위안(2971만원)으로 폭등하기도 했다고 잡지 와이탄이 전했다.

판구다관 아파트동 옥상에 불법으로 지어진 초호화 사합원 내부 모습 [와이탄화보 캡처]

또 아파트 3개동 옥상에는 복층형 사합원(四合院, 베이징 전통 건축물) 12채를 지어 불법 논란이 일었다. 2010년 베이징 규획위원회는 해당 사합원을 불법으로 규정했고, 불법 면적 1만1297.67㎡를 ㎡당 3000위안(56만원), 총 63억원가량의 벌금을 낸 뒤 판매 대신 임대 허가증을 취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채당 임대료는 매달 100만 위안(1억860만원)대로 알려진다.

궈원구이의 판구스 투자가 분쟁에 휩싸이면서 판구다관은 여러 차례 경매로 넘어갔다. 2018년 8월 아파트 3개 동 41채가 시가 35억4000만위안(6574억원)에 법원 경매가 진행됐지만 최종 유찰됐다. 2019년 8월에는 용머리가 있는 오피스 빌딩 5호동이 국유기업 베이징 진위(金隅) 그룹에 51억8700만 위안(약 9631억원)으로 낙찰됐다. 용머리 철거는 오피스동 임대 업체의 계약 만료 기간을 기다려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시작됐다.

베이징 판구다관을 지은 건축가 리쭈위안(李祖原·83)이 지은 선양시의 팡위안 빌딩 외관. 중국 고대의 화폐를 노골적으로 형상화해 중국에서 추한 디자인 건물로 선정됐다. [와이탄화보 캡처]


판구다관의 건축가 리쭈위안(李祖原·83) 역시 논란의 인물이다. 리쭈위안은 대만 타이베이101를 지었다. 대나무 마디와 고대 화폐, 상서로운 구름을 모티브로 삼았다. 중국 전통문화 요소를 건물에 녹여 넣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선양(瀋陽) 팡위안(方圓)빌딩의 경우 동전을 노골적으로 형상화해 추한 건축 디자인에 선정됐다.

용을 형상화한 판구다관은 오피스 동의 용머리뿐 아니라 연결된 건물 지상층을 66개의 용기둥과 66개의 작은 용머리로 장식했다. 용머리마다 50여t의 화강암을 전통 수공예 방식으로 조각했다고 한다.

최근 중국에서 용맥을 건드린 건물을 철거한 것은 판구다관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8년에는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 아래의 축선인친링(秦嶺) 산맥에서 별장 난개발 사건이 터졌다. 연루된 관리 1000여 명이 조사받고, 불법 별장 1200여 채가 철거됐다. 쿤룬(崑崙)에 뿌리를 둔 중국의 용맥을 훼손했다는 이유다. 사건은 중국중앙(CC) TV가 43분짜리 ‘친링 불법 별장 척결’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전국에 방영해 재발을 막았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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