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실조 200만, "약도 의사도 없다"..의료시스템 붕괴된 아프간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의 의료 서비스가 사실상 붕괴됐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유엔(UN) 산하기구와 비정부단체(NGO)는 올 겨울 아프간에 영양실조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매달 수천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이처럼 빠른 속도와 엄청난 규모로 위기가 진행되는 것은 본 적이 없다”고 개탄했다.
진료소에 의료진·의약품, 환자도 없다
9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은 아프간 의료진이 6개월째 급여를 받지 못했고 진료소에는 약과 장비가 전혀 없다고 보도했다. 적십자 등 국제 구호단체의 원조에 의존해온 대다수 아프간 병원들은 미군 철수 이후 국제사회의 지원이 끊기자 누적된 재정 적자로 문을 닫았다. 현재 세계은행·미국·유럽연합(EU) 및 여러 나라에서 아프간 보건부를 통한 지원을 중단한 상태다.
국제 경영자문업체 아카수스에서 아프간 건강·교육 컨설팅을 맡고 있는 바흐만 샤히는 “아프간의 의료센터에는 환자도, 의료진도 없다. 기본 장비와 의약품 역시 없다”며 “매우 심각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 수도 카불, 제2 도시 칸다하르, 남부 대도시 헬만드를 직접 다니며 눈으로 확인한 것”이라며 “농촌마을 상황은 더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겨울철로 접어들면서 아프간에는 만성적인 식량부족으로 인한 영양실조와 코로나19 환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메리 엘렌 맥그로티 세계식량계획(WFP) 국가국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지속된 가뭄과 경제난이 식량과 연료 가격까지 끌어올리면서 더 깊은 극빈 상태로 몰고 가고 있다”며 “이런 속도와 규모로 위기가 전개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우려했다.
영양실조 아동 200만명, 2시간마다 1명씩 출산중 사망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과 아동이다. 세이브더칠드런에 따르면 아프간 내 심각한 영양실조로 긴급 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동은 수백만명에 이른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스타니자이 만수르 박사는 “우리 보건팀이 지난달 칸다하르에서 진료를 재개한 첫날, 영양실조 진단을 받은 아이의 절반은 위급한 상태였다”며 “아프간 내에 최소 200만명의 아동은 즉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수준의 영양실조”라고 말했다.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에서 여성은 아예 의료 서비스에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 CNN은 현재 아프간에서 2시간마다 1명씩 여성이 출산 중 사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난민기구는 “탈레반 치하에서 여성은 이동의 자유가 없고 식량·현금 지원 대상도 아니다”면서 “여성 의료진이 없는 지역에서 여성과 소녀는 아예 치료를 받지 못한다”고 전했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프간 여성의 68%가 의료 시설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상황도 심각하다. 국제사회는 겨울철로 접어들면서 아프간 내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CNN은 “코로나19와 관련해 신뢰할만한 테스트와 데이터가 전혀 없어 팬데믹 상황을 측정하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유엔에 따르면 탈레반이 장악하기 전인 지난 7월말까지 220만명의 아프간 사람들이 코로나 백신을 맞은 것으로 조사됐다. 아프간 전체 인구는 3983만5000명이다. 아프간 인구 대다수가 아직 백신 접종 완료는커녕 기본 방역조차 지키지 않는 상태다. 아카수스의 바르만 샤히는 “대다수 아프간 사람들은 코로나19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프간 사람들, 코로나가 뭔지도 모른다”
아프간 상황이 긴박해지자 국제사회는 탈레반 정부를 통하지 않고 아프간 국민에게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WHO는 필수 의약품과 장비를 다시 아프간으로 공수하기 시작했다. 뤄 다펑 WHO 아프간 대표는 “겨울이 다가옴에 따라 아프간 의료 위기는 더욱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며 인도적 지원의 시급함을 강조했다.
앞서 EU는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회의에서 10억 달러(약 1조1800억원) 지원을 약속했다. 유엔은 역시 12억 달러(약 1조4200억원) 규모의 긴급 지원금을, 중국은 310만 달러(약 37억원) 어치의 긴급 원조를 아프간에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아프간 주재 유엔특사인 마틴 그린피스는 의료 서비스만을 위해 추가로 4500만 달러(약 530억원)의 긴급 자금 지원을 발표했다. 하지만 아카수스는 “공공지출의 75%를 국제 원조에 의존하던 아프간 경제에 이 같은 지원은 제한적 효과만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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